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수평선

시절인연

2010-08-31     불광출판사

                                                                   섬 >>>  33×24cm, 한지에 수묵채색과 글씨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 저 섬에서 한 달만 한달만 / 뜬 눈으로 살자 / 저 섬에서 저 섬에서 한 달만 / 그리운 것이 그리운 것이 / 없어질 때까지 / 보고픈 것이 보고픈 것이 / 없어질 때까지 / 저 섬에서 살자 / 뜬 눈으로 살자

- 이생진 ‘무명도’ 중



무릇 고립을 통해 집착의 삶을 비우고픈 영역이 ‘섬’이라면 섬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다가가 넘고픈 그리움의 표상입니다.
정치적 연루로 유배지로 떠났던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보길도. 서예가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의 진도.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제주도. 정약전(1758~1816)이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지었던 흑산도. 그리고 10년 전(2000년)에 인연이 닿았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이 떠오릅니다.
학자와 예술가가 치욕의 삶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유배지를 순례하며 고독과 비애, 그리움과 기다림을 떠올렸지요.
한편 고혹적인 에메랄드 물빛의 잔지바르 섬에서 맞닥뜨린 감옥은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어둠 속 녹슨 쇠창살 사이로 드러난 푸른 수평선을 보는 순간, 전율 속에서 검은 노예의 분노와 눈물이 창공을 부유했습니다. 그 섬에서 고향을 향해 울부짖었을 애수의 수평선! 인간의 죄와 슬픔을 되뇌어야 할 곳이 지금은 아이러니하게 최고의 관광지로 북적입니다.
우리 인생은 자의든 타의든 고립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나를 성찰하고 세상의 그리움으로 수평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득 나그네 되어 섬으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 아름다운 것은 / 그대 두고 간 하늘이 / 거기 있기 때문이다 / …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 아름다운 것은 /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 끝끝내 닿지 못할 /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한기팔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중

이른바 고립이 그리움을 낳고, 번뇌는 보리의 씨앗이라고도 하였지요.


                            감옥과 수평선 >>> 74×142cm, 한지에 수묵담채, 200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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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 ː 지금까지 12번의 개인작품전과 그림순례를 통해 12권의 저서를 펴냈다. 주로 생명의 숨결을 담은 자연과 문화유산을 통찰하여 오늘의 삶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붓길이었다. 여기에 사생과 사유의 공간으로 뭇 인연들과의 만남을 회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