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흰 정강이뼈 하나 베고 누워

2010-08-09     정끝별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다비식에서 거화(擧火) 직전 한 스님이 외쳤던 말이다. 그 외침은 3D나 4D처럼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을 뚫고 나와 내 가슴에 사무쳤다.

얼마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슬픔까지 저려왔다.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관 앞에서, 영정 앞에서, 새로 단장한 무덤 앞에서 “아빠, 이제 편안하지? 여기 걱정은 마요. 꼭 좋은 곳으로 가세요. 아빠 보기에 어때요?”

나도 그렇게 말을 건네곤 했었다. 텔레비전은 꼬박 하루를 타고 잦아드는 불더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치듯 잠깐, 그 환한 잉걸불 사이에 누워있는 하얗고 긴 뼈를 보았다. 아니 본 것 같다. 어쩌면 흰 뼈가 아니라 재로 스러지기 직전의 타고 남은 참나무 둥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초도 안 되는 순간의 영상에서 나는 그것이 스님의 흰 정강이뼈임을 직감했다.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터졌다. 순결하리만큼 하얗고, 등불처럼 환하고, 군더더기 없이 간소한 그것, 참으로 예뻤다! 키가 크고 마르셨던 스님의 정강이뼈처럼 아버지의 정강이뼈도 저러 하리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정강이뼈는 천천히 흙과 더불어 육탈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퍼뜩 “부증생 부증멸(不曾生 不曾滅), 명부득 상부득(名不得 狀不得), 취부득 사부득(取不得 捨不得)”이라는 법문이 떠올랐다. ‘취부득 사부득’은 다비문에도 있다.

어쨌든 이 문장이 서산 대사와 당나라의 현각 스님의 게송시가 합쳐진 문장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유일물어차 종본이래 소소영영(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부증생 부증멸 명부득 상부득(不曾生 不曾滅 名不得 狀不得) 여기 이것 하나가 있느니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생겨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으며, 이름을 지을 수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네 - 서산휴정 스님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취부득 사부득 불가득중 지마득(取不得 捨不得 不可得中 只 得) 얻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어쩔 수 없는 가운데 이리 되었을 뿐이로다 - 영가현각 스님의 게송시 「증도가(證道歌)」 수많은 큰스님들이 ‘이것 하나(一物)’를 찾아 ‘이 뭐꼬’를 되풀이해 물었으리라. 잉걸불 더미에 가로 누워있는 흰 정강이뼈를 보는 순간 나는, ‘이것 하나’가 바로 저 가느다랗고 기다란 뼈 한 마디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삶은 저리 뼈 몇 마디를 남기고, 죽음은 그 뼈 몇 마디를 통해 확인된다.

그리고 결국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바로 삶이자 죽음인 것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설악 큰스님의 일갈이 떠올랐다. 정밀검사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문안을 올렸을 때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답하셨다.

“내가 본디 없는데 몸이 어디 있으며, 몸이 없는데 병이 어디 있겠노.” ‘부증생 부증멸 명부득 상부득 취부득 사부득’ 이랬거니, 아버지도 법정 스님도 큰스님도 나도… 그러니, “저 환한 것 / 저 불가능한 것 // 지는 벚꽃 아래 / 목침 삼아 베고 누워 /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 //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오직 예쁠 뿐!”(졸시, 「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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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에 시가 당선되었으며,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등이 있으며, 시론평론집으로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