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엔 예습·복습이 없다

지혜의 향기 / 숫자 '1'

2010-01-29     관리자
‘첫눈’이 내리면 마음이 설렌다. 사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내렸던 눈이지만 항상 ‘첫눈’은 흥분과 설렘, 새로움을 선사한다. 이렇게 ‘첫’이라는 수식어는 항상 새롭고 설레는 느낌을 준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첫 육아경험’만큼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며 자신없어하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큰아이를 낳자마자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직장을 다니다가, 1년 만에 둘째를 갖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인천의 아파트 현장으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동네에서 이제까지 겪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큰아이도 제대로 키워보지 않았고 비교적 편안한 직장을 다녔던, 모든 면에서 왕초보였던 내게 하루 종일 연년생 아들 둘을 데리고 살아가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쓰레기봉투 버리기, 청소하기, 다림질하기 등 일상사를 처리하려면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고 우리 집이 9층인지라 사고라도 생길까봐 베란다 창문을 닫고 살아야했다. 아침에 타 놓은 커피는 차갑게 식혀서 저녁에 그냥 버리기 일쑤였고 우아하게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기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제일 괴롭혔던 일은 ‘과연 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완벽한 엄마의 모습들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실망스러웠고 점점 자신도 없어졌다. 왜 아이들을 연년생으로 낳아서 직장도 그만두고 이 고생인가 싶은 마음에 나 자신뿐 아니라 남편까지 미워졌다. 매일을 전쟁 치르듯 정신없이 살다보니, 오죽하면 ‘학생 때 예습 복습을 하고 연습문제를 모두 풀어본 상태에서 시험을 치듯 그런 훈련을 겪은 사람들만이 아이를 키워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 모든 경험들은 항상 그 순간이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첫아이를 키우고 몇 년 후에 둘째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해도 어차피 그 상황은 처음 겪는 상태이기 마련이다. 환경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또 대상이 다르니 경험을 했다 해도 시행착오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도 얻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예습할 수도 없고 복습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겁이 나기도 하지만, 약간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롭고 신선한 일이 된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엄마와 함께 자랐던 아이들은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엄마가 보기엔 어리지만 그래도 법적으로는 성인이 된 나의 아이들. 모든 면에서 왕초보였던 엄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키운 나의 아이들이 자신들 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겁내지 않고 ‘첫눈’ 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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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ː 스리랑카에서 잠시 생활하던 중 우연히 마주친 한 불상 앞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 마음을 안고 돌아와 인도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어로 쓰인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