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특별대담

2010-06-24     관리자
최근 불교가 주목하고 있는 인접학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분야 중 하나가 심리학이다. 특히 불교를 이용한 마음의 치료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에 불교의 수행법이나 가르침이 마음치료에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현재 연구동향은 어떠한지, 또 실제 치료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에 대해 가감 없는 토론을 벌여, 월간 「불광」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불교계에 관련 연구가 더욱 튼실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대담의 목표이다. <편집자 주>

사회 류지호(월간 「불광」 주간)
대담 윤호균(온마음상담원 마음향기 대표), 최훈동(한별정신병원 원장), 전현수(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왜 심리학이 강세인가?

류지호 _ 『설득의 심리학』, 『유쾌한 심리학』,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강세를 띠고 있습니다. 과거의 심리학은 전문가만 관심을 기울이는 어려운 분야였는데, 지금은 인문분야의 1/4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며 최근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심리학이 연령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각광받고 있는 게 요즘 추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대담에서는 우리 시대가 급속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 심리학을 불교와 관련하여 살펴보며, 현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유용한 긍정성을 끌어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심리학이 왜 이렇게 대중적으로 폭넓은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윤호균 _ 심리학이 현재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한 추세인 것 같습니다. 해방 후 생존 자체가 문제될 때는 정치, 사회, 역사 등의 거대담론이 우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 경제발전, 사회안정 등의 생물학적 요구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 개인의 문제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개인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사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 이후, 특히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우리 사회는 커다란 심리적인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됩니다. 대가족 중심의 체제에서 완전히 핵가족 중심의 체제로 바뀌었고, 경쟁 위주의 시장경제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학교에 들어가면 엄청난 입시경쟁과 취직경쟁에 내몰리게 됩니다. 자연히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이 깨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40~50대에 퇴직을 하고 실업자가 되는데, 그때 엄청난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온통 고민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리적인 위기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느냐, 어떻게 앞서 가느냐’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만이 강조되니 그 와중에서 개인의 문제들이 대두되고, 이 경쟁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와 관련지어 심리학이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합니다.

최훈동 _ 최근 심리학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외양적인 성취로만 치닫다 보니, 내적으로 불안하고 또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한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 빈곤하다고 할까요. 실제로 중년 부부들만 보더라도 경제적으로 문제없고 자녀들도 잘 크는데, 성격상의 조화를 못 이뤄 갈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이러한 심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현수 _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김에 따라 각 개인의 삶이 중요시되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짐에 따라 심리학의 비중이 더 커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자기 스스로는 삶을 잘 성찰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심리학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최훈동 _ 보충하면,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못한 부분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볼 수 있겠죠. 내면적인 교육이 현재 빈곤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교육 시스템과도 연관되어 있고요. 교육의 내용에 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호균 _ 그리고 어찌 보면, 지금 과학이나 문화 등이 굉장히 발달했는데 그것을 효율적으로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못 얻은 것 같습니다. 많은 정보에 압도당하고 눌리는 상황 속에서 나름의 지혜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윤호균 대표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류지호 _ 불교는 그 자체가 심리학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 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와 심리학은 무엇을 추구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전현수 _ 불교심리는 서양에서 들어온 점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저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이 불교 속에서 정신치료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불교와 정신치료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우리는 불교가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서양은 동양으로 와서 배워야 하니 우리보다 더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서양은 일찍이 여행자유화가 되었는데, 불교국가를 왕래하며 심리학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를 불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불교가 심리학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불교가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훈동 _ 불교와 심리학이 만나는 저변은 인간의 고통이라는 부분일 겁니다.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심리학과 불교의 공통 주제입니다. 불교와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통은 현실적·사회적·경제적·신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고통의 해결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는 불교와 심리학은 동서양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밖에 없고, 지금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만나야 될 것입니다.

