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김춘식의 행복한 시 읽기

2010-01-29     관리자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은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작과비평사) 중에서


김사인 _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1981년 「시와 경제」 창간동인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있고, 신동엽창작기금,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시 . 평 .

이 시의 ‘노숙’은 그 자체로 상징이면서, 또 말 그대로 ‘집 없는 삶’을 의미한다. 인생의 한 상징으로서의 ‘노숙’은 이 점에서 ‘무소유’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고 또 ‘몸’으로 간신히 뚫고 지나온 시간의 긴 여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론은 “인생 그 자체가 ‘노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이리라. 몸 밖에서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가정을 통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라고. 무엇이 미안하고 또 무엇이 너를 고되게 했는가. 지나고 나면 인생이란 ‘풍파’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고된 것이 바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고되고 힘든 삶의 시간을 지나온 몸을 바라보며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살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몸아!”라고 말을 걸고 그 노고를 위로하고 싶지만 그 노고에 값을 치룰 방법은 좀처럼 없다.
이 시의 마지막 3행에서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 싶어 묻는다/어떤가 몸이여”라고 끝을 맺는 여운은 상징적 삶인 ‘노숙’이 역시 언젠가는 그렇게 ‘노숙’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의 언술이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시작된 삶이 결국 인생이라는 길 위의 노숙으로 마감된다는 것, 참 알맞은 생각이 아닌가. 이 점에서 김사인 시인의 시는 ‘떠도는 영혼’의 목소리가 담긴 방랑자의 시이다. 집도 절도 없이, 사실 알고 보면, 그 ‘몸’으로 집을 이루었으나 처음부터 우리에게 집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던가.
추운 겨울이다. 노숙자들에게는 가장 혹독한 계절이리라. 따뜻한 집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 우리 스스로도 ‘몸의 노고’를 달리 위로하지 못해 더욱 미안해지는 그런 때가 온 것 같다. 내 영혼이 깃들어 사는 집이면서 모든 속세와 길바닥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고로운 존재인 내 몸에 다시금 감사하는 그런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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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_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동국대 국문과 교수, 계간 「시작」 편집위원이며, 평론집으로 『불온한 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