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세계] 금강경(金剛經)과 신앙

금강경의 세계

2009-11-13     월운 스님

  금강경은 가장 널리 경전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수지 독송하면 많은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한 예가 아닐까 한다.
  이제 그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독송하는 이의 신앙심을 돕고자 하는바 흔히 비슷한 말씀이 중복된 부분을 추려서 옛 어른들의 고증에 비추어 정리할까 한다.

    ① 부처님의 몸
『만일 32상으로 여래를 보려 한다면 전륜성왕이 곧 여래일 것이다.』 <법신비상분 제26>
이는 겉모양으로 부처님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니 법신(法身)의 존재를 밝히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았다거나 눕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위의적정분 제29>
  이는 법신의 정의를 밝히신 것이니 법신은 형상이 없을 뿐 아니라 동작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다.
『수보리야 여래는 구족상(具足相)에 의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지 말라.』 <무단무멸분 제27>
  이는 32상을 떠나서는 부처님이 없다는 말씀으로서 화신(化身)의 경지를 보여 주신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이는 형상에 집착되어서도 안 되고 형상을 떠난 곳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부처님은 또 이런 말씀이 계셨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몸모습[身相]으로 여래를 뵈올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 <여리실견분 제5>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성불하기를 희망하는 이가 법신을 추구의 대상으로 삼기를 권하신 대목이니 모름지기 아·인·중생·수자의 네 상(相)이 없어야 할 것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어떤 사람이 몸이 수미산 같다면 그 몸이 트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되/ 매우 크옵니다.』 <장엄정토분 제10>
  이는 부처님 자신이 성불하신 과정에서 겉모양을 여의셨었다는 뜻이다.
『네 뜻에 어떠하냐? 부처를 구족색신(具足色身 : 32상)으로 보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 <이색이상분 제 20>
  이는 참 법신에 의해 나타난 화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화신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이셨다.

     ② 부처님의 법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옛날 연등 부처님 처소에 있을 적에 얻은 법이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장엄정토분 제10>
  이는 부처님이 연등부처님께 얻은 법이 없다는 뜻이다. 얻은 법이 있다면 역시 집착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연등부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연등불에게 얻은 바가 없으므로 진정한 보살이었다 하신 뜻이다.

    ③ 부처님의 설법
『여래가 말한 법이 있느냐?/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할 만한 법이 없습니다.』 <무득무설분 제7>
  이는 화신부처님이 설법을 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하여 말씀하신 법이 없다는 뜻이요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옛날 연등부처님에게 얻은 법이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장엄정토분 제10>
  이는 보신불(報身佛)이 설법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하여 설법하시되 설법하신 자체가 없다는 뜻이요
『너는 생각하기를 「여래는 설법을 하리라 한다」하지 말라. 이런 생각은 하지 말지니라.』 <비설소설분 제21>
  이는 화신불도 보신불도 설하신바 법이 없다고 하는데 대하여 「그렇다면 현재 존속하는 법은 누구에 의해 설해진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하여 설한바 법 없이 설해진 법이 가장 참된 법이라 하신 뜻이다.

    ④ 부처님의 경전
『어디서나 이 경을 연설하되 4구게(句偈)만 하더라도 이 곳은 온갖 하늘이나 인간들이 부처님의 탑 묘와 같이 공양하리라.』 <존중정교분 제12>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수록한 법보이며 제2의 부처님이 또 그에 의해 탄생하게 되므로 경전은 곧 부처님이시라고 믿어야 한다는 뜻이요.
『이 경이 있으면 모든 세간과 하늘·인간·아수라들의 공양을 받으리니 여기가 곧 부처님이 계신 곳임을 알라.』 <지경공덕분 제15>
  이는 3신(身)이 동일체임을 가르치신 대목이니 이 경은 법신· 진여의 정체를 드러내셨는데 법신이 계시면 반드시 보신·화신이 공존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무리가 공경하고 돌면서 향과 꽃을 흩는다는 뜻이다.

