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선택과 새로운 시작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2010-09-27     자현 스님

붓다의 생애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그 첫째는 왕궁시절이고, 둘째는 출가와 수행시절,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깨달음 이후인 교사로서의 삶이다. 그러므로 출가는 붓다의 일생에 있어서 일대의 전환기적 사건이라고 하겠다.
정반왕은 태자가 출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여 성문의 단속을 엄하게 하고, 또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태자를 기쁘게 해 줄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낮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여인들이 밤에 널브러져서 잠든 모습을 보고, 태자는 오히려 삶의 본질만을 되뇌게 된다.
결심을 굳힌 태자는 마부인 차익에게 애마인 백마 건척을 데려오게 하여, 새벽에 동문을 나서고 만다. 부왕의 성문 통제는 너무도 쉽게 뚫린다. 이것을 불전에서는 신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풀지 않더라도 성문지기의 입장에서 국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눈앞의 태자를 막아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 때문에 붓다께서 출가하실 수 있었는지 아느냐?”

태자의 출가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마부 차익이다. 차익은 후일 출가하게 되는데, 언제나 방종하고 막돼먹어서 승단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곤 하였다. 이때 다른 승려들이 충고하면, 차익은 언제나 “누구 때문에 붓다께서 출가하실 수 있었는지 아느냐?”라며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 자신 때문에 붓다께서 출가하실 수 있었으니, 자신의 공이 아니라면 승단 역시 존재할 수 없으므로 고마운 줄 알라는 의미이다. 이는 태자의 출가와 관련하여 차익이 중요한 조력자였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동시에, 부왕이 태자의 출가를 막았다는 기록에 사실성을 부여해준다.

차익은 붓다 외에는 제재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인간이었다. 붓다의 열반과 관련하여 아난이 최후로 물은 내용이 “붓다께서 열반하시면, 차익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라는 것이었다. 열반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붓다께 이를 여쭈었다는 것은 차익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이때 붓다의 답변은 차익을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서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알게 하라는 것(梵檀罰)이다. 요즘 말로 하면 ‘왕따’시키라는 것인데, 이는 차익의 성격을 고려한 붓다의 세심한 처방으로 주효하게 된다.

차익은 붓다의 열반 이후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여 결국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이것은 붓다를 만나지 못했다면 있을 수 없는, 붓다의 위대성인 동시에 출가를 도운 차익의 복이라고 하겠다.

인도의 동쪽 숭배와 붓다의 동문(東門) 출가

중국문화권에서 군주는 남쪽을 향하고(南面), 신하는 북쪽을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성인을 모실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성인은 위계가 황제와 같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궁궐과 사원건축은 공히 본전(本殿)을 남향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남향집을 선호하는 풍토로 정착되게 된다.

고대 중국의 중심지역인 관중지방이나 우리나라는 조금은 추운 기후에 속한다. 그로 인하여 햇빛을 보다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는 남향을 선호하게 된다. 또한 이는 자연채광을 고려한 것이기도 한데, 우리에게 ‘양명한 것=좋은 것’이라는 공식은 바로 이렇게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더운 기후에 속하는 인도는 상황이 다르다.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남쪽보다는 동쪽을 선호하는 것이다. 인도문화의 동쪽 선호는 아리안족의 태양숭배 및 농경과 관련된다. 아리안족의 상징으로 후일 불교에도 수용되는 ‘만(卍)’이나 ‘차크라(쬉)’와 같은 것들은 공히 태양을 상징한다. 즉, 중국문화권이 햇빛의 밝음을 선호했다면, 인도문화는 태양 자체를 선호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인도문화를 고려한다면, 붓다의 동문 출가에는 ‘길(吉)한 방향’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후 붓다의 깨달음이 길상초를 깔고 동쪽으로 앉아서 새벽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해 보게 된다. 또한 인도의 동쪽 숭배는 중국문화와는 달리 인도의 사원건축이 동향하는 문화를 파생하게 된다.

