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행위를 하는 사람, 빠따짜라 장로니

부처님의 제자에게 배운다 / 비구니 지계제일 빠따짜라 장로니

2009-12-09     관리자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다
『앙굿따라 니까야』(A1:14)에서 빠따짜라 장로니는 출가 수행녀 가운데 지계제일로 언급되어 있다. 출가 전 그녀는 꼬살라국의 수도 싸왓티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부호였다. 아버지는 딸이 성장하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울 정도의 성숙미를 보이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경호원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좋은 집안의 아들과 혼인을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빠따짜라는 하인과 눈이 맞아 관계를 맺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버지는 딸을 같은 계급의 가문 출신 젊은이와 결혼시키려고 정혼을 해 버렸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도망칠 궁리를 하다가 드디어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시녀로 위장하여 집을 나와 하인과 도망가서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살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출산이 임박하였을 때 그녀는 친정집으로 가서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반대 때문에 지체되는 바람에 첫째아이는 길에서 낳고 말았다. 얼마 후 둘째아이를 다시 임신하자 아내는 이번에는 반드시 친정에서 출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인이었던 남편은 아내가 친정으로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인도의 카스트 문화로 본다면 아내와 함께 친정으로 가면 아내와 이별은 물론이고 자신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빠따짜라와 그녀의 남편은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는 길을 떠났다.
그렇게 길을 떠나 친정으로 가는 도중에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순간 산통이 시작되었다. 길에서 출산을 하게 되자 당황한 남편이 비를 피할 움막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방법을 궁리하였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던 남편이 갑자기 나타난 코브라에 물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폭우 속에서 산통을 견디던 빠따짜라는 어렵게 둘째아이를 출산하였다. 날이 밝은 다음 그녀는 남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죽어 있는 남편을 발견하였다.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한탄했지만 죽은 남편이 살아오지는 않았다. 두 아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을 친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찌와라디 강가에 도착하였을 때 폭우로 강물이 크게 불어 있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두 아이를 함께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작은아이를 강둑 저 편으로 옮겨 놓고 큰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큰아이를 남겨 두고 작은아이만 업고 강을 건너 잠시 작은아이를 눕혀 둘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뭇가지와 풀을 잘라 보금자리를 만든 다음 작은아이를 눕혀 두고 큰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다시 되돌아서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강물을 중간쯤 건너고 있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작은아이 주변을 맴돌다가 아이를 낚아채서 날아가 버렸다. 작은아이를 구하려고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며 아우성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때 첫째아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급하게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빠따짜라는 하루 만에 남편과 두 아이를 모두 잃고 혼자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이제 의지할 때라고는 친정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신 나간 상태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걸어 친정이 있는 동네에 도착하여 사람들에게 친정집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 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지난 밤 폭우에 친정집이 무너지면서 온 가족이 몰사하였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빠따짜라는 실성해 버렸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린 채 그녀는 이 동네 저 동네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영원한 의지처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닦다
이리저리 떠돌던 어느 날 빠따짜라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처님은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오랜 동안 바라밀행을 닦으며 수행자가 될 것을 서원하고 수기를 받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녀는 부처님을 뵙고 자신의 슬픈 처지를 낱낱이 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자신의 의지처가 되고 보호처가 되어주실 것을 청하였다. 부처님은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빠따짜라여,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라. 그대는 이제 피난처, 보호처, 의지처에 왔다. 그대가 한 말은 사실이다. 아들 하나는 독수리가 채가 버렸고, 다른 아들은 홍수에 휩쓸려갔고, 남편은 길가에서 죽었다. 친정집은 폭풍에 무너져 내려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가 몰살당했다. 하지만 그대가 끝없이 윤회하면서 아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흘린 눈물은 저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빠따짜라는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였다. 부처님은 이어서 그녀에게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생각지 말라.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좀 더 깨어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청정한 마음으로 열반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하셨다.
또한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자식도 형제도 어느 누구도 피난처,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 하물며 금생에서 어떻게 그들의 피난처, 의지처가 되겠는가?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행위를 청정하게 하고, 영원한 의지처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닦아 스스로 의지처를 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법구경』 게송 288번과 289번)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빠따짜라는 수다원과를 성취하고 출가하여 수행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은 그녀를 비구니 사원에 보내 계를 받게 하였다. 이 때부터 ‘행복한 행위(빠띠따짜랏따)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빠따짜라’로 불리게 되었다.
수행처에서 집중 수행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 그녀는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 가져와서 조금씩 부으면서 발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물을 처음 부었을 때는 물은 조금 흘러가다 땅 속에 스며들었다. 두 번째로 물을 부었더니 조금 더 흘러갔다. 그리고 세 번째로 물을 부었더니 좀 더 멀리 흘러가다 사라졌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집중하면서 사유와 숙고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것을 삶과 죽음에 연결시켜 마음을 집중하였다. 빠따짜라의 이 같은 수행의 모습을 보고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법을 해 주셨다.
“빠따짜라여, 무릇 사람된 자로서 모든 현상이 항상(恒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모든 생명들이 불만족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음을 모르며, 모든 법에 절대적인 주인, 혹은 자아(自我)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가 비록 백년을 산다고 해도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느니라.”
이 가르침을 듣고 아라한과를 성취한 빠따짜라 장로니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법을 해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