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물리치는 일로부터 결코 돌아서지 않겠습니다

정목 스님이 들려주는 마음고요 발원문

2010-08-31     불광출판사

번뇌는 모든 불행의 원천

번뇌만큼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은 적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그것은 돌고 돌며 저를 괴롭힙니다.
모든 외부의 적은 친절하게 대하면 호의를 보이는데,
내부의 적인 번뇌는 떠받들면 오히려 더욱더 번성하고 고통을 줍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죽지 않고 끝없이 고통만 가져오는 적이, 겁도 없이 마음속에 있거늘
어떻게 제가 윤회의 삶을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 윤회의 감옥을 지키면서 또한 지옥에서 처형과 고문을 맡는 자들이
제 마음속 탐욕의 우리 속에 남아있는데 어떻게 제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누가 작은 해만 끼쳐도 적을 물리치기 전에는 잠도 자지 못하거늘
번뇌라는 막강한 적을 물리쳐야 하는 제가 어떻게 도중에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격렬한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은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저의 모든 불행의 원천인 번뇌를 물리치려는 제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어떻게 절망할 수 있겠습니까?
어부, 축산업자, 농부 같은 이들도 생계를 위해 심한 더위와 추위 같은 고통을 견디는데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어찌 제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겠습니까?

허공 끝까지 시방에 거주하는 모든 중생들을 번뇌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제가 약속했지만 저 자신도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도 모르면서 그런 약속을 한 걸 보니 그땐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므로 번뇌를 물리치는 일로부터 저는 결코 돌아설 수 없습니다.



번뇌를 알아차리고 번뇌와 하나 되기            

발원은 이번 생애만을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해보는 소원이 아니라, 전 생애를 뛰어넘어 오직 완전한 해탈의 열매 맺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입니다.
오늘 올린 발원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번뇌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번뇌라는 것은 호의를 모릅니다. 떠받들면 떠받들수록 더욱 더 번성해집니다. 사람은 저절로 때가 되면 죽게 되지요. 언젠가는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번뇌는 그냥 두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번뇌 속에서 살다가 번뇌 속에서 죽는 것은 실패한 삶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에 있는 적들과는 잘도 싸우고 결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내면의 적인 번뇌는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어찌 모든 중생들이 행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발원문은 기필코 번뇌를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을 제불 보살님들께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말로써 하자니 번뇌를 물리친다거나 파괴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번뇌라는 것은 물리쳐야 하는 것도 파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번뇌가 일어나면 번뇌라는 것을 알고 그것과 하나가 되면, 번뇌는 더 이상 독자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지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번뇌의 힘은 더욱 강성해지고 또 지혜가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비와 지혜는 무언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 것일까요? 마음이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분리하기 때문이지요. 분리하는 마음을 이제는 그대로 알아차리도록 해보자 하는 것이 오늘의 발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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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ː 광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1990년 5월 최초의 스님 MC로 방송을 시작한 뒤 한국방송대상 사회상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사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던 스님은 이웃돕기 프로그램인 ‘거룩한 만남’의 진행자로 서울, 인천, 경기 일대의 달동네를 발로 뛰며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장애인 등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으며, 아픈 어린이 돕기 ‘작은 사랑’을 13년째 추진해오고 있다. 현재 명상과 마음공부 전문 인터넷 방송 유나(una.or.kr)의 ‘길을 찾는 사람에게’,‘마음을 펴는 요가’와  불교방송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