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 바간, 탑을 품고 천년을 버티다

상상하고 가지 마라! 미얀마 2 / 바간

2010-08-09     관리자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바간의 일몰. 바간 곳곳을 돌아다니던 여행자들은 저녁이 되면 이곳 쉐산도 파고다로 몰려든다. 탑의 군락들 뒤로 떨어지는 이곳의 일몰 구경은 황홀 그 자체다. 미얀마도 신화와 전설로 빛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만년이다. 하지만 어느 땅이나 그렇듯 전설과 역사적 사실 사이엔 역시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미얀마 땅에 문헌상으로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최초의 왕국은 바간이다. 양곤에서 바간을 향해 다시 1시간 반이 걸리는 하늘길 여행을 떠났다. 세계 3대 불교유적군 - 바간 바간의 시작은 849년(통일 바간 왕조는 1044년 건립)이다. 1287년 쿠빌라이 칸과 그의 몽고군에 의해 멸망해 소국으로 갈가리 분할되기 전까지 바간 왕조는 주변 지역을 당당히 호령하며 숨 가쁘게 달렸다. 역사적으로 바간 왕조는 ‘미얀마 지역 최초의 통일왕조’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닌다. 하지만 그 역사적 치적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불탑(佛塔)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더 맞춤하다. 아니 누구나 그렇게 부른다. 『동방견문록』을 썼던 마르코 폴로도 바간에 대해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도시’라고 기록했단다. 마누하 사원의 불상. 바간 왕조에 의해 볼모로 잡혀왔던 마누하 왕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볼모인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듯 감실 가득 불상을 조각해 억눌린 감정을 표현했다.
불탑군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40평방킬로미터(우리나라 백령도 정도의 넓이)에 이르는 공간에, 두 세기에 걸쳐 그들은 약 5천여 개의 탑을 쌓았다. 탑의 밀집도가 매우 높아 탑 하나를 보고 돌아서면 또 탑이 나타나고, 탑의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빠져나올 때쯤이면 또 다른 탑이 발길을 가로 막는다. 천년이 지난 그 땅은 이제 탑 말고는 아무것도 품지 않았다.
탑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람 키로 가늠할 수 있는 크기의 탑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없다. 아무리 작아봐야 우리나라 전각 수준이고 웬만하면 큰 절의 대웅전 수준이다. 물론 좀 더 크다 싶으면 그 터가 종합대학 하나를 옮겨놔도 모자란 규모다.
물론 5천여 기가 온전히 모두 남아 있을 리는 없다. 천년이 지났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 남아 있는 탑의 숫자가 대략 2,500여 기라고 하니 반수는 온전히 보전된 셈이다. 짧은 우기와 긴 건기 덕분에 벽돌로 지은 탑(전탑)들은 양호하게 보전되어 있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탑들은 전탑 형태로 그냥 남겨두지 않고 그 위에 옻칠을 하고 그늘에 말린 뒤에 다시 황금을 입혔다. 2~3년에 한 번씩 이렇게 하다 보니 금의 부피만큼 탑의 크기는 점점 불어난다.
여하튼 하늘이 허락했건 사람이 다듬었건, 황무지로 남은 땅에 수천 기의 탑을 남긴 덕에 현재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군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인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내전으로 총질을 해대건, 비가 나라를 집어삼키건 그 유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랑곳없다.

