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정토 행자답게

수행과 만나다 / 정토회

2010-05-26     관리자

천주교 가정에서 자란 내가 정토회를 처음 만난 건, 정토수련원 수행프로그램인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면서다. 난 그곳에서 뭔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감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아 기르며 내게 무관심해진 남편을 원망했고, 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들에겐 화를 냈다. 어느새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고 있었다.
늘 화내고 짜증만 내니, 남편과 아이들은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것도 싫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나쁜 아내, 나쁜 엄마 취급을 당하단 말인가? 모든 게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힘들 때 인터넷으로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의 법문을 들으면, 나에게 닥친 모든 현실이 이해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개만 돌리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법문과 내 삶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도반들과 함께 법문 듣고 함께 나누기…
10여 년을 그렇게 살면서, ‘언젠가 꼭 문경 정토수련원에 다시 가리라’고 다짐했다. ‘깨달음의 장’ 이후 그곳은 내 마음의 고향이었고, ‘그곳에 가면 내 괴로움이 해결되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드디어 2006년 봄, 정토수련원 ‘나눔의 장’에 참여하여, 엉켜있는 내 삶의 괴로움을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모든 것을 내 식으로만 이해하려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도반들과 함께 법문을 듣고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그 후 내가 살고 있는 구미에서 정토법당이 있는 대구로 일주일에 한 번씩 법회에 참여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래도 법당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행복했다. 하지만 집에만 오면 여전히 화내고 짜증내고 있는 나로 돌아와 있었다. 그건 참으로 잘 안 고쳐졌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짜증을 내는지조차도 몰랐다. 왜 짜증내냐고 남편이 물으면 내가 언제 짜증냈냐고 화를 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2년을 대구와 구미를 오가며 신나게 법문을 들었다. 불교대학도 졸업했다. 졸업할 무렵에는 얼굴도 밝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아직 저학년인 아이들을 두고 대구에 가는 게 큰 부담이었다.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가 ‘구미에서 법회를 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천배 정진을 하면서 가정법회를 할 수 없는 백 가지도 넘는 이유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부처님,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못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착하게 살겠습니다.’ 이런 생각만 남았다.
그렇게 2008년에 구미에서 가정법회를 시작하였다. 불교대학도 열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도 하였다. 법회 담당자로서 나 혼자 법회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변해야만 했다. 딱딱한 표정은 부드럽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성의껏, 도반들의 요구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요구는 내려놓을 것, 바로 정토행자답게….

잘 듣고 이해하는 연습…
이전까지의 내 생활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이다. 남의 얘기가 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올라오지만, 웃으며 “그러셨군요.”라고 해야 했다. 법회하는 날은 정말 피곤한 날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적으로 괴로웠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나의 연기도 자연스러워졌을 무렵, 남편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늘 ‘왜 저런 소릴 하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날은 있는 그대로 남편의 이야기가 들리고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참 오랜만에 우리는 친구처럼 대화했다. 남편은 그동안 나를 무시했던 것이 아니었다.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무시한 거였구나!’ 하고 놀라고, ‘이젠 들린다!’ 하고 놀라고. 비로소 나를 짓누르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연기가 아니었어. 연습이었어. 난 도반들과 잘 듣고 이해하는 연습을 한 거야. 그들을 속인 게 아니라 안 하던 걸 갑자기 하려니 그렇게 힘이 들었던 거야.'
구미법회의 불교대학 졸업 무렵이 되니 1년 사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보살님 얼굴이 환해졌어요.” “요즘 행복해보여요.” 우리는 서로서로 기뻐하며 칭찬했다. 나는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절대 같이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우리 보살님들이 예뻐지고 환해지는 모습을 보니 내 일보다 더 기쁘다. 이럴 때 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마구 생긴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던 나였는데….
수행을 통해 달라진 내 모습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예전처럼 짜증 잘 내고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만, 다만 “당신 왜 짜증내?” 하는 남편의 말에 “죄송합니다.”, “아이들에게 좀 다정하게 할 수 없어?”라는 말에 “예 알겠습니다.”라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정신은 좀 차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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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ː 1969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국을 경영하다가 결혼 후 휴직하였다. 2000년 무렵부터 관리약사로 일하다가 2009년 정토회 자원활동가 일만 하기로 결심, 지금은 구미법회 담당자이면서 경북지역의 법회가 없는 곳에 법회가 열리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같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