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한 발 앞장서서 세월을 기다리는 CEO

만남, 인터뷰 / 불교계 사회적기업 1호 ‘(주)연우와함께’ 이재희 회장

2010-04-06     관리자
대학 때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어도, 사업에는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세계적인 CEO(최고경영자) 이재희(64세) 씨가 불교계에 투신했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전문 경영인으로서 가는 곳마다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대학 3학년 때 이미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세계 제일의 회계법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Price Waterhouse)’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후, 1978년 32세의 나이에 하얏트리젠시서울의 임원(관리이사·상무이사)을 맡았다. 1984년에는 세계 4대 물류 전문 다국적기업인 ‘TNT 익스프레스 월드와이드’의 한국사장으로 부임하였으며,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1996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북아시아지역 총괄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유니레버코리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다국적기업인 ‘유니레버’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십수년간 적자를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는 1999년 IMF로 인해 철수 위기에 몰린 이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단 8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고 매년 50% 이상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며 퇴임시에는 5배 규모로 키워냈다.
지난 참여정부 때는 물류중심위원회 위원장, 물류정책추진기획단 단장 등의 소임을 맡아, 중장기 물류 정책의 로드맵을 수립하고 물류 관련법을 재정비하여 국가 물류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2005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재임 3년 동안,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3연패를 비롯해 세계공항효율 대상, 세계최고물류공항상 등 세계공항평가에 대한 주요 시상을 독점하며 인천국제공항을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우뚝 세워 놓았다. 

● 불교와 경영의 괴리감을 극복하다
그는 누가 봐도 탄탄대로를 걸어온 성공한 CEO로 비쳐지지만, 그에게도 늘 남모를 번뇌와 갈등, 고민이 뒤따랐다. 겉으로는 절대 흔들림 없는 강인한 리더십과 공격적인 경영을 추구했지만, 내면의 인간적인 감성마저 잠재울 수는 없었다.
“사업 확장에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창조하려면 파괴가 필요하듯, 기존의 틀을 깨려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구조조정도 마찬가지지요. CEO의 입장에선 회사의 발전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닌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고비 때마다 부처님께 털어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부처님의 가피를 가슴 찡하게 느꼈으며,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지요. 집에서 가까운 봉은사를 30년 전부터 재적사찰로 삼아, 조용히 불사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불교와 경영 사이에서 상당한 괴리감을 느꼈다. 불교는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놓으라 하는데, 경영은 시장에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제압하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늘 불교를 경영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던 그는 비로소 40대 후반에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원을 세워 사심 없이 투명성을 갖고 업무에 집중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고, 그 이익으로 조직과 사회에 더 크게 회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최고 절정의 기량을 갖춘 CEO라는 자부심이 높았다. 2008년 인천국제공항을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고도 정권이 바뀌면서 퇴직 당했을 때, 그는 상심과 아쉬움이 컸다.
“그 당시 3년 임기는 채웠지만, 당연히 재임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쓰지 않으면 국가가 손실이지’라며 털어버리려 했지만, 좀처럼 서운한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더군요. 재기의 발판도 잘 안 잡히고 마음이 허전해, 부처님을 찾아 기도드리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런 와중에 명진 스님(봉은사 주지)께서 제 경영능력을 불교의 현대화에 써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렇게 봉은사 현대화 작업을 하게 되어 ‘봉은 비전 2015’를 내놓게 되었지요. 그것이 알려지면서 중앙신도회 이상근 사무총장이 찾아와 불교계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몇 차례 거절 끝에 그럼 훈수나 좀 두겠다고 하다가,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 불교 중흥의 기폭제 역할
지난 해 9월 이재희 씨는 불교계 사회적기업 1호인 ‘연우와함께’의 태동과 함께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회적기업이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창출된 이익은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하는 기업이다. ‘연우와함께’ 역시 영세한 불교계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를 연결해 ‘범불교 착한 소비시대’ 구현에 앞장서, 그 이윤을 포교와 신행활동 활성화 등 불교발전에 회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재희 회장은 아직 성공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패에 대한 우려가 크다.
“현재 상태로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일단 불교계의 환경이 종단과 신도를 이어주는 유기적 연결체가 없어 상당히 산만한 데다, 이러한 사업의 선례도 없고 주변의 관심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사업을 이끌어갈 만한 자본도 없고 전문성도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하물며 가장 기본적인 소비시장도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기 위해선 어려운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에너지가 집중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불교에 대한 애정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는 제대로 된 불교 소비시장을 만들어, 그곳으로 불교를 집결시켜 불교 중흥의 기폭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제가 60대 중반에 접어들어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그 동안 세계를 누비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불교 발전에 회향하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단순한 사업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새로운 불교운동입니다. 한국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도 미비하고 결집력도 부족합니다. 곧 삼류로 전락할 위기에 있는데도 위기인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며 소통과 화합을 통해 진화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 불자들의 소비문화를 바꿀 필요성이 있습니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올리는 공양물인 양초나 향, 쌀을 만드는 공장과 유통업체가 대부분 타종교인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불자 생산자 실명제와 믿을 수 있는 제품 인증제를 실시하여, 불자 생산자를 양성하고 소비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불자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며, 그 이윤은 불교 발전에 쓰여 선순환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돈을 불교발전을 위해 이념화·무기화해서 생각하며 쓰자는 것입니다.”


