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하나된 가족

지혜의 향기 / 가족의 힘

2010-06-07     관리자
내가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으리라고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긴, 술을 꽤나 즐겨했던 내가 술집이 아닌 커피 전문점을 한다니 놀라던 사람이 적잖았다. 사실 요즘도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종종 낯설고 생경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곳에 있는 것 같아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어떤 분은 내가 커피에 남모를 애정이라든가 뭔가 뜻한 바가 있었기에 이 늦은 나이에 생소한 일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해주기도 한다. 물론 지금이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나 핑계가 생기고 또 쌓이긴 했다. 헌데 솔직히 그 시작은 그야말로 얼떨결이었다.
내 소유의 상가가 비었다. 문 앞에서 비어있는 공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스타벅스’, ‘커피빈’같이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소박하게나마 내가 직접 커피 전문점을 인테리어하며 운영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덜컥 시작하게 된 것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당장 내가 무지한 분야다 보니 사람을 써야 하는데,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만 1년을 어렵게 꾸려나가던 중, 어느 날 큰애가 제안을 했다. 현 시점에선 이익이 나오질 않으니, 추후 자기가 리모델링과 운영을 도맡아 하겠다고 한다. 괜찮은 얘기인 듯했으나 이래저래 못미더웠다. 아직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인 데다가 일이라곤 우리 카페에서 파트타이머로 아르바이트한 게 다인데, 도대체 뭘 믿을 수 있겠는가. 평소 온화하던 애 엄마도 반대가 심했다. 그런 부모의 반응에 큰애도 낙심하고 포기한 줄 알았건만, 2주 후에는 조사 자료와 함께 무조건 매출을 올리고 보겠다는 호언장담을 하며 다시 달려들었다.
솔직히, 이게 웬걸 싶었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편이라 그런 호언장담식의 발언을 안 하던 큰애였던지라 더 그랬나보다. 총액을 줄이는 한도 내에서 큰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랬더니 곧장 인테리어 업자 섭외부터 기자재 구매까지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리모델링은 금세 끝났고 결과 또한 의외로 금세 나왔다. 그렇게 벌써 1년 4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직영점 둘에 체인 계약 완료된 점포도 둘, 이렇게 총합 가게 넷으로 커졌다. 요샌 일이 많아 바빠지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사라져 여러 모로 즐겁다. 가꾸고 싶은 화초도 키우고, 목공일도 하며….
아, 큰애는 휴학 중이다. 딴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한 모범생이던 터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재수에 삼수를 거치며 간혹은 정말 미웠던 적도 많았다. 지금은 예전에 열심히 공부하던 것만큼 커피업 쪽으로 힘을 쏟아, 여러 모로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자기 딴에는 말이 좋아 직함이 ‘커피 전문점 본사 실장’이지 솔직히 구멍가게 사장이라고 너스레 떠는데, 그래도 마음은 대학 입시에 치일 때보다 편해 보이니 다행 아닌가 싶다. 큰애에게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요구했던 적도 있었다. 늘상 기대에 부응해주던 큰애가 언제부턴가 틀어지니 몹시도 속상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기대를 꺾었거늘, 정말이지 상상도 못하던 곳에서 도움이 되고 큰애 스스로 즐거워 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최근엔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딸도 일시 귀국하여 일을 돕고 있다. 다들 바빠서 일주일 내내 거의 쉬지 못하지만, 가족끼리 흥미 있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니 마냥 피곤하지만은 않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가게를 열고 손님을 대하고 가게를 닫을 터이다. 또 그 다음 날도. 하지만 언젠가 이 애들도 내 품을 떠나 각자의 가정을 이룰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구어낸, 길게만 이어질 것 같지만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일상인 만큼 하루하루를 즐기며 소중히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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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희 ː ‘뜨레모아 & Rosting Factory’ 대표. 23년간 사교육의 주범(?)인 학원을 경영하다가 지금은 커피 효능에 대해 연구하며, 세속의 스트레스를 카페 인테리어로 소일하며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