부파야 파고다. 1세기에 건설됐다는 주장과 3세기에 건설됐다는 주장이 있는 사원이다. 바간 왕조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불교가 신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1975년 대지진으로 부서졌던 것을 다시 세웠다. 천년의 탑이 품은 이야기 통일 바간의 첫 번째 왕이었던 아나와라하따는 지극한 불심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불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기 위해 남쪽에 있는 몬족(바간 왕족 건설 전까지 미얀마를 대표하던 대표 종족)에게 불경(佛經)을 요구했다. 진짜 불경이 필요해서였는지 아니면 전쟁선포였는지 알 수는 없다. 여하튼 이를 거부하던 몬족의 왕 마누하는 전쟁에 패하고 급기야 바간에 볼모가 되었다. 당시 잡혀왔던 마누하 왕은 난파야 사원이라는 곳에 왕비와 함께 갇혔다. 직접 돌아보니 아직 바간에 본격적인 불교사원이 건립되기 이전의, 힌두교 사원처럼 보였다. 그가 감금에서 풀려나 처음 세운 사원은 그의 이름을 따 마누하 사원으로 남았다. 난파야와 마누하 사원은 바로 이웃하고 있는데, 지금은 두 사원 사이에 판자촌 몇 개와 아이들의 흙장난 무덤 몇 개가 그 경계가 될 뿐이다. 여하튼 난파야와 마누하 사원은 바간 왕조 불교 유입의 증거로, 그리고 볼모로 잡혀왔던 마누하 왕의 슬픈 이야기로 남아 아직도 바간을 지키고 있다. 특히 마누하 사원의 불상은 그의 유배 생활을 상징하듯 무언가에 갇혀 답답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은 사원을 비집고 일어서려 하지만 사원은 불상을 짓누르고 있다. 마누하 왕은 자신의 갑갑한 심정을 이렇게 남겨놓았다. 쉐지곤 파고다. 바간의 초대 왕 때 만들어진 파고다. 부처님의 사리를 싣고 온 흰 코끼리를 풀어놓고, 그 코끼리가 처음 쉬었던 곳에 지었다고 한다. 5만 평이 넘는 땅에 탑과 전각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바간 땅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게 이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인도에 남아 있는 아쇼카 왕 석주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경 이미 아쇼카 왕의 전도사가 미얀마 지역에 당도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후 바간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의 1천년 사이에 불교는 미약하나마 이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때를 증명하는 사원은 바로 미얀마의 젖줄 이라와디 강변을 끼고 우뚝 선 부파야 사원이다. 사원의 건립을 기원후 1세기경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원후 3세기경으로 그 건립연대를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시기로 추정하건 바간 왕조가 들어서기 한참 전이다.
물론 본격적인 탑의 건립은 초대 왕 아나와라하따 때부터다. 그 초창기 작업으로 알려진 곳은 바로 쉐지곤 파고다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던 아나와라하따 왕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왔던 흰 코끼리를 풀어놓고 그 코끼리가 처음 쉬었던 곳에 탑을 세웠다. 바로 쉐지곤 파고다다. 탑 주위에 둘러쳐진 회랑이나 전각이 들어선 자리까지 합하면 약 5만 평 규모다. 말이 5만 평이지 그 웅장함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말로만 표현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아난다 사원 북쪽에 있는 부처님. 가까이서 보면 분노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웃음을 보여준다. 보통 기도를 할 때 스님, 왕, 백성의 순으로 앉았다는데 각각 분노의 모습, 평범한 모습, 웃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바간 순례의 백미는 아난다 사원, 그리고 바간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누구나 올라가 본다는 쉐산도 파고다다. 사실 미얀마의 사원에 들어설 때마다 감탄보다는 위압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함에 아름답다기보다는 투박하게만 보이는 조각 기술 때문이다. 이들에겐 항상 사이즈가 문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난다 사원은 사뭇 다르다. 그 규모도 물론 대단하지만 550개가 넘는 감실에 갓난아이만한 부처님을 새겨놓은 정성이며, 보는 위치에 따라 얼굴 모양이 분노와 환희로 뒤바뀌는 절묘한 형태를 이룬다는 북쪽의 부처님 앞에 서면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바간, 아니 미얀마를 통틀어 제일이라 할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의 석굴암 같은 빼어남을 상상하면 오산이지만…. 바간의 시장. 미얀마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날의 찬거리를 그날 마련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점심때까지만 반짝 시장이 열린다.
탑 뒤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
항상 바간의 마지막 코스는 바간 전체를 일몰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쉐산도 파고다다. 탑 뒤로 떨어지는 붉은 해의 풍경이라니! 얄팍한 글쓰기 솜씨로는 형언하기 힘든 것임에 분명하다.
2,500기 탑을 한눈에 담아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쉐산도 파고다에서라면 가능하기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생긴다. 일몰은 한쪽에서 펼쳐지지만 꼭대기의 사방을 돌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간을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담는 건 가능하다.
바간을 더욱 짬지게 돌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바간에 내리자마자 우마차를 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녁이 되면 쉐산도 파고다로 몰려드는 우마차 행렬도 빼놓을 수 없는 바간 순례의 재미다.







TIP.
미얀마 여행의 최적기는 10월에서 2월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기인 여름에도 여행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하루 내내 비가 계속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낮에만 내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45도가 넘는 미얀마에서 낮 동안에 여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미얀마로 직행하는 비행기는 없다. 방콕이나 베트남을 경유해야 한다. 현재 미얀마로 이동하는 수단 중 가장 싼 것은 베트남 항공을 이용해 베트남을 경유해 그곳에서 다시 미얀마로 이동하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 항공의 경우 한국에서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에서 미얀마까지 같은 항공사로 가기 때문에 편리하다.
문의: 베트남 항공 02)757-8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