전설적인 명의 지바카와 백마 건척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은 아사세와 무외를 아들로 두었는데, 지바카는 무외의 양자이다. 지바카는 서북인도의 탁실라에 가서 의술을 배우고, 중국의 화타나 편작 같은 전설적인 명의가 된다. 지바카는 붓다에 대한 신심도 대단하여 마가다국의 왕족과 붓다를 비롯한 승단의 주치의로서 이들만을 치료하였다. 이로 인하여 율장에는 지바카의 치료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 출가하여 병이 치료되면 환속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이를 제재하는 대목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루는 카시국 국왕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치료가 어렵게 되자, 빔비사라왕에게 지바카에 의한 치료를 요청하게 된다. 그런데 카시국에 가서 왕을 면담한 지바카가 제시한 조건은 성 밖에 카시국에서 가장 좋은 말을 대기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왕이 이를 시행하자 지바카는 면전에서 왕을 심하게 모욕한다. 그리고는 잠시 자리를 비우는 척하며 성 밖에 대기시킨 명마를 타고 마가다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왕은 지바카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여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지바카가 자리를 비우자 결국 분노가 폭발하여 치료고 뭐고 간에 잡아 죽일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미 지바카는 가장 좋은 말을 타고 갔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해도 따라가서 잡을 수가 없었다. 최고의 명마까지 빼앗겼다는 것을 안 왕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결국 화병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모두 지바카의 치료를 위한 방편이었다. 지바카가 왕을 보니, 어려서부터 그 누구에게도 굴복되어 보지 못한 것이 병으로 엉겼고, 이를 푸는 것은 모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왕을 모욕하고는 재빠르게 명마를 타고 국경을 넘어갔던 것이다.

후일 왕은 병이 나았고, 지바카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최고의 비단을 선물하게 된다. 카시국은 당시 전인도에서 최고의 비단이 생산되는 곳이니, 이는 가장 좋은 비단을 선물했다는 의미이다. 지바카는 이 선물을 받고 자신이 감히 입을 수 있는 천이 아님을 직감하고 빔비사라왕에게 올린다. 그러자 빔비사라왕 또한 겸사하며, 최상의 비단을 붓다께 공양하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지바카의 뛰어난 의술과 빔비사라왕과 지바카의 붓다에 대한 존경심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대사회에서는 가장 빠른 말을 탔을 경우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태자의 출가 역시 건척이라는 명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는 태자가 동문을 나선 이후에는 부왕이라도 태자를 잡아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비라국에 건척보다도 더 좋은 말이 없었다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건척이 태자의 말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부왕의 말이 더 좋았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신하가 감히 국왕의 말을 탈 수가 있었겠는가! 이를 고려한다면, 태자가 동문을 나선 이후 태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하겠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사냥꾼의 옷으로 바꿔 입다

출가 후 태자는 스스로 칼로 머리카락을 잘라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는 근처의 숲에 있던 사냥꾼과 옷을 바꾸어 입는다.

머리카락은 인간에게 있어서 안테나와 같은 것으로 외부의 경계와 내면의 정신을 상응시킨다.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자 힘을 잃었다는 것이나,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게 하기 위해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도법(道法)을 행하였다는 점 등은 모두 이러한 의미라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는 외부적인 타력에 의지하지 않고 내면적인 나를 관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라 외적인 반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태자의 출가에 등장하는 사냥꾼과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사냥꾼은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서 동물들이 덜 경계하는 수행자의 옷, 즉 가사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사냥꾼은 외형은 수행자이지만 내면에는 악심을 가진 세속인이다. 이에 반해서 태자는 외양은 세속의 귀족이지만 그 내면만큼은 자비의 마음을 가진 수행자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옷을 바꾸어 입으므로 두 사람은 결국 각기 완성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이는 이들의 미래 역시 매우 다른 길을 걷게 됨을 상징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호오(好惡)의 결과들은 결국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하겠다. 또한 제아무리 가사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고유의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쓰임에 따라서 정의되는 것이다. 즉, 일체는 존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연기(緣起)의 가르침은 이러한 일화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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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스님 ː 철학박사(율장) 및 문학박사(불교건축). 동국대 철학과 및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및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 졸업, 고려대 철학과 박사 수료하였다. 약 50여 편의 논저서가 있으며, 현재 월정사 교무국장으로서 동국대, 울산대,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