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치료의 접목

새 불교 새 물결

2009-12-09     관리자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불교권 내에서도 서양의 심리치료, 상담공부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든 아니면 포교일선에서든 나름대로 불교와 심리치료를 접목하고자 하는 요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막상 심리학 베이스가 아닌 불교학 베이스에서 서양의 심리치료와 상담 공부를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더러는 좌절해서 포기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타종교인들이 개설한 심리학 관련 강좌를 찾아다니면서 그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그 결과 심리학을 아는 사람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불교를 아는 사람은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또 다른 아쉬움이 생긴다고 한다. 즉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때 불교교리와의 연결이 부족함을 느끼고, 불교교리를 공부하면서는 심리치료적 이해와의 거리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까 불교와 심리치료를 접목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동시에 서양의 심리치료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불교에 대한 이해도 벅차고 서양의 심리학 이론도 만만치가 않다. 한마디로 그들은 지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서 심하게 결핍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무슨 대안이 없을까? 차선책으로 가능한 그 무엇이 없을까?
우선 서양인들에게 불교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팔리어 경전을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데 주력해 왔던 스리랑카 출신 푸나지[Bhante Punnaji, 『선치료』(학지사) 참고] 스님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불교를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자칫 교조주의나 초자연주의로 치우칠 위험이 있고, 반면에 철학으로 보게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들의 실제 삶에서 분리시키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불교는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사실 불교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든 그 가치와 의미는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불교를 서양의 심리치료/상담과 접목시켜서 공부하거나 적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푸나지 스님의 이야기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만 볼 수 있다면 종교든 철학이든 아니면 심리치료든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웬만큼의 정신적 수준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어느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이해의 방향과 초점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출발점, 또는 구심점에 대한 것이다. 즉, 불교와 서양의 심리치료를 접목하고 통합하고자 할 때, 그 중심, 구심점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이다.
서양인들 사이에 동양의 명상수행이 한창 유행하던 20세기 초에 동양의 종교와 선수행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수천 년간 동양의 문화전통과 터전에서 성장해온 명상수행을 서양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 일이 있다. 프로이드와는 달리 융의 심리학 체계에는 동양적 사상이 접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스즈끼 박사가 쓴 선불교 책 서문을 직접 써 줄 정도로 융은 불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경고가 불교에 배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불교를 받아들이되 주체적 입장에서 수용하고 활용할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지금 서양의 심리치료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반대의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심리치료를 받아들이되 불교를 베이스로 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불교에 대한 명확한 이해, 탄탄한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작정 심리치료만 쫓아다니면 자칫 주객이 전도되어 학문적으로든 치료적으로든 소득없이 방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서양의 심리치료를 불교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베이스로 하고 구심점으로 하라는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불교를 보다 잘 이해하고 보다 실천적인 불교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서양의 심리치료와 그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서양의 심리치료는 이미 반세기 가까이 불교·요가·힌두교 등을 중심으로 한 동양 심리학과 서양심리학을 통합한 트렌스퍼스널 심리학/심리치료 라는 심리학의 제4세력으로 성장해 왔다.
우리는 그들의 성과를 보다 가까이 접하고 친숙해지면서 그들의 방법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들이 치료자 자신과 내담자를 치유하고 자신들의 삶을 한층 고양시키기 위해서 불교의 수행법과 공(空)이나 중도, 무아 등의 가르침을 적용해 왔다면 우리는 역으로 공이나 중도, 무아를 보다 잘 깨우치고 무아적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리적 증상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불교공부를 그냥 인연 닿는 대로 이런저런 경율론 삼장을 두루 섭렵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심리적 상태(예를 들면 불안, 우울증, 공포 등)를 풀기 위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두루 살피고 연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을 예로 들어 그 차이점을 든다면, 전자는 그냥 금강경 자체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고 후자는 금강경에서는 불안, 우울증, 공포와 관련해서 어떤 가르침이 있는지 증상치유를 위해서 금강경을 활용하고 연구,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공, 무아(無我)를 치유적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분노·우울·불안·자비·연민·사랑 등의 정서상태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고 작용하는지를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유식 30송을 들어보자(대승불교 심리치료서의 대표를 한 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유식 30송을 꼽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식 30송하면 골치 아프고 무척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유식 30송을 마음치료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 된다. 왜냐하면 유식 30송은 바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치료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사랑하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사랑의 걸림돌은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를 들 때 그 화두가 현재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것일수록 효과적이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치료가 필요하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치료를 위한 처방전이라 생각하고 들여다 볼 때 치료의 효과는 가장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아가는 데 있어서 동기와 목적에 따라서 그 방법은 다양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만일 그 동기와 목적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고자 하는 데 뜻을 낸 사람들이라면 모든 불교를 치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