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이름으로 지역사회에 깃들다

만남, 인터뷰 / 완도 신흥사 주지 법일 스님

2010-06-24     관리자
이른 아침 서울을 빠져나와 남도행 고속도로에 오른다. 광주에서 13번 국도로 갈아타고 인적 드문 시골길을 하염없이 흘러서 간다. 나주국밥집이 보이고, 멀리 영암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강진 백련사 푯말을 뒤로하고 땅끝마을 해남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 비로소 목적지 완도에 도착한다. 먼 길, 하지만 서울과의 거리감만큼 커져가는 이 안도감은 무엇으로 설명될까?
남도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만족스럽다. 넉넉한 인심에 자연경관도 아름다우니, 입과 눈이 즐겁고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진다. 그러나 늘 아쉬운 건 다른 지역에 비해 불교세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완도 역시 타종교의 텃밭이다. 이처럼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11년째 지역불교의 활성화와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완도 신흥사 주지 법일 스님(54세)이 그 주인공이다.





장보고 범종을 타종하며

“이곳에서 불교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완도에 살면서 싸움꾼이 돼가고 있어요. 가는 곳마다 문제 제기를 하니 지역사회에서 강성으로 비치게 됩니다. 저도 어찌 착하고 순하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불교가 잊히게 되니까, 퇴보해가는 불교가 안타까워 안간힘을 쓰며 자꾸 움직이는 거예요.”
완도는 통일신라시대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한 해상왕 장보고의 섬이다. 완도는 장보고의 고향이며, 그가 설립한 청해진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법일 스님이 신흥사 주지로 부임해 와서 보니, 이해되지 않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매년 5월 첫째 주 ‘장보고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는데, 불교가 쏙 빠져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불교를 빼놓고 장보고를 거론할 수 없다. 장보고는 마음에 법화사상(관음신앙)을 지닌 철저한 불교도였다. 중국, 일본, 제주도 등 장보고 선단이 닻을 내리는 곳마다 절을 창건할 정도로 신심이 돈독했다. 또한 중국의 선종이 국내에 들어올 때 장보고 선단을 이용했으며,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모두 장보고와 관련이 있다.
“2000년도였어요. 장보고 축제에 불교가 빠진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닙니까. 그래서 그 참여의 형태로 불살생의 생명존중사상을 기치로 걸고 방생을 계획했습니다. 군에 제안서를 내서 협의가 잘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담당자가 저를 자꾸 피하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그 이유를 알아보니, 완도 내 126개 교회에서 불교계의 참여를 적극 반대한다는 진정서를 낸 것입니다. 그것에 아랑곳 않고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서 3천여 명의 불자들이 와서 방생을 아주 잘 치렀어요.”
방생은 그 해 장보고 축제의 백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번 상대의 거대 권력과 맞부딪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좋은 기획과 아이템을 갖고 다방면으로 힘을 모아보려 애썼지만, 일회성 행사로 그치거나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스님은 여러 궁리 끝에 지난해 3월 ‘장보고 범종’을 조성하여, 장보고와 관련 깊은 중국 산동성 법화원과 일본 야마가타현 입석사 대표들을 초청해 ‘장보고 범종 타종식 및 한중일 삼국 사찰 자매결연 협약식’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올해부터 ‘장보고 범종 타종식’이 장보고 축제의 공식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 5월 7일 삼국 대표가 다시 모여, 타종과 함께 장보고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환경운동