윤호균 _ 심리학은 생리적인 기제, 동기, 인지, 적응, 성격 등 인간의 심리 전반을 과학적으로 탐구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인간의 마음을 다룹니다. 그 점에서 심리학과 외형적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목적은 마음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마음의 깨달음, 즉 ‘인간이 어떻게 보다 성숙하고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고통을 극복해서 보다 행복할 수 있는가’에 역점을 두고 그것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마음을 다뤘다고 봅니다. 그래서 목적 자체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전현수 _ 불교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실상을 아는 데 중점을 두고, 그것을 밝히다 보니까 마음의 실상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과 만나게 되었다고 봅니다. 불교는 몸과 마음의 본질뿐만 아니라 세상의 실상을 그대로 밝힌 ‘큰 집합’인데 비해, 아직까지의 심리학은 그 목적한 바가 불교보다는 적은 ‘부분 집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는 큰 집합이니까 누가 와도 뭘 나눠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뭔가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윤호균 _ 불교는 한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드러낸 것이죠. 그러니까 아직까지 그것은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못한, 바로 그 전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경험들을 하신 분들이 있으니 그것을 집합적으로 얘기할 순 있지만 그것이 확정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과학이라는 것도 여러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추측된 것이지만, 중요한 건 그 공통된 것들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검증했느냐 입니다. 지금 불교에서 제일 시급한 것이 객관적 검증을 통한 확인 작업이라고 봅니다.

전현수 _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부처님께서 깨닫는 과정에서 그리고 법을 펴기 전에 불교가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을 충분히 검증했다고 봅니다. 초기경전인 니까야를 보면 많은 경전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편적인 법을 깨달으셨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했을 때 똑같이 경험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윤 교수님 말씀처럼 객관적인 검증 작업은 꼭 필요하며, 그 작업은 우리 후학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전현수 원장
불교는 심리학보다 더 우월한가?

류지호 _ 불교와 심리학이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마음을 다루는 것이 공통점인 데 반해, 그 목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심리학에서의 치료는 병이 난 환자를 일반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며, 불교에서는 최상의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게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불교와 심리학의 관계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을까요?

최훈동 _ 일반적으로 불교가 더 우월하고 심리학은 더 열등하다고 단순 비교를 하는데, 실제 내용에서 보면 불교가 심리학보다 우월한지는 아무도 자료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들의 삶을 보면 심리학보다는 훨씬 초월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불교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치료의 한계를 능가하기는커녕 이전보다 못한 수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니까야를 보면 부처님께서는 굉장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며 정밀하게 인간의 고통을 실제적으로 제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간단한 예가 ‘겨자씨의 비유’라고 할까요.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의 죽음을 겪은 실성한 여인이 아들을 살려달라고 부처님께 호소를 했죠. 그때 부처님께서는 3대째 관이 나가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집을 방문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여인이 스스로 자각하여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게끔 대응하신 게 부처님의 통찰 정신치료입니다. 불교는 이 점에서 정확하게 심리치료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맛지마니까야』 「꿀과자의 경」에 고통이 일어난 과정을 12연기에 입각해서 아주 명확하게 분석해 설해 놓았습니다. 오염되고 왜곡된 지각에 의한 망상들을 소멸시키고 해결하는 극복 과정이 아주 탁월하고 훌륭한 정신분석적인 치료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가 그렇게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는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직관적인 것이 아니라 굉장히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현대 학문의 과학적인 모든 방식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그것을 압축해 놓은 것이 12연기이고, 12연기를 깊이 성찰하고 현대 심리학적으로 해설하면 심리치료의 기제가 전부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불교를 도의 신비적인 측면에서 해탈의 개념을 수준 높게 설정해 버리면 우리 일반인이 닿기가 참 어렵습니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마음의 불안과 우울과 비탄과 절망을 가지고 상담실과 정신과를 방문하는 현실에서, 불교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처님이 본래 가지고 있는 통찰적인 치료력을 다시 회복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심리학 또는 심리치료라고 생각합니다.

