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세의 인연이자 금생의 필연

만남, 인터뷰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2010-05-26     관리자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팔리어 삼장(경장·율장·논장)’*의 한글 완역에 이번 생을 온전히 바친 각묵 스님(54세)이 태국에서 돌아왔다. 그는 2003년부터 1년에 5개월은 밀려드는 법문과 강연 요청을 피해, 태국 치앙마이에 머물며 번역에만 몰두하고 있다. 겨울 3개월, 여름 1개월, 가을 1개월이다. 지난 해 11월에도 어김없이 태국으로 건너가, 지난 2월 말 입국했다.
그의 태국 생활은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정이다. 하루에 포행과 공양 시간 2시간을 빼고는, 22시간 동안 방 밖을 나서지 않으며 12시간 이상 번역과 집필에 매달린다. 지난 3개월 동안은 초기불교의 이해를 위한 개론서 집필, 초기불교 용어사전 정리, 대림 스님(초기불전연구원장)이 번역한 『맛지마 니까야』의 교정 작업을 했다.
국내에 있을 때는 2003년부터 실상사에 머물며 화엄학림 스님을 지도하는 한편, 불광사, 대원불교대학, 기초선원, 세등선원, 해인사 강원, 조계사 등 인연이 닿는 곳마다 강좌를 마련해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알리고 전파하는 데 회향하고 있다.

* 팔리어 삼장: 부처님의 가르침이 직제자들에 의하여 구전된 것을 정리하여 BC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팔리어로 집대성한 것을 말한다. 한편 대승불교 경전은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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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는 대승불교의 뿌리
○ 그는 10년간의 인도 유학을 마치고, 2001년 세계 최초로 산스끄리뜨어 원문과 구마라습의 의역본, 현장의 직역본을 대조한 역작 『금강경 역해』(불광출판사)를 내놓으며 불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2002년 팔리어 삼장 완역을 목표로 대림 스님과 함께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해, 놀라운 성과물들을 쏙쏙 내놓고 있다.
2002년 펴낸 남방불교의 이해를 위한 필독서 『아비담마 길라잡이』(상·하)는 위빠사나 수행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 현재 8쇄를 준비하고 있다. 2004년 대림 스님이 펴낸 초기불교의 지남 『청정도론』(전3권)도 3쇄까지 찍었다.
이어 두 스님은 본격적으로 팔리어 삼장 중 4부 니까야의 릴레이 번역에 돌입했다. 먼저 각묵 스님이 2006년 『디가 니까야(長部)』(전3권)를 번역했고, 이어서 대림 스님이 2006~2007년 『앙굿따라 니까야(增支部)』(전6권)를 펴냈다. 다시 각묵 스님이 지난해 『상윳따 니까야(相應部)』(전6권)를 내놓았다. 그리고 대림 스님이 올해 말 『맛지마 니까야(中部)』(전4권)를 펴내, 4부 니까야 번역을 완료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초기불교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한 개론서와 초기불교 용어사전을 출판할 계획이다. 그리고 2012년부터 5년 계획으로 대림 스님이 율장, 각묵 스님이 논장을 맡아 번역할 예정이다. 그 후 『쿳다까 니까야(小部)』(전15권) 번역을 5년 계획으로 잡고 있는데, 이 작업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팔리어 삼장 완역불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초기경전의 번역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살리는 길입니다. 초기불교는 대승불교의 뿌리입니다. 한국불교의 교세가 위축되고 문제가 있다면 뿌리를 먼저 북돋워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지가 뻗고 이파리가 무성하며 맛있는 열매가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초기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선방 수좌에서 역경가로 거듭나다
○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도 왜 살아야 되는지 회의가 들고 자꾸만 슬퍼졌다. 책을 통해 불교를 만나게 되었고, 대학(부산대 수학교육학과)에 진학해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 2학년 때 법우들과 함께 평생 수좌로 살아오신 노스님을 찾아뵙고 여쭈었다. “스님 앞에 누가 앉아있는데, 그놈이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노스님이 물었다. “버릴 수 있는 것 다 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순간 정적이 흐르고 고작 끄집어낸 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일렀다. 그러자 경상을 치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송장하고 얘기했다. 저 놈 데려다가 땅에 파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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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화두가 들려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노스님을 만난 후 사흘 동안 아무 생각이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내가 인생 잘못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노스님을 찾아가 공부를 하게 되고 3학년 때 무자 화두를 받았는데, 한 달 동안 화두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이후 송광사 수련대회 가서 사흘 동안 용맹정진 끝에 1,080배를 하고 수돗가에서 깜빡 잠이 들었어요. 