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미술] 토속 신앙과 불교, 산신신앙과 산신도

신앙과 미술

2010-01-29     유근자
▲ 그림1>> 광덕사 산신도, 나무, 현대, 충남 천안 광덕사

 

호랑이와 곶감, 그리고 지리산 자락 늦가을,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일대는 황금색의 감이 주렁주렁, 풍성하기 그지없다. 지난 주말 시댁으로 감을 따러 갔다. 추위가 닥치면 단감은 단맛을 잃어버려 상품 가치가 없어지는데 날씨가 추워진다는 소식에 시부모님은 노심초사하셨다.
일을 마치고 “감을 다 따고 나니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아버님께 여쭈었더니 아버님은 대뜸 “미친 개를 호랑이가 물고 가 버린 것 같다”고 하셨다.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미친 개를 호랑이가 물고 가 버려 근심 걱정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으냐”는 것이다. 추위가 오기 전에 근심이었던 감 따는 작업을 마쳤으니 기분이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옛날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을 준다고 하니 울음을 뚝 그쳤다는 이야기, 그래서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곶감이라는 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동화였다. 문득 맛있는 단감을 따는 일이 미친 개를 집안에 두는 것처럼 근심이었던 아버님의 걱정을 호랑이가 가져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곶감을 무서워했다는 호랑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호랑이는 양면성이 강한 동물로 옛부터 인식되어 왔다. 사람을 해치는 포악한 면이 있는가하면 사람을 도와주는 선한 면도 함께 가지고 있어 우리 속담이나 옛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자, 단맛이 물씬 도는 감을 한 입 베어 물고 호랑이가 등장하는 산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산신이 된 단군 할아버지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산신은 우리 민족이 섬기는 자연신 가운데 으뜸으로 가장 오래된 신앙의 대상이었다. 단군은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건국 시조가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것은 산신의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암시하며, 단군이 산신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는 산신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산신제는 고대에는 국가의 제의(祭儀)였다. 왕이 주관하는 국가 제의의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가 모두 삼산오악(三山五岳)을 섬기는 산신신앙의 하나였다. 산신신앙은 국가제의에서는 물론 각종 공동체 제의에서도 나타나는데, 산과 관련된 일을 할 때에는 모두 산신제를 올리는 전통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즉 전통사회에서는 산을 섬기는 풍속이 개인에서 가족, 마을, 나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상화되어 있었다.
산신신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영웅 신화와의 결합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승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산신이 도와 준 이성계의 목숨’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팔도유람을 하던 이성계가 주막에서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을 만나게 된다. 이때 주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 그 주모가 바로 산신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산신은 장차 천자가 될 주원장이 나타나서 조선의 왕이 될 인물을 찾아 죽이고자 하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이 만날 자리에 주막을 차리고 주모 노릇을 하면서 주원장이 이성계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이성계의 수염을 뽑아서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이성계와 지리산 산신령과 우뚜리’ 이야기에서는 이성계가 지리산 산신령에게 산신제를 지냈는데, 부정이 탄 사실을 알고 다시 정성껏 산신제를 올려서 우뚜리를 처치하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성계의 건국신화에 해당되는 산신 설화 이야기들은 다양하지만 그 내용들은 한결 같다. 산신의 도움으로 이성계가 조선의 국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신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문헌 기록에 의한 산신 자료들에는 여성 산신의 비중이 특히 높다. 여성 산신의 존재는 박혁거세를 낳은 선도산(仙桃山) 성모(聖母)를 비롯해 운제산(雲帝山)의 성모, 치술산(致述山)의 신모(神母), 지리산의 성모, 가야산의 정견모주(正見母主), 영취산 변재천녀(辯才天女)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산신은 모신적 관념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성이 산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은 지명에서도 확인된다. 모악산, 모산, 모후산, 대모산, 부산(婦山) 등의 산명이 여성인 것은 산신이 여성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산신은 도인형의 남성 산신도이다(그림 1). 그러나 종종 여성이 산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지금도 계룡산, 지리산의 산신을 여성으로 보는 관념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추석 때 지리산 쌍계사 산신각에서 만난 산신 할머니도 이러한 여산신의 전통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림 2). 여산신은 대개 주름살이 많은 할머니상인데 호랑이나 소나무, 동자, 주변 배경, 앉은 자세, 지물 등으로 볼 때 일반적인 산신과 같다. 여성 산신으로서 약한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성 산신도에는 꼭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다.

 

 

▲ 그림2>> 쌍계사 산신도, 현대, 경남 하동 쌍계사


산신도와 호랑이 그리고 동자
전통적인 산신신앙이 불교와 습합되어 사찰 외호신으로 자리잡은 것은 조선후기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으로 보인다. 산신신앙은 무병장수와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구복신앙이다. 산신이 사는 집은 산신각(山神閣)·산령각(山靈閣)·산왕각(山王閣) 등으로 부르며,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로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형태가 일반적이다.
산신의 구체적인 모습은 산신도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산신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산중(山中)의 왕(王)으로 불리는 호랑이로 직접 표현되기도 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의 모습은 수염이 길고 잘 생긴 선인(仙人) 노인이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사자(使者)로 호랑이와 동자를 동반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그림 3).

 

 

▲ 그림3>> 명봉사 산신도, 조선후기

호랑이는 왜 산신도에 등장할까?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단군신화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호랑이를 산령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산령으로 모셔왔다. 호랑이는 산신령의 사자 또는 산신과 동격의 의미를 부여하여 산신도에서 무서운 동물이기보다는 인격화된 형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 그림4>> 명봉사 산신도의 동자

산신이나 동자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태극선, 새와 같이 하늘을 상징하는 깃털로 만든 부채인 익선(翼扇), 학문을 상징하는 파초잎으로 만든 부채인 파초선(芭蕉扇),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불로초·거북·학 등이 있다. 산신이 들고 있는 익선과 파초선 등은 악신(惡神)을 털어버리고 선신을 불러들이는 용구로서, 바람을 만들어 내는 부채 속에는 천하가 들어있다고 믿었다.
산신도의 동자는 심부름을 하는 시동(侍童)의 역할이 강하다. 동자의 손에 들려진 접시(그림 4)에는 삼다(三多) 즉 장수·행복·자손번창을 상징하는 복숭아·부처님 손처럼 생긴 불수감·석류 등이 담겨있다. 산신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상징물이다. 나는 여기에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단감을 하나 더 올려두고 싶다. 늦가을 나에게 달콤한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단감이야말로 지리산 산신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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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_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