전현수 _ 부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분석했던 경이 있습니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심리학적입니다. 『맛지마니까야』 「두려움과 공포의 경」을 보면, 그 당시 유명한 바라문이 부처님께 와서 “숲 속에 있으면 굉장한 두려움이 일어나고, 삼매를 얻지 않으면 숲이 수행하는 사람을 확 삼킬 것 같다”고 두려움을 호소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내가 처음에 숲 속에 들어갔을 때 굉장한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보니 내 속에 있는 청정하지 못한 것 16가지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청정하지 못한 몸, 마음, 언어 행위, 탐욕과 감각적 욕망,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멸시하는 것,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것 등 16가지를 말합니다. 자기분석을 하신 거죠. 그것을 싹 없애고 다시 숲 속에 들어가니 편안하더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을 프로이트의 불안에 대한 이론과 비교해봤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불안과 노이로제적인 불안을 얘기하는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실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부처님이 제시하신 방법이 훨씬 실천하기 좋고 또 우리한테 크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호균 _ 불교를 현대화시키려면 현대 심리학적 용어를 써야 됩니다. 가령 연기법을 어떻게 현대 용어로 만들고 검증해 낼 거냐 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불교가 일반 서클로 나가려면 용어가 완전히 객관화되고 현대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로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다는 게 검증돼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좋은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완전히 마음을 열고 모든 과학자를 비롯해 누구든지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검증을 거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국대학교라는 종립대학에 심리학과도 없으니 아주 안타깝습니다.

최훈동 _ 불교를 좀 더 현대 심리학적인 경지에서 재해석하는 연구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불교를 좀 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조명하지 않으면, 관념적이고 원론적으로 미화된 차원에서만 머물게 됩니다. 높은 선지식들만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불교가 되면, 중생들 즉 대중들과 현실로부터 외면당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현수 _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불교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 속에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뽑아내서 세상에 내놓고 검증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으셨고 제자들이 경험할 수 있었던 보편적 진리다’하면서 내놔야 되는 게 우리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보편적인 진리라고 판단되는 것을 환자들과 공유해왔습니다. 불교심리치료는 어찌 보면 보편적인 진리에 바탕을 둔 지혜치료인 것입니다.


최훈동 원장
불교와 심리학의 접목과 발전 방향

류지호 _ 대담이 자연스럽게 불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심리학과 관련하여 좀 더 보충하고 정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훈동 _ 불교와 심리학의 가장 큰 차이는, 불교에는 선정(禪定) 수행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선정 수행이 전무합니다. 치료에도 선정이 필요 없고요. 거기에 착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불교는 프로이트 이후 수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이루어낸 업적들에 미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의식에 대한 깊은 내용과 정교한 심리 기제들에 대한 분석적인 과정이 불교에는 아직 미흡합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에 분석적인 심리치료 이론이 보완되고 더불어 심리치료에 명상이나 선정 수행이 보완된다면, 불교와 심리치료가 아주 훌륭하게 만나서 훨씬 발전된 차원의 마음치유 양식이 전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호균 _ 저는 불교를 아주 훌륭하고 거대한 가설의 집합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제 심리학적인 방법론을 차용해서 이미 설해 놓은 것들을 검증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물론 심리학에서도 인간 심리의 여러 가지 미묘한 면들, 방금 말씀하신 수행과 관련된 면들을 불교로부터 많이 흡수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의 치료 모델에서부터 수행 모델로 바뀌어야 합니다. 치료 모델은 병을 없애는 걸 목적으로 하는데, 이젠 병이 있건 없건 보다 성숙하고 자각한 인간을 목표로 설정한다면, 여기에 불교가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현수 _ 불교는 불교대로 심리학은 심리학대로 강점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공감’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치료해본 노하우들이 많거든요. 그런 걸 불교에서는 배워야 합니다. 한편 불교는 선정을 비롯한 불교 수행이 가지는 정신치료적인 의미를 잘 밝혀 심리학에 제공해야 합니다. 선정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모으는 훈련이기 때문에 선정을 닦음으로 해서 마음이 불건전한 대상에 가는 것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의 모든 수행이 정신건강을 도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심리학에게 제공하고 가르쳐줘야 합니다.

윤호균 _ 참선이나 위빠사나 등의 핵심 기제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에서부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안 보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려면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내가 보는 게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 것인지, 다른 사람도 동일한 경우를 보는지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참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의단(疑團) 즉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보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누구나 가져야 할 질문이 ‘내가 왜 부처지?’입니다. 나만이 아니고 ‘왜 저 사람이 부처지?’ 이런 의문을 가지고 대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각자 아플 때, 누가 미울 때, 누가 사랑스러울 때, ‘이게 뭐지?’ 하는 질문을 던져가는 것이 참선에서 배울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위빠사나에서 배워올 바라고 생각합니다.

