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茶室)

2009-12-13     관리자
   ♣ 이 가을은 너무 비가 잦았다. 푹 숙인 벼가 쓸어져 논바닥에 깔린 것이 많이 보였다. 한자락 비가 지나갈수록 가을도 성큼 성큼 깊어 간다. 풍년을 거두는 가을에는 보람과 함께 새 결의를 다지는 것은 불자의 월력(月曆)이다. 8일이 입동, 23일이 소설 동안거결제는 19일이다.
   깊어가는 가을, 단풍은 소리 없이 뚝뚝 땅에 지고 산은 한결 황량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단풍이 가고 잎이 지고 산과 들에 고요가 깔려올 때 우리들 마음 또한 고요를 향해서 깊숙이 가라앉는다. 동안거라 하는 것은 겨울철이 있는 북방지대의 불교권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역시 겨울답게 자연스럽다. 온갖 망념 다 쉬고 차분하게 자신에로 침잠하는 사색의 계절, 겨울 안거란 퍽 어울리는 수행이다. 잎은 져도 힘은 뿌리에 축적된 또 하나의 연륜을 보태는 성장이 이 겨울철에 있는 것이다. 멀지 않아 높은 산에 눈발이 날릴 것이다. 찬바람이 땅을 얼음으로 덮을 것이다. 우리들은 대지 깊숙이 타오르는 지열인양 정진의 불꽃을 태울 것이다. 산중 선원에 안거하신 스님이나, 시정에서 불사에 정진하시는 스님이나, 재가 생활 속에 믿음을 키우는 재속불자들이나 함께 겨울철 정진 수확 알차게 거두시기를…….
   ♣ 재가불자로서 안거철의 수행은 스님들 흉내를 낼 수는 없다. 혹 특별한 분들이 스님들과 함께 결제하거나 가정에 있으면서 안거수행을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역시 그것은 선택된 소수다. 대부분의 재속불자들은 안거수행에 수희발원 하거나 그 기간 동안 기도일과를 지키는 것이 고작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거기간 동안의 기도 설정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비록 몸은 삼독의 불길 치성한 거리에 처하지만 믿음의 세계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맑은 정진이 있기 때문이다. 재가수행에서 맑은 정진을 있게 하는 것은 한낱 염불일과를 지키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대자비 위신력의 광명 속에서 생활하고 염불한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원각경 원각보살장에는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안거를 말씀하셨고, 또 그때에는「청정실상에 머물러 대원각(大圓覺)으로써 가람을 삼고 안거한다.」고 하고 있다. 기도를 하던 그밖에 어떤 수행을 하던 수행의 바탕에는 이런 믿음과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을 말씀한다. 부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사는 생명이고 환경이고 생활임을 알 때 우리는 감사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받아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감사한 것이다. 요구조건이 있는 감사심이란 있을 수 없고 그래가지고는 안거 자세가 될 수 없다. 여기에서 환희가 있게 되고 부처님의 무량공덕에 대한 찬탄이 있으며 모든 이웃과의 존경과 우애가 있다. 보시공양도 당연히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서 정진력은 증장되는 것이니 독경도 염불도 좌선도 힘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재가보살의 안거수행은 바른 믿음, 바른 마음자세가 근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재가 안거를 생각해 보자. 이 겨울을 재가 안거한 자신으로 생각해보자. 그래서 수행일과를 여실히 추구해 가겠지만, 그에 앞서「청정실상에 머물고 대원각을 가람으로 삼으라.」하신 부처님 말씀을 생각하고 큰 긍정의 기초를 다져 가자. 만약 이런 안거 토대가 없다면 거기서 어찌 안거의 과실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 지난 10월 16일은 불광회 창립 9주년이 되는 날이다. 예년대로 기념행사, 인환(印幻) 스님의 강연이 있었고 바라밀다, 마하보디, 어린이, 중고등 연합 합창단의 발표가 있었다. 불광회가 오늘날 반야바라밀다의 믿음으로 굳건한 수행의 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불보살님의 가호력에서이지만 불자 형제들의 격려와 정진력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정법호지의 새로운 결의로 막중한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했다. 편달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