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과 함께 보낸 33년

독자광장 / 함께 나누는 이야기

2009-12-08     관리자
3,000일 기도 회향일이다. 사형수를 위해 시작한 기도가 3,000일이 되었다. ‘이 세상 마지막 끝동네’라고 불리는 교도소 교도관으로 33년간 일해 왔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감사할 일들이 많았다. 기도 중 가장 큰 기쁨은 3명의 사형수가 무기수로 감형되어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본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안타까웠던 순간들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사식으로 신청한 오므라이스 한 그릇을 전해주러 갔는데 먹어보지도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어느 재소자의 죽음이다. 그때의 슬픔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사형수! 우리 인간은 모두가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사형수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수일 수밖에 없다. 죽음을 향한 걸음을 한 시라도 늦출 수도 없고, 우리의 죽음이 언제 집행될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본래 내 것,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기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나누어야 할 일이다.
마음을 의지할 데 없는 수용자들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깃털 같은 작은 도움도 그들에게는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 특히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나 연고가 없어 수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무연고자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모들조차 차마 돌볼 수 없는 불우수용자들의 사정을 살피고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었던 것도 큰 행복 중의 행복이었다.
수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무연고자들이나 불우수용자들뿐만 아니라 수용자 가족들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 이다. 형을 마칠 때까지 수용자들의 심리적 안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족들, 특히 무연고자나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을 돕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옷이 없으면 옷을 주고, 양말이 없으면 양말을 주고, 눈물을 흘리면 등을 쓰다듬어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그러나 무엇보다 어두운 그들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을 켜주는 일이다. 비록 그늘진 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이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밝은 마음의 등불을 켜주고 싶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심어주는 일이었다.
1987년에는 서울구치소 내에 불교모임인 불심회를 창립해서 매주 법회를 보고, 수계법회를 실시하고, 재소자들을 위한 상담을 꾸준히 해오기도 했다. 매년 설과 추석에는 종교에 상관없이 합동차례상를 차려서 재소자들과 함께 조상님께 제를 올리니 모두가 좋아했다.
서울구치소에는 재소자와 직원들을 포함해서 3,200명의 대중이 함께 하고 있다. 올해 17년째 서울구치소 재소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신 자심문 최숙희 보살님의 은혜는 한량이 없다. 어느 날 보살님은 광덕 스님이 쓰신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 책 한 권을 나에게 전해주셨다. 그 책을 읽는 순간 나는 긴 미망의 어둠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스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았다. 그대로 빛이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밝음 앞에 어둠은 없는 법, 내 생명이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을 그대로 지닌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 또한 스스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어 전법하리라는 원을 세웠다. 그리고 보현행원의 가르침을 어깨 너머로 접하면서 보현행원은 곧 나의 원이 되었다. 특히 광덕 스님께서 보현 10행원을 우리의 서원으로 만드신 ‘보현행자의 서원’은 우리 모두의 서원이기도 하다.
“…실로 모든 중생이 진정 중생이 아니며, 부처님의 거룩하신 공덕을 구족하게 갖추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모든 중생과 그가 지닌 한량없는 공덕을 찬양하겠습니다. 결코 중생이라 낮춰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방하거나, 어리석다 하거나, 무능하다 하거나, 불행하다 하거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일체 중생이 원만한 덕성임을 믿사오며, 그 모두를 찬양하겠습니다. …”
광덕 스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그리고 보현행원품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바뀌었다. 나에게도 재소자들에게도 감옥의 담은 더 이상 담이 아니었다. 원래 경계가 없었다. 본래 없었던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밝은 광명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축복인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세월을 높은 담 안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해왔다. 초임시절 나에게도 시련은 있었고, 음지처럼 느껴지던 주위 환경을 피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재소자들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고, 수없는 철창문을 닫으며, 내 마음이 닫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동안 만났던 분들이 모두 나에게는 밝은 선지식들이었다.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밝으면 밝은 대로 모두가 부처님의 나툼이요, 빛이었다.
3,000일 기도 회향의 소회라고 하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좀 더 오롯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장학사업을 통해 어린 부처님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부처님 법을 전하면서 남은 삶을 회향하리라는 다짐을 새로이 하며 오늘도 또 기도에 임한다. 우리 모두가 해가 되고 달이 되어 그 빛을 돌려주는 삶이 되길 발원하고 또 발원해본다.