최훈동 _ 많은 환자들이 화가 나거나 절망감에 빠질 때, 죽고 싶다고들 합니다. 그럼 죽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지금 화내고 있는 게 ‘너냐? 화냐?’ 이렇게 분리를 시킵니다. 화와 내가 동일시되어 있는 상태에서 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입니다. 어떤 심리 상태이건 어떤 감정 상태이건 ‘이것이 나인가?’ 반문하게 하고, 이것은 그냥 화일 뿐이고 슬픔·불안일 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하는 것이 괴로운 심리 상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처방인 것이지요.

류지호 _ 심리치료 분야에서 인간의 심리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불교와 심리학의 접목이 이뤄지고 있는데, 외국의 사례는 어떻습니까?

전현수 _ 미국은 아무래도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려는 노력을 우리보다 더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 중에서도 수행의 핵심인 사띠, 즉 마음챙김만을 심리치료에 도입했거든요. 작년에 ‘거머’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흥미로운 발표를 했는데, 미국의 임상심리 전문가들의 42%가 심리치료시 마음챙김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이제 마음챙김을 넘어 불교를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탈종교로 갔지만 점차 종교적인 것을 넣을 가능성이 커진 셈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마음챙김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적인 것도 정신치료에 활용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불교의 본토이다 보니, 각종 수행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환자들의 종교도 불교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최훈동 _ 심리학에서나 불교에서나 자각은 마음치유의 핵심 원리입니다. 그것 없이 어떻게 통찰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서양은 위빠사나가 거의 상담이나 심리치료 현장을 휩쓸고 있죠. 아무래도 방법론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울 뿐 아니라 적용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선적인 것도 좀 고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당장은 아까 얘기한 식으로 의문을 던지는 것이 필수적으로 도입되리라고 봅니다.


불교 심리치료의 현대화를 위한 과제

류지호 _ 앞서 말씀 중에 불교는 과학적인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고, 동시에 심리학적인 측면을 담고 있는 내용 자체도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고 검증하고 반증하는 것인지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윤호균 _ 불교용어를 좀 더 쉽게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펴낸 불교 책을 읽는 것보다 서양에서 나온 불교 책을 읽는 것이 더 쉬운 것 같아요.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불교를 관념적으로만 알지 실제를 모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다음으로 불교가 자신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스님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 드러낼 수 없다면 현대화는 요원하다고 봅니다.

최훈동 _ 환자들 중에 ‘심리치료를 하면 정말 치료가 됩니까?’하고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충분히 심리치료를 통해 더 나은 상태로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환자를 병으로 보지 않고, 부처로서의 가능태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환자가 치료자로부터 신뢰감을 얻고 자아 존중감이 생겨서, 그동안 계속 반복된 윤회의 카르마 양식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성숙한 적응양식 모드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심리치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교의 깨달음, 12연기의 역관(환멸문)을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잘 통찰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우리 심리치료자의 역할이겠지요. 수행자들은 더 상세하게 현미경처럼 집착의 내용을 잘 볼 수 있어야 고통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불교는 현대정신분석이나 현대 심리학이 무의식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을 부처님처럼 세밀하게 보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온전한 방법을 지금 제대로 재현을 못 시키고 있다는 얘기죠. 그 부분은 현대 심리치료가 보완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현수 _ 이제 우리 불교는 경험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 불교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성을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꾸 복잡한 얘기만 하면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행을 통해 어떻게 경험했다’는 식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제 경우 불교 공부를 통해 확실히 경험하고 보편성을 검토한 것만을 환자에게 적용합니다.

