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목숨끊어지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자비의 손길

2010-04-06     관리자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민족상잔의 6.25전쟁에 참전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며 꿋꿋이 살아오던 삶에, 끝모를 어둠의 자락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전쟁 때 최전방에서 기관총 사수 보직을 받고 북한군을 많이 살상했어요. 그때는 국가를 위해서 자랑스런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참 가슴 아픈 일입디다. 그것 말고는 살아오면서 특별히 가슴에 부끄럽거나 빚진 일이 없는데, 인생의 말년이 왜 이토록 참혹한지 모르겠네요.”
박성백(80세) 할아버지의 말끝에 긴 한숨이 섞여나온다. 잠깐의 대화에도 힘겨워하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조돈호(75세) 할머니가 그 동안의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놓는다.
전쟁이 끝나고 군에서 제대한 할아버지는 그 이듬 해 중매로 할머니를 만나, 결혼해서 슬하에 4남매(2남 2녀)를 둔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고물상을 하며 알음알이로 수입품을 떼어다 행상을 했다.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그러다 37세 때 지인의 소개로 남대문시장 경비로 취직이 되어, 17년간 일하게 된다.
“그만 둘 당시에 남편이 경비 반장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부하직원이 물건을 빼돌리다 걸려 시장이 발칵 뒤집혔지요. 그때 남편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나오게 된 거죠. 이후엔 나이도 있고 받아주는 곳도 없어, 실직 상태에서 노동판을 전전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다행히 네 자녀가 사회생활을 하며, 차츰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큰아들(54세)이 남대문시장에서 수입상을 하며 돈을 잘 벌어, 집도 사고 동생들도 도와줘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되는 듯했다. 어디를 가나 자식 잘 뒀다고 부러움을 샀다. 근심 걱정 없이 마냥 그렇게 행복한 노후를 보낼 줄 알았는데, 17년 전 큰아들이 골수암 판정을 받게 된다. 가슴 벅차게 다가왔던 행복이 깨어지는 데는 한 순간이었다.
“골수암 치료를 받으면서 설상가상 장사가 부도나서, 모아둔 재산은 다 까먹고 달랑 집 한 채 남게 되었지요. 그것마저도 집을 잡혀 노름빚과 생활비로 대출을 많이 받아, 조만간 경매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술과 경마에 빠져 폐인이나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술은 입에도 안 대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우리 방부터 들러 방바닥이 따뜻한가 살펴보던,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착한 아들이었는데….”
큰아들뿐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연이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큰아들의 도움으로 수입상을 하던 둘째아들(52세)도 부도를 맞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공장에 다니는 며느리에 의지해 월세방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막내딸(46세)은 고등학생인 아들이 4살 때 남편과 사별하고, 커피숍을 차렸다가 실패해 많은 빚을 지고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할아버지의 건강이다. 4년 전 전립선비대증에 이어 방광암으로 판정받아 치료를 받았는데, 지난 해 12월 신장암으로 전이되어 신장을 하나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 남은 신장도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한다. 지난 1월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지만, 할아버지의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에서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하루 24시간 내내 15~20분에 한 번씩 소변을 봐야 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큰아들이 허구한 날 술을 옆에 끼고 사람을 부대끼게 하니, 며느리와 손녀딸들이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합니다. 그러니 우리한테 정이 가겠습니까. 담 쌓고 지낸 지 오래 되었어요. 둘째아들과 막내딸은 자기네 형편이 그러니, 아버지가 이렇게 아픈데도 연락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큰딸이 간간이 찾아와 용돈이라도 쥐어줬는데, 사위가 그 사실을 알고 펄쩍 뛰며 친정 쪽으로는 머리도 두지 말라고 했다네요. 얼마나 들들 볶았는지 전화번호도 바뀌어 연락이 끊겼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 남편에게 연탄불 피워놓고 둘이 함께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자고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발 살려만 달라고 합디다. 그러면 자기가 나가서 돈 벌어 오겠다구요. 삶에 손톱만큼도 미련이 없는데, 살아있는 목숨 끊어지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박성백 할아버지와 조돈호 할머니는 현재 혼자 사는 지인이 내준 방 한 칸에서 무상으로 거처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할아버지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월세(25/500만원) 보증금을 뺀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의 배려입니다.
“남편이 일주일에 5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데, 한 번 받을 때마다 75,000원이 듭니다. 이제 월세 보증금도 바닥이 드러나는데,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돈이 없는 것보다 자식들에게 외면당하고 사는 게 견디기 힘드네요. 그냥 종종 연락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방 한 구석에 할아버지의 환갑 기념 가족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두 분은 혹시라도 언젠가 온 가족이 다시 모이는 날이 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소박한 소망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불자 여러분의 작은 정성과 관심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저희 월간 「불광」에서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소개하여 그들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고된 삶의 짐을 함께 하려 합니다. 주위에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이웃 등 힘든 삶을 꾸려나가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고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후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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