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력으로 전법의 길을 나선 암베드카르

인연 따라 마음 따라

2010-05-26     관리자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신 후 45년 동안 진리에 입각한 법을 펼치시며, 오랫동안 인도전역에 뿌리깊은 사상으로 깃들어 있던 브라만교의 사성 계급을 타파해나갔다. 생로병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시니, 출신의 귀천 개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오직 참된 진리의 가르침만이 인도 전역에 흘러넘치게 되었다.
이러한 불법의 밝은 지혜의 광명은 역대 전등해 오신 수행자들에 의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비단길을 통해 서구 유럽에까지 널리 세계 속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반면에 인도는 세력을 확장해온 힌두교와 회교 및 서양 열강들의 영향력 아래 불교의 입지는 서서히 좁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불법의 빛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1900년대 간디(1869~1948)가 인도 독립을 위해 무소유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던 바탕에는 엄연히 부처님의 가르침이 녹아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사성계급의 차별에 억압받는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암베드카르(1893~1956)의 존재는 다시 한 번 인도에 불법의 꽃을 피워 올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겠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열심히 수학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헌법을 초안하고, 삼색기(인도 국기) 중앙에 붓다의 법륜(法輪)을 그려 넣었다. 또한 불가촉천민의 평등성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인도의 독립임을 강조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거대한 전통사상과 종교라는 벽 앞에서 그의 꿈이 좌절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나는 원치 않게도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겠다.”는 욜라 선언을 통해 약 50만 명이나 되는 불가촉천민들을 부처님의 자비로운 세계로 인도하였다. 그는 서재에서 임종할 때조차 불교 저술[『붓다와 그의 법(法)』]의 원고교정에 힘썼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불법 중흥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암베드카르는 스스로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면서 1956년 10월 50만 개종자들과 함께 22개 조항을 맹세하였다. 그의 불교입문맹세 22개항은 다음과 같다.

01. 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마헤슈와라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2. 나는 라마와 크리슈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3. 나는 가우리(시바신의 처, 월경 전의 소녀)나 가나빠띠(집단의 수령)와 같은 힌두 신전의 남신, 여신 중 어느 쪽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
04. 나는 화신(化身, 신들이 변해서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상)을 믿지 않는다.
05. 나는 붓다가 화신인 것, 즉 그가 비슈누의 화신인 것을 믿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그것이 거짓 선전이라고 생각한다.
06. 나는 조령제(祖靈祭)를 지내지 않고 제사떡을 드리지 않는다.
07. 나는 붓다의 법에 거슬리는 어떠한 관행에도 따르지 않는다.
08. 나는 어떠한 의식이나 제식도 브라흐만의 손에 의해서 집행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09.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10. 나는 평등권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11. 나는 붓다에 의해 가르쳐진 8정도를 따른다.
12. 나는 붓다가 가르친 불교교단의 10계를 지킨다.
13. 나는 모든 생물을 자비롭게 보호한다.
14.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15.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6. 나는 사음을 하지 않는다.
17.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18. 나는 팔정도를 따르고, 선행, 자비를 행함을 인생지침으로 삼는다.
19. 나는 사람됨에 해롭고 진보를 방해하는 불평등주의적인 힌두법을 고발하고 또한 거부한다. 그리고 나는 오직 붓다의 법을 택한다.
20. 나는 불교야말로 유일한 참된 종교라고 확신한다.
21. 나는 새로운 생활에 들어간 것을 확신한다.
22. 나는 붓다가 가르친 계율과 교리에 따라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힌두이즘에 맞서 오직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에 의거하여 생명존엄과 평등사상을 주창하였다. 오롯이 불법에 기대어 만인의 평등을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은 근대 역사의 혼란기 속에서 인간이 이루어낸 가장 속 시원한 쾌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00여 년의 불교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도 위대한 현인 암베드카르가 살았던 당시 인도의 암울했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정신과 물질의 가치전도로 사람들 몸과 마음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 시름하고 있으며, 더욱이 종교적·사상적 황폐화는 이미 극한에 달해 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고 또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다 한들 부처님께서 처음 전법을 설하신 때보다 더 어두울 리 없다. 또한 암베드카르가 마침내 50만 불가촉천민을 개종시키던 때보다 더 힘들 리도 만무하다.
우리는 부처님이 주신 사성제·팔정도·오계·십계 등 정법의 가르침이 있으며, 암베드카르와 같은 굳은 의지와 서원력의 성공 사례가 무수히 많다. 이차돈의 순교를 비롯해, 민중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비웠던 원효 성사의 무애행 정신이 아직도 민초들의 가슴마다 혈관을 타고 뜨겁게 흐르고 있다. 혜초와 의상의 구법, 도의와 태고의 전법, 서산과 사명 그리고 만해와 같은 선각자들의 멸사봉공의 의지만 있다면, 오늘날 우리 강토에 정법의 등불이 다시금 밝아 오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 함께 대원력을 세워 이 시대에 불일(佛日)을 밝히도록 제2, 제3의 암베드카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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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대웅 스님 ː 공주 원효사 주지.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불광한의원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었다. 운호 스님 문하로 입산, 송광사 천자암 활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고,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어린이법회, 학생회, 대불련, 청년회, 거사림회, 공주 신행단체 연합회, 국립공주병원 법회 지도법사로서 포교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공주경찰서 경승실장, 원효유치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다음 카페 ‘원효사(http://cafe.daum.net/rhdwndnjsgytk)’를 운영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불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