윤호균 _ 제 경우 상담치료를 할 때 가장 큰 원칙이, 우선적으로 현재 상태에서 내담자의 존중할 수 있는 부분(장점, 훌륭한 점, 멋있는 점 등)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치료 이전에 내담자의 장점을 제대로 보고, 부처로 보아야 합니다. 붓다가 수행을 하면서 본 것은 자기의 깨끗한 마음입니다. 그걸 보는 게 먼저지,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바꾸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 점을 앞으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류지호 _ 불교의 현대화에 있어 스님들이 오픈마인드해서 수행했던 것들을 내놨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불교가 과학적인 검증을 거쳐 객관화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앞으로 불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윤호균 _ 굳이 심리학과라는 명칭이 아니더라도, 동국대나 중앙승가대에 연구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종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본적인 것도 안 하면서 누가 해주길 바라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센터를 만들어서 수행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간화선도 이게 정말 제일 좋은 방법인지 아니면 위빠사나가 좋은 방법인지 검증해 봐야 합니다. 검증하지 않고 ‘전통적인 거니까 이게 좋다’라고 하면,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최훈동 _ 불교의 현대화는 불교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봅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재번역하는 작업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행의 경험을 검증하는 것도 해나가면 좋겠죠. 수행을 통해서 어떻게 변했는지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무문관을 십 년을 했건, 수십 안거를 했건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행 타이틀일 뿐입니다. 신자들이 찾아와 현재에 처한 문제를 제시했을 때, 불교적인 자신의 교학과 수행에 입각해서 어떻게 그 신도에게 도움을 줬는지 그 사례도 내놔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례를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불교가 정말로 심리치료적인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공언할 수 있습니다. 말로만 교리적으로 우월하고 선사들이 이렇게 해서 도인이 됐다는 것은 다 과거 얘기입니다. 부처님이 그랬고 과거 조사들이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인 거죠. 이러한 작업이 솔직하고 꾸밈없이 진행되어야 불교는 현대화에 성공하리라고 봅니다.

전현수 _ 이제 불교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추출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회에 제시해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이랑 대화하잖아요. 그렇게 우리도 수행을 많이 한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레 보편적인 진리를 밝히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류지호 _ 현대사회에서 심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적인 진단에서부터, 불교와 심리학의 공통점과 차이점, 두 분야의 접목과 발전 방향, 현장의 사례 등 다양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윤호균 _ 결국은 불교도 자기 탈바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게 아닌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불교의식이나 행사도 전통을 지키되, 우리 시대의 흐름과 호응하며 멀리 펴는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훈동 _ 불교나 심리학은 인간 고통을 실제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이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인 방법론이 현대 심리학과 만나서 21세기의 새로운 불교해석이 창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심리치료와 명상(선) 수행을 접목하는 연구소가 필수적이고, 그 연구소는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연구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의 현대화가 가속되리라고 믿습니다.

전현수 _ 불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고, 심리학이나 정신의학도 인간의 정신적인 고통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인간을 포함한 중생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불교본연의 궁극적인 진리가 있는데 그것을 축소시키거나 손상시키지 않고 계속 유지시키면서 불교를 잘 활용해 심리학을 비롯해서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불교에서 보편적인 것을 추출해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고, 또 많은 종교가 난립해 있는 이때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되게 하는 데 불교가 큰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훈동 _ 불교학이 지금까지는 훈고학 내지 주석학에 머물고 원론적인 불교철학 전수 수준이었어요, 이제 경험을 수반한 불교심리학 수준으로 연결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많은 사람들한테 보편적인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류지호 _ 불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기초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으로 심리학을 논의하고, 이를 불교의 발전 방향과 접목시켜보려 했습니다. 오늘 대담이 계기가 되어 불교와 심리학의 만남에 있어, 새로운 창구와 통로 역할이 되길 바랍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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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균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문학박사)하였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장,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상담심리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불교심리치료학회 운영위원, 온마음상담원 마음향기 대표로 있다.

전현수 :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후에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었다. 한양대학교 의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0년 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을 개원했다. 2003년에는 한 달간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는 1년간 병원 문을 닫고 수행과 여행 그리고 글쓰기로 시간을 보냈다. 올해 3월부터는 다시 병원 문을 열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저서로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 이야기』, 『울고 싶을 때 울어라』,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공저)가 있고, 역서로 『붓다의 심리학』(공역)이 있다.

최훈동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수련한 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전문의 고시위원(정신치료 분야)과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별정신병원장, 한별심리분석연구소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초빙교수(정신치료 지도분석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다. 논문으로 「불교의 유식사상과 심층심리이론의 비교시론」, 「불교의 무아사상의 정신치료적 의의」, 「지관의 심리치료적 의미 고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