● 위대한 승리 아니면 장렬히 전사한다
‘연우와함께’는 현재 견지동 전법회관 1층에 ‘우리절 녹색장터’ 매장과 인터넷쇼핑몰(www.lotuscoopmall.com)을 갖추고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 수도권에 1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고 온라인쇼핑몰을 활성화시켜나갈 예정이다.
“3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사업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2015년까지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매년 50~100억을 불교 발전에 회향하도록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그 후 어느 정도 인프라가 구축되고 궤도에 오르면 공정무역, 웨딩, 연화(장례), 여행, 교육, 문화, 환경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불자들의 생로병사와 의식주를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기업으로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또한 미래지향적인 장기적인 시각으로 월정사, 송광사, 해인사 등 사찰 중심으로 지역을 권역별로 테마화시켜 국민관광지나 성지로서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면 동북아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24시간 언제 어디서건 일할 수 있는 체제를 위해 운전기사가 2명 있기를 바랐던, 평생 휴가 한 번 가지 않은 지독한 일벌레 이재희 회장. 그는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이후 모든 시계를 10분 빨리 맞춰 놓고 시대에 한 발 앞장서서 세월을 기다린다. 그런 그가 불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대한 승리 아니면 장렬히 전사한다는 각오로, 정말 잘해보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단칼에 베어버릴 줄 알았는데, 막상 베려고 하니 벨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불교계의 현실이 열악하지만 ‘연우와함께’가 지향하는 가치는 제가 아니더라도 불교계가 꼭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제가 실패를 하더라도, 막혀있는 혈맥이 통할 수 있도록 침 정도는 놓고 싶습니다. 이 사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DNA는 심고 가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보이십니까, 제가 꿈꾸는 불교 중흥의 모습이? 만약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보이신다면 ‘연우와함께’가 가는 길에 동참해주십시오. 분명 불자로서 자긍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랑스런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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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ː 1947년 부산 출생. 부산대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본시 1기 출신으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하얏트리젠시서울 관리이사ㆍ상무이사, 국제적 물류기업인 TNT익스프레스의 한국사장ㆍ극동담당사장ㆍ아태지역수석부사장ㆍ북아시아사장,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참여 정부 때 물류중심위원회 위원장, 물류정책추진기획단 단장 등을 맡아 물류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2009년 9월부터 불교계 사회적기업 1호인 (주)우리는연우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꿈을 향한 위대한 여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