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달빛 읽는 소리가 들리니

선어유희[禪語遊戱]

2009-12-09     관리자
이른 아침 조계사 옥상정원의 누각에 몇 명이 둘러앉았다. 본래 스님네들은 ‘새벽형 인간’으로 분류되는지라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풍경이다.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여유는 옥상 정자에서 차를 마시는 것으로 도심의 아침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장대하고 날아갈 듯한 운치있는 누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깊은 산속 오래된 절에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듯한 아취에 젖게 해준다. 사실 이 기쁨을 누린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조계사의 옥상정원을 완성한 까닭이다.
하늘을 어루만질 듯이 치솟아있는 마천루(摩天樓) 사이에서 그나마 4층짜리 조계종 종무행정 처리공간은 나지막한 건물군에 속한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종로에서 가장 눈에 뛰는 건물이 조계사 대웅전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심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는데 지금은 주변 건물 사이에 가려 길만 건너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누각의 3면에 달아놓은 창호지를 붙이지 않은 창살문은 높은 이웃건물에서 훔쳐볼 수 있는 까닭에 더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가배(▩례: 커피의 중국식 표기)를 마시는 이 아침은 가야산 농산정과 간월정에 있는 흥취에 못지않다.
가야산 문수암 한켠에 간월정(看月亭)이란 누각이 있었다. ‘달을 보는 집’이라 이름이 붙을만큼 운치있는 정자다. 처음 살러 들어갔을 때 그 누각은 초가지붕을 이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키 큰 볏짚을 구해야 했고 이엉을 일 줄 아는 기술자를 수소문했으며, 그의 일정이 비는 날을 기다려야 했다. 몇 해를 거듭하다가 결국 지붕을 개량하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번거롭기도 했지만 초가지붕에 기생하는 벌레들의 등살을 감내하지 못한 까닭이다. 운치를 즐기는 것도 개인적인 수고로움 없이는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이미 오래 전에 비스듬히 기울어 넘어질 듯하면서도 십수년째 그 자리를 꼿꼿하게 지키고 있는 그 허름한 누각은 모두에게 가장 인기있는 편안한 집이었다. 얼마 전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철거하게 되었는데 암자를 찾아주던 모든 이가 하나같이 아쉬움을 토로해왔다. 그 현판만큼은 고이 내려 모셔 두고서 후일을 기약했다.
일타 스님도 누정을 좋아하여 지족암에 나란히 이어진 누각을 두 채나 지었다. 그것도 양에 안 차셨는지 산줄기 등성이에 아예 유리로 정자를 짓고서 눈 오는 날이면 사방으로 터진 누각에서 백설을 만끽하시곤 했다. 그 유리정자는 지금은 없어졌다. 직지사 관응 노장님은 직지사 중암의 팔각으로 만든 누정에서 산신령처럼 흰 눈썹을 휘날리며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 모두 열반하시고 정자만이 남아 가야산과 황악산에서 당신이 향기를 대신 발하고 있다.
해인사 계곡의 물가에 달아놓듯 지은 금선암의 요사채는 사시사철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봉창문을 열면 바로 손에 닿을 듯이 계곡물이 가깝다. 고시생들이 눈을 식히고 귀를 씻고서 다시금 자기의 마음을 다잡는 그런 터이기도 하다. 보를 막아둔 탓에 장마철을 제외하면 작은 호수나 다름없다. 보름밤이면 둥근달이 계곡물에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이런 광경을 묘사한 절창(絶唱)은 퇴설당의 주련인 경허 선사의 시에 나온다.

청정어독월(靜聽魚讀月) 너무 고요하여 물고기의 달빛 읽는 소리가 들리더라

가야산 입구 농산정(籠山亭)은 신라말 최치원 선생이 이 세상에서 몸을 숨긴 인연 때문에 둔세지(遯世地)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맞은 편 언덕 위에는 ‘경주 최씨’ 재실과 가야서당 등 몇 채의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 옛날 선비들의 글 읽던 소리를 흐르는 물은 기억할 것 같다. 그의 시가 바위에 남아있었는데 긴 세월 앞에 물에 씻겨져 겨우 흔적만 남아있다. 학인 때는 바위 여기저기 새겨진 시들을 탁본하여 오가던 이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숨어살기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산까지 귀먹게 한다는(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그 정자는 오늘도 꿋꿋하게 가야산 입구에서 홍류동 계곡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고운(孤雲: 최치원)의 집착 아닌 집착을 두고서 일제시대 때 환경(幻鏡) 스님과 교유하던 최동식(崔東植) 거사는 오늘도 ‘선기(禪機)’로 한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장유수홍진세(已將流水紅塵洗) 이미 흐르는 물에 세상의 때를 씻었거늘
불필중농만첩산(不必重聾萬疊山) 다시 만겹 산으로 귀막을 필요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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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_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승가대학, 실상사 화엄학림, 동국대(경주)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강의했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조계종총무원 신도국장·기획국장을 거쳐 현재 재정국장 소임을 맡고 있다. 번역서에는 『선림승보전』 상·하(장경각 간)가 있다. 불교계의 여러 매체와 일간지 등에 깊이와 대중성을 함께 갖춘 글을 써왔으며, 저서로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와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