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百中), 불가와 세간의 길일(吉日)

인연 따라 마음 따라

2010-09-27     불광출판사

중생과 영가를 위하는 날
백중(음력 7월 보름)은 우리 불가에 몇 가지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첫째는 시방의 모든 승가에서 사월 보름날(음력) 여름 석 달 안거에 들어 신명을 받쳐 정진하다가, 이날 공부를 마치고 해제와 동시에 중생 구제의 만행을 떠나시는 날입니다.
또 한 가지는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신통 제일인 목련 존자가 무간아비지옥에 빠져 고통 받으시는 어머니를 제도한 날입니다. 목련 존자는 자신의 신통과 수행력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쭙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르시는 말씀을 따라서 칠월 보름 해제일에 맞추어 오백승재를 베풀어, 부처님과 청정한 승가에 크게 공양을 올려서 마침내 어머니를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제도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이날은 목련재일 혹은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불가의 명절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영화를 본 기억 가운데 영화인 한갑진 선생님이 만든 ‘목련구모(木蓮求母)’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목련 존자는 자신의 어머니 계신 곳을 찾아 천상에서 인간 축생세계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만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지옥세계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생전에 아들이 모르는 여러 가지 악업으로 인해 무간아비지옥에서 고통 받던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하소연합니다. 목련 존자는 목이 말라 타들어 가는 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이 지니고 간 연꽃잎을 하나 따서 어머니 입에 넣어 드립니다. 하지만 연꽃잎이 즉시에 불꽃으로 변하여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머니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해드릴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목련 존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잠시 영화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당시에는 ‘관세음보살’이나 ‘서산대사’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자비의 권화(權化)를 행사하며 정법으로 세상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스님들의 활약상을 영상으로 보면서, 어릴 적 푸른 꿈 속에 스님이 될 자신의 모습을 새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희는 부디 선심 쓰고 살아라”
먼저 가신 조상님들의 천도를 위해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고 축원하는 목련재일이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대략 십수 년 전에 제가 잘 아는 분이 병에 걸려 돌아가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분은 평생 의업을 생업으로 하며 적지 않은 부를 이루신 분이고,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나 뒷바라지 등도 나무랄 것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작은 도움을 주거나 하는 일에는 그다지 내놓을만한 일이 없었던 분입니다.
한때 유림의 일을 보던 그분은 그로부터 몇 년 전 보살님이 돌아가시자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새로 들어온 자부의 영향으로 자녀들이 모두 모 종교를 신앙하게 되었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이 병상에서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병문안을 가던 날, 병실에는 나와 같이 공부를 한 아들들이 간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상의 거사님은 저를 보자마자 금방 알아보시고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작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 무어라 중얼중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 보니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는 염불소리였습니다. 저는 손을 잡아 드리며, “예, 어르신 아미타불 염불을 지극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시면 가시는 길이 평안하실 것입니다.” 하고 위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남들 가는 길은 저렇게 밝고 환하고 평탄한데 내가 가는 길은 왜 이렇게 어둡고 험하며 가시밭길인가.”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자꾸 염불을 하시다 보면 어르신 가는 길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간병을 하던 아들은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니 노망이 들어서 헛소리를 하시네.”라며 신경도 안 쓰지만,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들고 나면서 당신이 가셔야 하는 유명계의 길을 먼저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른 이들이 가는 앞길도 살펴보셨기에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심이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인색하게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사신 당신의 후생 길이 어렵고 힘이 든 것을 보신 어르신이 자녀들에게 남기시는 마지막 유훈인 것입니다. 그런데 “얘들아 너희는 부디 선심 쓰고 살아라.”는 저 귀중한 말씀을 자손들은 노망이 들린 말로 치부해버리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전에 못한 선행을 후회하고 후회하여도 이제는 모두가 다 지나가 버린 일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승복을 입은 제 모습을 보시면서 아미타불 염불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신 것은 거사님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인연이 있었던 것이니, 거사님은 그 후 며칠이 지나서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음은 회심곡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착한 사람 불러들여 공경하고 접대하며 / 몹쓸 사람 구경하라 극락가는 사람 보소
네 소원을 다 일러라 네 원대로 하여주마 / 극락세계 가려느냐 연화대로 가려느냐
신선 제자 되려느냐 장생불사 하려느냐  / 옥제 앞에 심임하여 반도소임 하려느냐
석가여래 제자되어 선관소임 하려느냐 / 선녀차지 선관되어 요지연에 가려느냐
출어인간 하려느냐 부귀공명 하려느냐 / 남중일생 호풍신에 명문자제 되려느냐
삼군사명 총독하여 장신 몸이 되려느냐 / 팔도감사 육조판서 대신 몸이 되려느냐
수명장수 부귀부자 귀한 몸이 되려느냐

위와 같은 노랫소리에서도 보듯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저승 가는 길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니, 우리가 살아생전에 선심, 선어, 선행을 어찌 모른다 하겠습니까.
칠월 보름날 백중은 불교에서 말하는 조상 공경의 의미에 더하여, 세간에서는 여름내 일하느라 애쓴 사람들을 위로하는 날입니다. 음식과 의복을 베풀고 일을 쉬도록 하며, 요샛말로 하면 ‘노동자의 날’ 혹은 ‘근로자의 날’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칠월 보름이 세시풍속의 전통과 함께 오래도록 전해지는 길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한갑진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불교의 구세 사상을 강조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사상을 바르게 가르쳐 나가도록 대비수고하시는 불자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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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대웅 스님 ː 공주 원효사 주지.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불광한의원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었다. 운호 스님 문하로 입산, 송광사 천자암 활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고,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어린이법회, 학생회, 대불련, 청년회, 거사림회, 공주 신행단체 연합회, 국립공주병원 법회 지도법사로서 포교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공주경찰서 경승실장, 원효유치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다음 카페 ‘원효사(http://cafe.daum.net/rhdwndnjsgytk)’를 운영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불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