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知天命) 소녀의 꿈

지혜의 향기 / 나를 외치다!

2010-01-29     관리자
“언니, 나…,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그러면 대학을 가야 되는데, 이 나이에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들겠지?”
많은 주부들이 종종 그렇듯 TV리모컨이나 무선 전화기를 냉장고에 얌전하게 모셔놓고는 찾느라고 이 방 저 방 뛰어 다니기 일쑤인, 내년이면 오십을 바라보는 마흔아홉 살의 전업주부인 고등학교 후배가 약 1년 6개월 전에 내게 했던 말이다. 물론 그녀의 질문에는 내게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나이가 뭔 상관이래? 마음먹었으면 무조건 질러 버려, 까짓 거. 일단 시작만 하면 다 하게 되어 있다니까 그러네.”
나는 ‘그게 무슨 고민거리라도 되느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나의 이런 답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후배는 현재 대학에 입학해서 미래의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나 걱정하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 감퇴 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졌고,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룰루랄라’ 신나게 공부하고 있다.
한 시절, 나이 ‘쉰’이라 하면 ‘골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때도 있었다. 하긴, 지금 내 나이의 친구 중에도 사위, 며느리는 물론이고 손자까지 본 사람도 있으니 늙었다면 늙은 나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혹자는 말한다. “나이? 그까짓 건 숫자에 불과해.” 물리적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굳이 ‘늙어감’을 부정하려는 말에서 나는 숨어 있는 ‘희망’을 끄집어낸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작정 대학을 들어갔고, 이후 대학원까지 진학한 ‘나’, 그 초심의 ‘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자는, 다 늙어서 골치 아프게 무슨 공부냐며 코웃음을 치는 이도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함에 있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들의 시선 따위가 향학에 대한 나의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또한 지천명(知天命)에 학자와 소설가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나’는 또 얼마나 대견한가. 어찌 이런 ‘나’에게 용기와 희망의 ‘뻐꾸기’를 아니 날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너는 지천명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굵고 탄탄한 동아줄이라구!”
지천명의 나이에 학자나 작가가 되겠다고 덤빈다는 자체가 자칫 남들에게 비아냥 거리를 제공하는 원인일 수도 있을 터, 그만큼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못하니 ‘간절함’이 침잠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수화풍의 결합으로 사람 몸을 받아 50년째 이승에 머물고 있으되, 머지않아 다시 지수화풍의 분자로 돌아갈진대, ‘나’라는 몸뚱이 형상으로 있을 때 글을 쓰겠다는 간절함을 담아 서원(誓願)한다. 물론 이러한 서원이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을 나이인 이순(耳順)쯤 되면 스러질지도 모른다. 또는 이 몸뚱이 형상이 각각의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순간일 터, 지금은 우선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줘야겠다.
“꿈과 희망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너는 아직 소녀야. 지천명의 소녀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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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순 _ 48세에 한성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올해 2월 지천명의 나이에 「남지심의 우담바라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며 이를 악물고 공부해 장학금을 받았으며, 현재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박사 과정에 있다. 또한 용인시 국악협회 회원으로서 관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틈틈이 공연을 갖고 경기민요를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