스님은 광주·전남 유일의 불교재단학교인 정광중학교를 다니다, 3학년 때 출가했다. 가세가 기울어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절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 하여 백양사로 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
“어릴 때 일찍 출가해서 그런지, 성격이 참 못되고 버릇이 없었어요. 안하무인이지요.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늦게 출가한 스님들한테 골탕도 많이 먹이고 그랬지요. 사회적 관심이나 역사적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86년 중앙승가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동아리에서 불교적 시각으로 정치, 사회, 역사, 경제를 공부하면서, 사회적 인식이 새롭게 정립되고 불교의 역할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광주 지역 청년불자들과 사회 문제를 고민하며 재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빈정사 주지를 맡아 포교에도 적극적이었다. 99년 완도 신흥사로 오면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현재 신흥사 주지 외에도 백양사 부주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행복한완도생협 이사장, 장보고아카데미 대표 등을 맡고 있다.
스님은 유독 환경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불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스님이 상임대표로 있는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는 2008년 4월 창립된 후, 환경아카데미, 어린이생태학교, 사찰생태기행, 빈그릇운동, 자비의 쌀나누기 등을 전개하며 불교활동가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일반 사회단체와 연대해서 4대강 사업 반대 활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불교가 지난 역사 속에서 사회적으로 해온 게 별로 없습니다. 통일운동이나 민주화에 앞장 선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갈 때 인권을 보호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환경운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4대강을 동시다발적으로 파헤침으로써 무수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불교의 제1명제가 무엇입니까. 불살생이고 자비잖아요.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불자들은 생명존중사상의 입장에서 당연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해야 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가면 무슨 소통이 되겠습니까. 어떤 국민이 국가에 신뢰를 갖겠습니까.”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신흥사의 비전
신흥사는 완도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하지만 갈수록 종교편향이 심해지는 지역사회에서 사세는 점점 초라해지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법당에 빗물이 새고 마루가 내려앉았으며, 내용적으로도 지역주민을 이끌고 갈 만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법일 스님이 오면서부터 신흥사의 면모가 일신되기 시작했다. 법당을 보수하고 해마다 하나씩 불사를 해가면서 사찰의 형태를 갖춰갔고, 지역주민들의 고민을 함께하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들을 펼쳐나갔다.
완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자꾸 도시로 떠나면서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장보고아카데미’이다. 한문학당을 시작으로 다도, 공방, 백일장, 도시 체험 등 다양한 교육과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2008년부터는 본격적인 서울 나들이를 시작해 야구장, 패밀리 레스토랑, 국회의사당 등을 다녀갔으며,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산동지역 장보고유적답사를 다녀와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 여름에는 일본으로 떠나는 장보고유적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스님이 장보고아카데미와 더불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지난해 연말 완도 읍내에 사무실을 낸 ‘행복한완도생협’이다.
“생협을 통해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서, 그들에게 자기 지역을 고민하게 하고, 대안을 만들어 시행하면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생협 조합에서는 김, 미역 등 완도의 특산품 유통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신흥사에서 하는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7년째 공방을 운영하며 지역주민들을 결집시키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조계종 문화부와 불교출판문화협회의 지원을 받아 생협 건물 내에 ‘부처님 글사랑 도서관’을 열어 지역민들에게 손쉽게 불서를 보급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 종교계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에 초청해 축사를 듣고, 위태로운 다문화가정에 지원금 전달, 노인방문요양 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돌멩이를 위한 기도, 섬으로 떠나는 여행(보길도, 청산도), 단식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주제로 신흥사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독특한 템플스테이를 기획하고 있다.
법일 스님과 신흥사가 하는 일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 가쁠 만큼 많다. 그러나 스님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풀어놓지 못한 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사찰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신흥사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스님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 현대인들의 삶이 너무 바쁘고 문화가 다양해져서, 움직이지 않는 절은 금방 잊혀집니다. 그러니 사회의 건강한 집단과 늘 교감하며 지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앞으로 지역문제의 현안인 청소년 교육과 다문화 가정, 노인복지 등에 더욱 집중할 것이며, 지역 젊은이들을 위한 공방과 생협에서 운영하는 문화 강좌들을 통해 지금 벌려놓은 일들을 생명력있게 추진할 예정입니다. 5년,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늘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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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일 스님ː 백양사에서 출가하였으며, 광주 문빈정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완도 신흥사 주지, 백양사 부주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행복한완도생협 이사장, 장보고아카데미 대표 등을 맡아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지역불교의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