이남수 _ 1977년 안양교도소 교도관으로 근무한 이래 서울구치소 교정본부장으로 퇴임하기까지 33년간을 봉직하며 재소자 교화에 힘써왔다. 서울구치소 직원 불자모임인 불심회를 창립, 회장을 역임하면서 보이지 않는 숨은 봉사를 통해 ‘구치소의 천사’로 불리웠으며, 현재는 선우정사 선정회(禪定會) 회장으로 전법의 원력을 펼쳐가고 있다.
뒤늦게
개종하여
불교대학을
졸업하며
정토화 임금홍널찍한 들판을 제처 놓고 하필이면 가파른 담장 벽 틈에 어렵사리 민들레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녹록치 않은 그 자리에서도 노란 꽃을 곱게 피우고 하얀 홀씨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보듬고 있습니다. 삭막한 도시 연변(沿邊)에 홀로 핀 노란 민들레는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앙증맞은 한 떨기 민들레의 작은 행복이 아름답습니다. 나부낄 듯 흔들리는 하얀 홀씨는 머지않아 미래의 희망을 찾아 어디엔가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겠지요. 그들의 작은 행복과 희망이 부럽습니다.
작은 풀 한 포기에 비하면 몇 십 배 더 많이 갖고도 저는 아직 만족을 모르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서리를 맞아 반 토막이 난 펀드가 다시 회복되기를 고대하기도 하고, 회사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퇴직한 사위가 더 멋진 직장으로 하루속히 복귀되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또한 목이 좋아 장사가 잘 되는 빌딩을 보면 괜스레 탐이 나기도 한답니다.
산마루에는 석양이 붉게 물들곤 합니다. 마치 굶주린 표범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붉은 혀를 벌리고 포효하는 듯, 온 천지가 붉게 타오릅니다. 석양의 노을처럼 불타는 것은 또한 자신이기도 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의 인식대상이 석양의 노을처럼 불타고 있습니다. 눈, 귀, 코, 혀 그리고 몸과 의식이…. 붉게 타오르는 탐진치 삼독은 스스로 벗어야 한답니다. 그것이 기독교와 다른, 커다란 과제랍니다. 믿기만 하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타력 종교에서 자신의 의지 여하에 따라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는 자력신앙이 불교랍니다. 얼마나 멋진 논리적 사고입니까?
하지만 불교는 아무나 믿을 수 있는 종교가 아닌가 봅니다.
저의 경우 10대는 구호물자를 타려고 교회에 다녔고 20대는 타향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움을 달래려고 교회에 다녔지요. 하지만 내 인생의 황금기인 삼사십대를 지나 오십대마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마치 백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는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구멍 뚫린 판자를 만나 머리를 넣게 되는 확률만큼이나 불교를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재발견한 종교적 혁명
황금 같은 좋은 세월 교회에서 보내고, 뒤늦게 부처님과 눈이 마주쳐 경인불교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어 오늘의 영광스런 졸업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맹목적인 맹신은 기복적 종교에 지나지 않기에 불교를 조금이나마 알아보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논리 정연한 부처님의 오묘한 법향에 깊숙이 이끌리어, 법(法)의 선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를 때마다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리곤 했습니다.
이 세상은 절대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종교에 한평생 몸담고 있던 저에게 모든 것은 마음이 창조한다는 일체유심론은 커다란 종교적 혁명이었습니다. 불교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돌덩이나 쇳덩어리로 우상을 만들어 절하는 저속한 종교라는 말에 속아서,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정법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으로 한 생애를 마치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한스런 일이었겠습니까?
수미정사 경인불교대학에서 경전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가치관과 삶을 재발견한 행운은 로또복권에 당첨된 행운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거짓 자아로 점철되었던 나의 업장에 참 진리가 나의 8식 즉 아뢰야식, 장식에 영원히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은 계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미욱한 중생들에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어려운 여건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경인불교대학을 설립 운영하시는 석종연 큰스님께 부처님의 가피가 생생토록 영원하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먼 길을 오시느라고 흠뻑 젖은 옷을 입으신 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감명 깊은 강의를 열강해주시던 강사님들의 아름다운 노고에 진정 감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끝으로 부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신 가족들과 따스한 눈길로 저를 이끌어 주시고 오늘 이 자리까지 지켜주신 여러 도반님들과 오늘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임금홍 _ 세종대 문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 수필가(「수필과 비평」으로 등단)로서 제물포수필문학회·현대수필창작아카데미 회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