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눈물

부모님을 위한 청소년 상담

2007-06-08     관리자

 아버지의 눈물

 '당구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 「불광」4월호에 쓴 글의 제목이다. 

  그 글에서도 밝혔지만 , 이 이야기는 불광 유치원의 한 제자로부터 건네받은 어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진솔한 육필 고백이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지난 시절의 고통과 방황을 되새길 수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잘못 길들인 습관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애태우고 몸부림하는 안타까운 몸짓을 가슴가까이 느낄수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옮겨 실으면서 '이(李)군은 이미 그 고통에서 벗어났으리.   이 군의 고백은 같은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에게 좋은 위로가 되고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겠지 ㅡ.'   이렇게 담담한 마음이었다.

  4월 초순 11시경 교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불광 4월호에 실린 당구치는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 군은 지금은 어떻습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있겠지요?" 

   나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 

  "아 , 아닙니다. 그렇지  못합니다.그래서 이렇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쿵 ㅡ 하는 실망을 느꼈다.'  그렇게도 절실히 다짐을 했었는데 ㅡ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다니 ㅡ .인간이란 그렇게도 나약한 것인가 ?'

  아버님께서는 나를 한번 만보고 싶다고 하신다.  학교 위치를 알려드리고 가능한 시간을 말씀드렸다.  이 군의 아버님은 곧장 달려오셨다.  4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 온후한 인상의 신사이시다.

  "저희 부모들 책임이 큽니다.  그렇지만 그럴만한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나 아내나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정상' 을 강조하시는것은 초면인 내가 그를 '좀 이상해게 보지나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선량하며 교양을 갖춘 분이라는 사실은 그분의 언행을 통해서 나는 이미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 저나 제 집사람이나 독실한 불자입니다.  법회도 잘 다니고 불광지에 실리는 선생님의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밀씀대로 아이들과 부드럽게 지내려고 애를쓰고 대화도 자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잘 되질 않습니다.

  아버님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신다.  나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저 아버지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선량한 부모님,  선량한 자식 ㅡ.  다만 잘못된 인연 때문에 엉켜서 헤어나지못하는 거지 ㅡ.'

   아버님은 오늘 이렇게 급히 찾아오신 이유는 자식의 과거를 회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전의 다급한 문제 때문이었다.

  "아이가 지금 고3이 되었는데 학교를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 그 학교는 안 가겠다고 합니다.구제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군이 학교가기 싫어하게 된 원인은 담임과의 갈등 때문이고 그 갈등등은 종교문제 때문에 약된 것이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는데다 고3 담임이 그쪽으로 너무 강한 집념을 지닌 분 같다.

  어느 수업시간에 이 군이 어머님이 주신 불교서적을 보고 있다가 담임에게 목격되고 그 일로 인해서 담임과의 갈등이 증폭되어서 학교 가기를포기한 상태가 된 것이다.  아버님은 1년 휴학쯤 원하시는데 담임은 자퇴를 강력히 주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옆자리의 교무주임 선생님의 자문까지 받아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정말 학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학교에서 1년간 휴학하는 것이 좋습니다.  1년간 좀 쉬면서 부족했던 학과도 보충해서 다시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그 학교를 꼭 그만두고 싶다면 지금 곧 주소 〈학군〉를 옯기고 서울시 교육청 상담실에 전학 신청을 하면 고3이라도 옯길 수 있고, 1년간 휴학하겠다면 휴학원을 내고 주소를 옯겨서 내년에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군 아버님은 '감사하다' 는 인사를 거듭하면서 교육청 상담실로 가겠노라며 총총히 떠나섰다.

이 군에게 하고 싶은말

이 군과 나는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이미 문제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이웃이며 동반자입니다.  이군 문제로 하여 괴로워하는 이는 이군뿐만이 아닙니다.  이 군의 부모님, 글을 읽고 있는 불광의 가족들, 스님들, 그리고 부처님 이 모든 분들이 고통과 좌절을 유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모두 부처님 광명속의한생명이며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현실을 직시하시오.  냉철하게 자기 앞날을 직시하시오."

  나는 먼저 이 군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군은 지금 10대의 청소년이 아닙니다.  나이 20의 성인입니다.  20살이 채 못됐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질 연륜이아닙니까? 남을 탓하면서 ,학교를 탓하고 선생님을 탓하면서 학업을 포기하겠다고 나오는 것은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주인의 할 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학교가 안 맞을 수도 있고 담임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담임이 니를 부당하게 대우한다' 라고 생각 할만한 상당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학교를 피하고 선생님을 피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입니까? 그런 이유로 학교를 포기한다면, 오늘날 이 나라에서 학교다니는 학생이 대체 몇 명이나되겠습니까? 입시지옥으로 전락한 이 재미없는 한국의 학교를 다닐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군은 이제 성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군은 마땅히 극복해 내어야합니다.   참고 이겨내어야 합니다.피하지말고 당당히 나서서 해결해 내어야합니다.  문제는 자신과의 싸움인것입니다.  물러서려하고 피하려하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당당하지 못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런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싸움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군은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군이 1학년 때 쓴편지 를 읽고 이군은 누구못지 않은 좋은 심성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이 군 아버님의 선량하신 눈매와 그 눈물을 보고 이 군은 반드시 성공할수 있다는확신을 얻었습니다.

  이군, 지난 일은 이제 모두 흘려버립시다.  지난 일을 생각하고 자신을 탓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약화시킬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중생이기 때문에,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있고 부끄러운 일도 저지를 수있습니다. 

  이 선생님도 차마 남앞에 공개할수 없는 약점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많이 부끄러워하고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지금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벗어나려고 더 이상 고민하고 발버둥치질 않습니다.  그 대신 내가 잘할 수있는 일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에 몰두합니다.

  이 군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십시오.  공부하기 싫으면 포기하고, 그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전심전력 몰두하십시오.   스포츠도 좋고, 기술도좋고, 예능도좋습니다.  정말 당구가 좋거든 그 길로 나서도 좋을 것입니다.  당구도 훌륭한 직업이 될 수 있지않습니까.  이 군, 두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힘껏 하십시오.  뭣이든 ㅡ.

*김재영: 1938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동덕여자고등학교레에 재직중에 있으며 서울청보리법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은혜속의 주인일세」「무소의 뿔처럼」「365일 부처님과 함께」「룸비나에서 구시나가라까지」「내 아픔이 꽃이되어」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