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로 살아가는 절집 생활

알쏭달쏭 불교생활탐구 / 포살(布薩)과 자자(自恣)

2010-09-27     불광출판사


절 집안에서의 생활윤리는 계율로써 묶여 있다. 그리고 일상의 생활규범도 청규에 의해 정해져 있다. 계율과 청규가 무시되면 대중의 수행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찰의 전통 풍습 또한 계율의 윤리의식으로 유지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찰의 식생활에 엄격한 채식주의가 시행되고 있으며, 독신주의 수행이 근본이 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평생을 이 두 가지만 지키고 산다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들이 매우 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다. 자기를 이기는 극기정신이 없으면 수행자가 될 수 없다.

행자시절에 겪은 혹독한 참회법
내가 처음 출가하여 통도사에서 행자생활 할 때 큰 사건을 하나 저질렀다.
추운 겨울, 당시 나는 후원에서 국을 끓이는 갱두(羹頭) 소임을 맡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큰 가마솥에 밥을 하고 국을 끓이던 시절이었다. 매끼마다 100여 명이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였는데, 콩나물국이나 시래깃국을 자주 끓였다.
날씨가 추워 물을 데우고 적당히 온도를 맞춘 다음 큰 고무대야에 담아 두고,거기에 콩나물이나 시래기를 씻어 국솥에 넣어 끓이곤 했다. 그런데 매번내가 콩나물이나 시래기를 씻기 위하여 끓여놓은 물을 어린 스님 한 분이고의적으로 다 가져가 써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린 스님이 하도 못되게 굴기에 말다툼을 했다. 나는 그만 화가 난 나머지 그 스님을 한 대 때리고 말았다. 그러자 어린 스님이 큰방으로 달려가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인스님들에게 행자가 자신을 때렸다고 고자질을 해버린 것이다. 이에 학인스님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나를 붙잡으려 하였다. 나는 엉겁결에 붙들리면 안 좋은 꼴을 당할것 같아 도망을 치고 말았다. “잡아라!” 하고 뒤쫓아 오는 학인들을 피하기 위하여 절문 밖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나왔다. 학인들의 추격을 벗어나 산문 밖에 이르렀을 때, 정신없이 쫓겨 달아나는 내 뒤에서 “한 행자!” 하고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후원의 일을 감독하고 있는 원주(院主)스님이었다. 학인들에 의해 행자 하나가 쫓겨 절문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붙들어 보려고 급히 택시를 불러 타고 산문까지 나왔던 것이다.
“한 행자, 출가를 포기하고 속가 집으로 갈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절로 가려고 합니까?” 내 속가 성이 ‘한’가인 줄을 안 원주스님이 의외로 상냥하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잘못을 저질러 다른 절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나의 대답을 들은 원주스님은 나를 달래면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따라 다시 절로 들어가면 사태를 수습해 별 문제가 없도록 해주겠으니, 걱정 말고 같이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원주스님의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큰절로 들어왔다. 원주스님은 강원의 입승과 찰중을 불렀다. 내가 저지른 일은 자신이 참회시키겠으니 강원에서는 문제 삼지 말라고 부탁을 하면서, 원주실 광에서 과자와 과일을 한소쿠리 담아 학인들이 공부하는 큰방으로 들려 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배려에 의해 학인스님들은 더 이상 나를 체벌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때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는 큰방인 감로당과 황화각에들어가 학인스님들을 향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9배의 절을 하고,뒷방에 계시던 9분의 노스님들 방을 찾아가 참회의 절을 또 9배씩 하였다. 그리고 대웅전 법당에 들어가 1,080배의 절을 하였다. 행자시절에 한번의 화를 참지 못하여 어린 스님을 한 차례 때린 것으로 말미암아 혹독한 참회법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나중에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강원에서 『화엄경』을 보다가 「보현행품」에 있는 “화를 한 번 참지 못하면 백만 가지 장애가 생긴다.”는구절을 보게 되었다. 개인이 잘못을범하면 대중에게 참회해야 하는 것이 절 집안의 원칙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는 참회 없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말 한 마디 실수라도 참회해야 한다. 참회정신이 살아있어야수행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대중 참회의식, 포살과 자자
총림에서는 대중이 합동으로 실시하는 참회의식이 있다. 요즘은 일정지역을 묶어 본사별로 결계(結界)를 만들어 실시한다. 결계란 일정한 지역을선정하여 경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승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보호하며,수행할 때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계율을 잘 지키기 위하여 일정한 지역의범위를 만들어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결계를 하여 포살(布薩)을 하는데, 포살이란 범어 우포사타(uposatha)를음사한 말로 대중이 함께 모여 계율의 조목을 소리 내어 읽으며 계행이 잘지켜지는가를 점검하는 의식이다. 요즘은 대승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범망경』 하권에 있는 10중대계(十重大戒)와 48경계(四十八輕戒)를 설한다. 말하자면 대승포살을 하고 있다.
이 포살의식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인간의 윤리도덕을 제고하기 위한실천적 노력을 대사회적으로 천명하는 포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불교의 대사회적 기능의 중심이 포살정신에서 실천적으로전개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살은 곧 포교가 되는 것이다.
원래 이 포살은 인도의 자이나교에서 불살생을 실천하기 위한 비폭력정신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일설에는 빔비시라왕이 부처님께 권하여 불교에서도 포살을 수용하여 한 달에 두 번, 신월(新月)과 만월(滿月) 곧 1일과 15일에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팔관재계(八關齋戒) 의식 같은 것은 포살을 통한 국민의 도덕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제(結制)와 해제(解制)는 둘 다 기다려지는 날이다. ‘이번 결제는 어디로 가고 해제 때는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은 선수행자들의 마음에 깃든 낭만이기도 하다. 결제는 공부를 위해 출입을 삼가고 정진에 몰두하는 기간을 묶어 맺는다는 말이고, 이를 푼다는 뜻에서 상대말인 해제가 있다.
결제하는 것을 안거(安居)에 들어간다고도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인도가 우기와 건기로 나뉘고 겨울이 없어 1년에 하안거(夏安居)만 실시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동안거(冬安居)도 있다. 음력으로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가 여름결제 기간이고, 10월 보름에서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가 겨울안거 기간이다.
해제할 때 실시하는 참회의식 중에 자자(自恣)라는 것이 있다. 자자는범어 파바라나(pavarana)를 번역한 말이다. 자기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 고백하며,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신의 잘못을대중에게 지적해 주기를 청하는 일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안거가 끝나는날인 7월 보름에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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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스님 ː 1947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4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통도사 강주, 정법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 고시위원 및 역경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조계종립 승가대학원장으로서 승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조계종 표준 금강경 바로 읽기』, 『처음처럼』,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