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思)[의지 작용]에 의해 펼쳐지는 수많은 업

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2010-01-29     관리자
불교에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백팔, 팔만사천 등은 일반인도 불교용어로 알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라는 것이 꼭 그 수만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그 숫자로 대표하여 드러내기도 합니다. 또는 어떻게 분류하는가에 따라 그 숫자가 많거나 적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업을 이야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업을 헤아리면 백팔, 팔만사천 또는 그 이상의 업이 있겠지만, 보통 업을 이야기할 때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십악업(十惡業) 또는 십선업(十善業) 등으로 헤아립니다.
십악업은 불교의식에 널리 독송되는 『천수경』에도 등장합니다. 그 열 가지는 살생(殺生), 도둑질[투도(偸盜)], 그릇된 음행[사음(邪淫)], 거짓말[망어(妄語)], 꾸밈말[기어(綺語)], 이간질[양설(兩舌)], 험악한 말[악구(惡口)], 탐욕[탐애(貪愛)], 성냄[진에(瞋쨌)], 어리석음[치암(癡暗)]입니다. 이에 반해 착한 업 열 가지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기어, 불양설, 불악구, 불탐욕, 부진에, 불치암입니다. 이처럼 십선업은 십악업 앞에 모두 ‘불(不)’을 넣어 ‘하지 마라’ 하여 다소 소극적인 측면으로 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적극적인 자비행으로 십선업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을 살려 주라[방생(放生)], 부지런히 힘써라[근면(勤勉)], 바르고 맑은 행동을 하라[정행(正行)], 바른 말을 하라[정어(正語)], 실다운 말을 하라[실어(實語)], 참다운 말을 하라[진어(眞語)], 사랑스런 말을 하라[애어(愛語)], 모두에게 골고루 베풀어라[보시(布施)], 모두를 자비심으로 대하라[자비(慈悲)], 슬기롭게 생각하라[지혜(智慧)].
악업에 의해 우리의 삶이 돌고 돌며 괴롭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십악업을 경계하고자 적극적인 십선업보다는 십악업을 드러내어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상 열 가지 업은, 그보다 많은 업 가운데 두드러진 것, 즉 대표적인 업을 나타낸 것입니다.
열 가지 업 가운데, 편의상 십악업을 통해 살펴보자면, 앞의 세 가지 살생, 도둑질, 그릇된 음행은 몸으로 짓는 업인 신업(身業)에 해당되고, 그 다음 거짓말, 꾸밈말(사탕발림), 이간질, 험악한 말은 입으로 짓는 업인 구업(口業)에 해당되며, 끝에 있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은 마음으로 짓는 업인 의업(意業)에 해당됩니다. 특히 마지막 의업인 탐애, 진에, 치암은 중생의 삶을 근본적으로 옭아매는 것으로 세 가지 독(毒), 즉 탐진치 삼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삼업인 신업, 구업, 의업도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으로 분류합니다. 『중아함경』 「달범행경(111경)」에는 “업에 두 가지가 있다. 사업과 사이업이다”라고 합니다. 그 경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후 논사들에 의해 논쟁이 있기도 합니다. 우선 쉽게 풀이해보면 ‘사업’은 ‘생각으로 지은 업’으로 바로 의업을 말하고, ‘사이업’은 ‘생각하고서 지은 업’으로 신업과 구업을 말합니다. 즉, 신업과 구업은 독자적으로 일어난 업이 아닌 의업을 전제로 일어난 업이 되기 때문에, 신구의 삼업 가운데 중심은 바로 의업입니다.
그렇다면, 의업에는 앞서 언급한 탐진치 삼독 이외에도 촉(觸)[부딪침], 수(受)[받아들임, 감수 작용], 상(想)[모습 지음, 표상 작용] 등 다른 마음 작용도 있는데, 왜 ‘사(思)’라는 용어가 등장했을까요?
우리에게 인식이 일어나려면 전체로 인식하는 주된 마음 작용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등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그에 수반되는 여러 마음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주된 마음을 심왕(心王)이라 하고, 수반되는 마음 작용을 심소법(心所法)이라고 합니다. 심왕이 소유한 것[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는 뜻입니다. 가령, 오온에서 식온이 심왕이고 수온, 상온 등이 바로 심소법입니다. 수, 상 이외에도 많은 심소법이 있는데, 그것은 행온에 포함됩니다.
보통 ‘사(思)’ 심소를 ‘의지 작용’으로 풀이합니다. 업의 뜻을 ‘조작’이라고 볼 때, 그에 걸맞는 마음 작용이 바로 ‘사(思)’입니다. ‘사(思)’를 파자(破字)하면, 마음[心]의 밭[田]이 됩니다.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면 그 밭에 얼마나 많은 것이 생겨나겠습니까?
이처럼 마음의 조작, 의지 작용에 의해 수많은 업이 펼쳐집니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염불을 할 때 손으로는 합장하거나 염주를 돌리고(신업), 입으로는 불보살님의 명호를 외우고(구업), 머리로는 불보살님을 생각합니다(의업). 손으로 염주를 돌리는 동안 손으로 다른 나쁜 짓을 하지 못합니다. 입으로 불보살님의 명호를 외우는 동안 다른 나쁜 말을 하지 못합니다. 머리로 불보살님을 생각하는 동안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머리로 불보살을 끊임없이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손과 입은 염주를 굴리고 명호를 외우지만 마음은 사방 천지를 헤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마음을 다스려 모든 것이 하나가 될 때 어느덧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 하게 됩니다. 이를 밀교에서 삼밀가지(三密加持)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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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공동 집필),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