새벽 도량석 소리에 퍼뜩 깨어났는데, 아무 걸림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계를 받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 얼마나 선방에 가고 싶었던지 제대하자마자 은사스님도 안 찾아뵙고 송광사 구산 스님께 방부 들여달라고 청하였다. 한 철만 화두 들면 깨칠 듯했는데, 잠만 쏟아지고 별 소득이 없었다. 잠을 쫓기 위해 오후불식을 하였고, 물로 채운 허기를 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법당에 가서 절을 했다. 몸은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갔다. 그렇게 7년을 선방에서 정진했지만 허사였다.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1987년 칠불암 운상선원에서 하안거에 들었는데, 반 철도 지나지 않아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망상만 계속 드는 것이었다. 해제 후 무엇이 잘못 되었나 싶어 초기불교 관련 책들을 읽으며 지냈는데, 뜻하지 않게 도반인 함현 스님(전 봉암사 주지)의 추천으로 인도 유학 길이 열리게 됐다.
“인도로 갈 때부터 금생에 팔리어 삼장을 완역하고 죽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갔는데, 제가 암기력이 떨어져 공부가 힘들었습니다.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어요. 큰 맘 먹고 컴퓨터를 구입하고 타자 잘 치는 젊은 친구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 2년 6개월간 사전, 주석서 등 방대한 자료를 입력시켰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자료를 추가하고 보완해서, 지금은 단어 하나만 입력하면 뜻, 활용, 주석, 예문, 출처 등 모든 자료가 총망라되어 나옵니다. 이러한 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번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 초기불교의 확산과 한국불교의 발전 방향
○ 팔리어 초기경전들의 활발한 번역과 위빠사나를 비롯한 다양한 수행법이 널리 소개되면서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http://cafe.daum.net/chobul)에서 발행한 책들만 해도 모두 재판 이상을 찍었고, 카페 회원은 날이 갈수록 늘어 현재 4,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수십 명의 후원회원이 자발적으로 월 회비를 내시고,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역경가의 길을 가게 된 건 아무래도 숙세의 인연이자, 금생의 필연인 것 같습니다. 1만 5천여 명의 스님들 중 제가 선택되어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는 게 그저 감사한 일이지만, 때론 정말 재미없고 힘든 작업이라 원망 아닌 원망도 해봅니다. 그래도 인도에서 10년간 공부하여 이렇게 팔리어 삼장의 번역 성과를 내게 되니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그는 때로 대승불교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안티 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불교의 발전적인 방향에 대해 물었다.
“예전엔 소통이 안 되어 카페에 과격한 글도 올렸는데 지금은 조심하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 반대편에 서서 대승불교를 나쁘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승불교를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기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요 표준이기 때문에, 초기불교를 모르고서는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초기불교의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으로 대승불교를 조명해보면, 교학과 수행 체계의 정확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원전인 산스크리트어 불전을 한문 번역본과 비교 연구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를 팔리어 삼장과도 비교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바르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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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묵 스님 ː 1978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제방선원에서 7년간 정진한 뒤, 인도로 유학하여 10여 년간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배우면서 베다 문헌과 초기불전을 공부하였다. 인도 푸나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과 석ㆍ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역저서로는 『금강경 역해』, 『아비담마 길라잡이』,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디가 니까야』, 『쌍윳따 니까야』 등이 있다.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학인스님을 지도하고 있으며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소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