    ⑤ 이 경의 공덕
  이렇게 거룩한 경전이므로 그를 수지하는 공덕 또한 지대하다.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도 어떤 사람이 이 경에서 4구게 하나를 외운 공덕만 못하니라.』 <여법수지분 제13>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그 동덕은 많다 하시니 실로 법신을 보는 눈을 뜨게 하는 공덕의 지대함이여.
『아침나절에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한나절에 다시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나절에 다시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더라도···.』 <지경공덕분 제15>
  하루에 한번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기도 어려운데 세 차례나 해도 4구게 외운 공덕을 따르지 못한다니 ··· 실로 이 경의 공덕이 지대하다 하겠다.

    ⑥ 이 경의 4구게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하고 ··· 이 경에서 4구게만 수지하고 남에게 말해 주면 ···』 <의법출생분 제8>
  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한 공덕과 4구게 한번 외운 공덕에서 4구게의 공덕이 수승하다는 뜻이요.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하고 ···4구게를 남에게 말해 주면 ···.』 <무위복승분 제11>
  한 세계가 아니라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할 경우와 4구게를 외운 경우의 비유
『이 경에서 4구게만 말하더라도 온갖 하늘·인간이 모두 공경하고 ···.』 <존중정교분 제12>
  4구게를 외운 공덕이 무량할 뿐 아니라 부처님의 출현과 꼭 같다는 뜻이요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하고 ··· 이 경에서 4구게만 외우고 남에게 설명하면 그 복이 더 수승하니라.』 <응화미진분 제32>
  아승지는 범어이니 무수하다는 뜻인데 무수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한 공덕과 4구게를 읽고 남에게 말해 준 공덕을 견주었는데 역시 수승하다 하셨다.

    ⑦ 이 공덕의 얻음[보리]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제가 알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법이 없습니다.』 <무득무설분 제7>
  석가모니께서 무엇인가의 과위를 얻었으리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요
『세존이시여 제가 알기에는 부처님이 연등부처님께 얻으신 바가 없나이다.』 <구경무아분 제17>
  현재의 석가여래는 얻은 바가 없지만 과거 세상 선혜상인 대엔 얻은 바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요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은 얻으신 바가 없으시기 때문이옵니까?/ 그러하니라.』 <무법가득분 제22>
  얻을 바는 따로 없다지만 닦아야 할 법과 얻어야 할 지위는 분명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니 얻은바 없는 것이 진실로 얻음이란 뜻이다.

      ⑧ 이 얻음의 실천
  이렇게 얻어진 법으로 중생을 제도해야 하거니와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였으되 실로 제도를 얻은 이가 없다.』 <대승정종분 제3>
  이는 내가 중생을 제도하리란 생각이 있으면 뒤바뀐 생각[顚倒]이란 뜻이요
『모든 중생을 제도하였으나 실제에는 제도된 이가 없다.』 <구경무아분 제17>
  이는 중생을 제도하는 그 주인공인 「나」의 존재가 있지 않는다 하는 의문에 대하여 「나」의 실체가 없다는 뜻이요
『보살도 그러하여 내가 중생을 제도하리라 한다면 보살이라 할 수 없다.』 <구경무아분 제17>
「나」가 없다면 누가 중생을 제도하리요 하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면 보살이 아니란 뜻이요
『실로 어떤 중생도 여래가 제도한 일이 없으니라.』 <화무소화분 제25>
  법계는 평등하여 중생을 제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집착을 끊기 위한 말씀이니 그런 생각 자체가 법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⑨ 이 실천의 방편
  이런 경지에 들어가는 방편은 어떠한가?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면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키오리까?』 <선현기청분 제2>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보살이 어떻게 머무르고 항복시키고 닦으리까 함이니 이것이 금강경의 전체의 방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어떻게 머무르고 닦고 항복시키리까 하는 뜻이요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면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항복시키리까?』 <구경무아분 제17>
  이 물음은 보살의 자세는 분명 「나」가 없어야 하는데 「나」가 없으면 어떻게 머무르고 닦고 항복시키리까 하는 뜻에서 물은 것이다.

  10. 이 방편의 이해
『어떤 중생이 이런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이가 있겠습니까?』 <정신희유분 제6>
  이는 형상에 집착되지 않는 보시의 수행을 믿을 이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중생이 오는 말세에 이 법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 <비설소설분 제21>
  이는 부처님의 법신과 보신과 화신의 설법이 같음도 다름도 아니란 말씀에 믿음을 낼 이가 없으리란 뜻이다.
  이상으로 소고를 맺어 금강경의 올바른 신앙이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