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삶의 쾌감을 되찾다

수행과 만나다 / 순천 송광사 여름수련회

2010-08-31     불광출판사

송광사까지 가려면 첫차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또 지방에서 전날 일정이 늦게 끝난 탓에 터미널 근처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한여름 밤 도심가는 불협화음의 오페라하우스다. 지칠 줄 모르고 으르렁대는 오토바이의 울부짖음. 목청껏 불러 젖히는 애주가의 태평가 한가락. 사이좋게 주고받는 육두문자 장단. 새벽 여명에도 희석되지 않는 이 번잡한 세계에 밤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물론 꿈꿀 수 있는 권리 역시 주어지지 않는다.
버스를 갈아타는 시간 외에 정신없이 자다 눈을 뜨니 어느새 송광사에 도착했다. 완만한 숲길을 따라 걸으며 몸을 추스르고 수행에 대한 마음도 다잡았다. 문득 화두 한두 개쯤 준비해 가는 것이 수련회에 대한 예의란 생각에 이것저것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끝도 없이 나왔다. 다 하다가는 14박 15일도 모자라지 싶어 고민 끝에 ‘선입관 버리기’로 화두를 정했다.
평소 누구를 욕하거나 해코지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처와 같은 아량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속으로 조용히 곱씹을 뿐. 겉으로 티가 안 나니 별 문제될 건 없지만, 속으로 음흉하게 상대를 대하니 한번 거슬리면 일절 개선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첫인상을 보고 3초 만에 호불호를 결정한다지만 내겐 3초 만에 상대의 존재 자체를 결정하는 과단이 있다. ‘저런 망종(亡種)!’



악으로 깡으로, 용맹정진

물욕(지갑, 휴대전화)을 내려놓고 수련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분별심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었다. 반(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을 나누고, 수련회 일정 및 예불 등에 대한 습의 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입재식이 끝나고 첫 공양 시간이 되었다. 이때부터 모든 공양은 발우공양이었다.
전발(展鉢, 발우 펴기)을 하고, 오관게(五觀偈)를 암송하는 데 모양새가 꽤나 기품 있었다. 깔끔하게 공양을 마치고 수발(收鉢, 발우 닦기)했다. 그때 지도법사스님께서 공양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퇴수(退水)물을 나눠 마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덕분에 이후 공양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발우를 닦고 또 닦아도 이상하리만치 자꾸 지저분해 보여 밥 먹는 시간보다 발우 닦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자연히 밥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신 것은 당연지사. 수련회를 다녀오면 살이 빠질 거라더니, 과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철이라 수련회 기간 내내 그칠 줄 모르고 비가 왔다. 그 덕에 시원한 사자루에 앉아 좌선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그것도 이삼일 지나니 좀이 쑤셨다. 사실 실내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만도 답답할 노릇이지만, 좌선은 모든 걸 훌훌 떨쳐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다. 10분이 지나면 위로부터 잡념이 밀려오고, 5분이 더 지나면 아래로부터 통증이 시작된다. 다시 5분이 더 지나면 통증만이 남아 그 후로는 그저 악과 깡으로 악전고투. 고요히 정좌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 좌선이라지만 밀려드는 통증에 눈을 감으면 수마(睡魔)가, 눈 뜨면 잡마(雜魔)가 판을 치니, 이 삼중고(三重苦)를 쉽사리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다행히 천재일우로 셋째 날 잠시 비가 그쳤다. 지도법사스님의 안내로 며칠 만에 밖을 나서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하니 행선(行禪, 걷기 참선)은 차치하더라도 행복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너른 터에 둥글게 서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라는 스님 말씀에 진심을 담아 손을 살포시 쥐어보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따스함만큼이나 마음도 평온해졌다. 이번엔 동심원을 그려 서로 눈을 마주쳤다. 평소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치는 걸 극도로 꺼려했지만, 용기를 내어 상대의 눈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뭘 어쩌나 하는 마음에 떨렸지만 금세 시선이 자연스러워졌다. 눈을 마주함으로써 말하지 않아도 아니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서로의 시선을 통해 전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힘들고 답답했던 일정도 마지막 순간에 다가갈수록 어쩐지 아쉬움이 남았다. 1,080배 철야정진을 마치고 서기도 앉기도 힘든 두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별 것 아닌 것에서 오는 이 성취감. 하지만 언제부턴가 잊고 살았던 쾌감을 다시금 맛보았다. 예정대로라면 수련일정(수계식 제외)은 철야정진을 끝으로 모두 종료된다. 그러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다음날 새벽예불에 참석하기로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수련생들이 동참했다.
새벽예불까지 두 시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수련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말 못한(?) 사정을 속 시원하게 해치웠다. 물론 회향식 전까지 묵언을 해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럼없이 말을 꺼냈다. 각자의 인생담을 나누면서 그저 인상으로만, 겉모습으로만 지레짐작했던 것과 다른 이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다양한 군상들이 모인 곳엔 으레 눈에 띄거나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수련회 기간에도 그랬지만 대화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아집에 찬 선입견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총총히 빛나던 새벽 별들처럼

다시 세속의 옷으로 갈아입고 처음 모습으로 돌아왔다. 덩달아 날씨도 화창하게 개어 여름 본연의 기운을 되찾았다. 높게 뻗은 편백나무 숲과 울창한 대숲 길을 따라 법정 스님께서 머무셨던 불일암을 돌아보고, 하산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수련생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애당초 큰 고민이 있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해졌다. 아마 함께한 모든 수련생들도 수련회 기간 동안 내린 장맛비에 마음의 짐을 말끔히 씻어버렸을 것이다.
수련회를 마치며 매일 10분씩 좌선할 것을 다짐했다. 힘들었던 좌선을 왜 또 하려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잠시 부리는 허세일지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좌선하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 그 연대감 속에서 함께 인내하고 노력했기에 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는지 모른다.
4박 5일 동안 함께한 도반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참 소중한 인연들이다. 대웅보전 위로 총총히 빛나던 새벽 별들처럼, 우리도 인연으로 한 데 모여 서로의 어둔 밤을 환희 비추며 오래도록 함께 빛날 것이다.


송광사 여름수련회 안내     
올해로 40회째를 맞은 송광사 여름수련회(‘참나를 찾아서’)는 승보종찰에서 실시하는 수련회답게 매우 엄격하고 철저한 수행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매년 참가자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올해도 총 6차례에 걸쳐 수련회를 개최한다. 1·2차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수련회, 3·4차는 경험자 위주의 선수련회를 진행하며, 5·6차는 각각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편 2001년 결성된 송사모(송광사를 사람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송광사 여름수련회 동문 모임으로서, 매월 전국 유명사찰에서 법회를 갖는 등 회원 간에 교류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일정  
매년 7월~8월  4박  5일간(단, 청소년 수련회는 2박 3일간 진행)
        8월  7일(토) ~ 7월  9일(월) : 중·고생 수련법회
        8월 11일(수) ~ 8월 13일(금) : 초등 3 ~ 6학년 수련법회

프로그램  
참선(좌선, 행선), 묵언, 예불, 발우공양, 강의, 차담, 철야정진(1,080배)
 
문의 
송광사   061)755-0107, www.songgwang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