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의 승부, 인생과의 승부

지혜의 향기 / 승부

2010-06-24     관리자
인생과의 승부양진수땀이 흥건히 흐른다.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오른 후 30분을 넘기면 내 옷은 이미 흠뻑 젖고, 눈으로 흘러 들어오는 땀방울에 내 팔은 연방 눈과 이마를 훔치기에 바쁘다. 이제 10분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내닫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힘든 걸 거야.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살과의 승부를 회피했지. 오늘부터 다시 나와 승부하는 거야.’ 2시간에 가까운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나는 작은 승리감을 맛본다.
나는 10여 년 전에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었다. 입사한 이래 나날이 늘어나는 체중을 늘 무시하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어느 날의 자각 이후 ‘살과의 전쟁’을 통해 무려 8kg이나 감량했었다. 그냥 감량만 한 것이 아니다. 온몸이 근육질로 변화했다. 오죽했으면 칭찬에 인색한 동생이 이제껏 보아온 모습 중에 가장 멋있다고 칭찬까지 해줬겠는가.
그러나 어느새 나태와 안주(安住)는 살금살금 문턱을 넘어 나를 포위했고, 지금의 나는 10여 년 전 운동을 결심하던 그때 몸무게를 넘어서 있다. 나는 살과의 승부에서 패배한 것일까? 그러면 인생에서는?
내 나이 이제 40대 초반, 만약 인생을 통틀어 ‘승부’라고 부른다면 그 승패는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40여 년의 내 삶에서 승부라 부를 만한 것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넘쳤다. 경쟁과 적자생존을 강요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 특히 사회의 과실을 더 많이 먹어치우는 자가 칭찬받는 우리의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남을 이겨야 삶을 영위할 수단이 생겨났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대체로 대부분의 승부에서 작은 승리를 쟁취해왔다.
하지만 때로 나는 불안하다. 요즘 시대에 유행하는 성공의 지표인 ‘부자 되기’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길에서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름의 바람에 비추어서도. 나는 과연 인생이라는 긴 승부에서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패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이런 불안은 내 인생이 비교적 큰 굴곡 없이 평이하게 살아왔음에 기인하고 있는 것도 같다.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히 직장에 들어가고, 무난히 결혼하고 자녀를 갖고, 무난히 나이를 먹어가는 무난한 인생. 비록 수많은 작은 승부에 시시각각 처한다 해도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 내 인생의 승부처를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맞이하고자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무난한 인생은 큰 승부를 피해가지만, 결국 큰 승부를 피한다는 자체가 인생이라는 승부에서는 좌절의 길이 아닐까?
나 같은 중생은 늘 이런 식의 불안감이 바람처럼 온몸을 휘도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음 한 걸음을 생각하면서 이 불안감을 떨쳐내곤 한다. 오로지 다음 한 걸음 그리고 그 다음 한 걸음. 내 나름의 별을 바라보면서 내딛는 그 다음 한 걸음이 이러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살과의 긴 전쟁을 위해 트레드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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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수 ː 한양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조계종 포교원에 입사해, 연구주임, 신도주임을 거쳐 총무원 기획주임, 중앙종회사무처 사무행정팀장, 원우회(조계종 종무원 조합)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호계원 사무행정팀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