불서와 함께 떠나는 가을 여행

특별기획 / 올 가을의 추천 불서 10

2010-10-29     불광출판사

최근 새롭게 문을 연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는 불교 관련 매대가 하나도 배치되지 않았다. 불교계 입장에서 보면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지만, 사실 이는 한국불자들이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지 그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종교보다 깊이 있는 공부와 수행을 강조하는 것이 불교라는 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도들이 책을 읽지 않는 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하고도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월간 「불광」은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마음을 살찌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체득할 수 있는 양질의 책 10권을 선쟁해 소개하고자 한다. 올가을 독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10권의 좋은 책을 읽음으로써, 불교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나아가 그동안 책을 멀리해왔던 불자들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글을 통해 진리의 초입에 들어서다
사람들의 혼을 쑥 빼놓을 것 같던 여름날의 폭염도 꼬리를 내렸다. 반갑잖은 가을 태풍이 지나가면서 몇 군데 생채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하늘은 날로 멀어지면서 푸른 기운을 드러낼 것이다. 또 들녘에는 상쾌한 바람이 지나가는 곳마다 잘 익은 곡식들이 무거운 몸으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지시하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다. 스스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묻고 찾아내 그 길을 가게 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 조사와 선사들은 말과 글의 효용에 대해 신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는 진리의 초입으로 들어설 수 없으니, 그것에 기대 나아가야 할 것이로되 언젠가는 그로부터 떨어져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글은 읽게 하고 생각하게–.특수하게는 만져보게–한다는 점에서 한번 듣고 흘려버리는 말과 다르다.
가을에 읽을 불교서적을 고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꽤 오래 전,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굳힌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넘쳐나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욕심으로만 책을 읽으면 끝내 책에 대한 내 갈증은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 그러니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만족하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 가을에 읽을 책을 고르면서도 남들이 좋다고 한 책이 아니라, 내가 읽고 좋았던 책 중에서 10권을 고르기로 했다. 도서 선정은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것 중에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긴 했지만, 소개하는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독서이력의 결과라는 점을 밝혀둔다.

기도 : 내려놓기
사람들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기도를 한다. 그런데 저자는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기도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한다.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부처님의 대기설법을 연상하게 하는 삶에 대한 다양한 처방을 읽다 보면, 저자인 법륜 스님이 왜 우리 사회에서 주요 이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기도와 참회에 대한 전혀 새로운 마음과 자세를 갖게 하는 법문을, 핵심을 건드리면서도 쉬운 일상의 언어로 들려준다.
◉법륜, 정토출판, 8,500원


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이 생물학을 토대로 신의 부재를 주장했다면, 빅터 스텐저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 주장의 증거들을 펼쳐놓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두 과학자를 신의 부재에 관한 상호보완의 관계로 말하기도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증거와 언설 아래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은 물론이고 계시와 가치, 악이라는 종교적 문제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신의 부재 증거로 제시되고 논파된다. 그러면서도 그가 과학의 절대성을 말하지 않는 것은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종교에 관한 문제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는 불교계가 과학과 별다른 대립의 요소를 갖지 않고 있지만 그런 날이 아주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저자의 논리 안에는 불교계가 충분히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빅터 J. 스텐저(Victor J. Stenger), 서커스, 14,800원


부처님의 생애
조계종 종단에서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정본의 필요성을 느끼고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프로젝트로 펴낸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부처님의 출생에서부터 반열반(槃涅槃)에 드신 이후까지 연대기를 따라 흘러가는 내용, 풍부한 도록의 적절한 배치, 활용도가 높은 지도와 인명에 관한 풍부한 부록, 전문작가의 손을 거쳐 윤문된 읽는 맛 좋은 글 등 전문가로서 배분된 역할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각자의 노력의 결과가 알맞게 안배되고 종합된 책이다. 출간된 이후 꾸준하게 불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부처님의생애편찬위원회, 조계종출판사, 12,000원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불교를 공부하고 그 결과로 얻은 앎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종교에 대해 회의하거나 이웃종교에 경도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받아들이지 못할 물이 없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비교종교학자답게 그가 말하는 불교 안에는 기독교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종교와 신화를 아우를 만큼의 넓이와 깊이가 함께한다. 불교계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또는 애써 보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는 종교의 근원에 보다 더 가까이 파고들어간 새로움이 들어있다. 한 곳을 향해가는 여러 갈래의 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 . ◉오강남, 현암사, 15,000원


