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

2009-12-08     관리자

   ♣ 시원스러이 펼쳐진 하늘, 온몸의 세포의 구석구석을 스며드는 바람, 아무래도 우리의 가을은 아무리 자랑해도 말이 부족하다.
   어느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느끼는 상쾌한 가을이 아닌가. 계절을 잊어버린 요즈음의 꽃가게에선 옛 울밑 황국의 향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한 번 들녘을 나와 보면 넘실대는 이 가을의 향취가 어디 갔으랴.
   출렁이는 황금의 물결, 술렁이는 수수밭의 풍성함이며 풍요의 향기는 온 천지를 넘쳐흐른다.
   역시 찌는 듯한 무더위가 있어 좋았다. 대지를 씻어 내는 것 같은 장대 같은 물줄기도 좋았다. 쇠뿔을 녹인다는 초가을의 노염도 좋았다. 그렇게 해서 이 가을의 평화와 풍성이 마련되지 않았던가. 다행스러움, 오직 합장하고 감사에 젖는다. 
   ♣ 계절에 맡겨 자라고 피운 황국은 요즘 멀리 갔어도 들녘에는 역시 들국화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땅속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풀벌레 소리가 우리들의 생각을 고요 속으로 깊이 몰고 간다.
   가을은 고요에 머물고, 만 가지 생각을 거둬 들이는 때인가.
   때마침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신화 속에 뿌리를 찾고 뿌리 속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같은 이야기 속에 젖어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송화강 유역, 동쪽은 연해주, 서쪽은 흥안령에 이른 광활한 대지, 여기에 우리 겨레는 터전을 잡고 역사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때에 환인 하느님의 아들 환웅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천부인을 지니시고 태백산 단목 아래 나시어 좋은 정치를 베푸셨더라. 그때에 곰과 호랑이가 환웅천왕께 청하여 사람 되기를 원하니 그에게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햇빛을 보지 않을 때 사람됨을 얻으리라 허락하셨다.
   곰을 계행을 지켜 100일 정성을 성취하여 여자 몸을 얻었으나, 범은 100일 지성을 견디지 못하여 사람됨을 얻지 못했다. 외로이 태어난 웅녀는 환웅천왕에게 기도(?)하여 마침내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시다. 단군왕검께서 아버지 환웅을 대신하여 이 땅의 겨레를 지도하시니, 이 땅의 겨레들은 중심을 얻었더라.
   생각할수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신화다. 세간을 초월한 완전무결한 하늘과 온 천지 모두를 감싼 따뜻한 뜻 속에 하늘도 인간도 호랑이도 곰도 하나가 되어 뜻을 펼쳐 간다. 그래서 이 땅위에 하늘의 평화와 영원과 번영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
   하느님의 이름이 환인(桓因)이라는 것이 불교의 제석천왕의 이름과 같음을 본다.
   불교 수입 후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환인은 제석천왕의 이름이다. 이 환인의 뜻을 받아 그 후예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다.
   저들의 이상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늘이라는 초월적이며, 원만하며, 영원하며, 항상 함께 하는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저들이 행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몸소 행하는 것이리라.
   거기에 평화가 있고 창조의 지혜가 있고 용기가 있다. 하늘의 질서를 이 땅에 이루고 하늘의 번영을 이 땅위에 실현하는 그런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백성들, 단군신화에서 우리들의 마음은 사뭇 넓어지고 깊어지고 맑아진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뜻 한 길을 가는 한 겨레에 대한 우정과 긍지를 함께 하는 기쁨을 우리는 보지 않는가.
   겨레의 뿌리에 대한 존중, 긍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뿌리 설화도 드물 것이다. 이 뜻을 되살리고 오늘날에 모두의 사랑 속에 자랑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겨레의 뿌리에 대한 이와 같은 전설을 무시하고 다른 설화를 끌어들여 조상 전래의 뿌리 설화를 매몰시킬 이유가 있을까. 근일 그런 사람들도 있는 듯 들리니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