붓다 브레인
마음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도 경전에서 말하는 마음과 생각은 너무 깊고 먼 곳을 가리키고, 과학에서 파헤치는 두뇌는 딱딱하고 어렵다. 불교와 두뇌를 함께 말하는 이 책에서는 마음이 과학으로 분해되고 두뇌는 불교의 언어로 파헤쳐진다. 불교와 과학의 만남인 동시에 철학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이 근원적으로 고통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분석의 틀에 익숙하고 불교의 심오한 언어 세계에 낯설지 않은 이들이라면 고통의 근원을 이해하고 지혜의 획득을 희망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릭 핸슨(Rick Hanson), 불광출판사, 18,000원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사찰순례와 답사가 일상화되었지만 불교와 사찰을 둘러싼 문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해설서는 만족할만한 것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불교적 분위기에서 자랐고 장성해서는 불교학자가 된 저자가 발품을 팔아 전국의 주요 사찰을 답사하고 순례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과 깨침의 요소들을 담아 펴낸 책이다. 사찰순례에 나설 때 챙겨 가면 일정 내내 든든할 수 있는 책이다.
◉목경찬, 조계종출판사, 12,000원


선의 나침반
살아있는 생불로 세계인의 추앙을 받던 숭산 선사의 30여 년에 걸친 법문을 푸른 눈의 제자 현각이 4년 동안 정성 들여 정리하고 한글본과 영역본으로 내놓은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 속에 담긴 선지가 도처에서 날카로운 칼날처럼 번뜩이는 것을 문장 속 글자들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수행이 없는 앎은 빈 껍데기라는 서슬 퍼런 가르침이 무서운데도 오랜 세월 불자와 독서가들의 사랑이 끊이지 않는 책이다.
                               ◉현각, 현암사, 15,000원


싯다르타의 꿈, 세상을 바꾸다
기자생활을 거쳐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저자가 붓다의 일생을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쓴 소설이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목표만 있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류의 위대한 스승 붓다의 어린 시절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될 만큼 붓다의 전기적 삶과 가르침을 충실하게 싣고 있다. 전국청소년불교교리경시대회의 교재로 채택될 만큼 독자들의 호응이 좋은 책이다.
◉백승권, 불광출판사, 12,000원


안의 씨앗
이야기를 요약하기조차 아까울 정도로 짧지만 느끼는 게 많은 그림책이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의 느낌도 부드럽고 따뜻해서 어린 날의 한때를 떠올리게 한다. 속도가 성공을 결정하는 관건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읽는 시간보다 읽고 난 뒤의 감동이 훨씬 오래 가는 책이다. ◉왕자오자오, 하늘파란상상, 9,500원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
교사와 수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일아 스님이 출가 후 국내선원과 동남아시아 수행처를 거쳐 미국에서 십 년 넘는 공부를 끝낸 뒤, 그 첫 번째 결실로 세상에 내놓은 간추려 읽는 한글본 빠알리 경전이다. 신격화라는 틀에 갇힌 붓다를 사람의 모습으로 살려내 선각자로서의 가르침을 들려준다. 인명과 지명 등이 낯설기는 하지만 대승불교권인 이 땅에서 오랜 세월 읽힌 『아함경』이라는 한역경전과는 읽는 맛이 사뭇 다르다.
◉일아, 민족사, 28,000원

- 이상 도서 제목 순(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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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돌 이현수 ː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다 뒤늦게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책 읽기를 좋아하며 산 덕분에 독서가란 호칭을 얻었다. 2005년 대한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이후에는 글쓰기를 겸하고 있다. 불서읽기모임 ‘붓다와 함께 떠나는 책 여행’ 회원이며, 인터넷 매체 「불교포커스」에 불교 도서를 소개하는 ‘들돌의 간서삼매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황홀한 책 읽기』(여름숲, 2006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