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문답] 고난과 양심

구도문답

2009-11-13     광덕 스님

    양심적인 사람의 고난

  ꃅ 제가 양심적인 사람도 고난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병고라든가 사업이 부진하다든가 등 고난을 받는데 참 딱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ꂼ 양심적인 사람이 일반적으로 병고도 많고 사업이 부실하다는 견해가 꼭 성립될지 의심스럽습니다. 반대로 비양심적인 사람이 건강하고 사업도 잘 된다는 말이 될텐데 역시 그 말이 성립되지 않을 바에는 귀하의 말씀도 확정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꼭 복 받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남이 부러울 만치 생활환경이 좋아져야 할텐데 이런 뜻에서 물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라 하지만 그 사람이 혹 결백벽이 있거나 자가가 한 일에 대해 회개심이 많고 자책감이 강하여 자기 처벌 의식이 강하게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비교적 그런 사람의 성격이 편협할 수도 있습니다.
  대개 인생 생활에 있어서의 고난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가 현재에 지은 원인도 있고 전생에 지은 업의 인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곧고 바르다는 생각이 현실의 자신을 돌이켜보아 곧고 바르지 못한 것을 대할 때 격한 반격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 처벌의식의 발단이지요.
  그러한 사람에 있어서 그 몸에 여러 가지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생활에 약간 어려움이 있다 하여 그것이 나쁜 것이고 고통이 적다고 하여 그것이 꼭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평화스러운 일이라든가 뜻대로 잘 된다는 일은 말하자면 과거에 지은 원인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과거에 지은 원인이 결과로 나타나고 있음으로써 그 원인이 소멸하는 과정입니다.
  인이 사라지면 결과가 없어집니다. 바꾸어 말하면 고통이 나타나면 원인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옥에 빠질 죄도 지옥에 빠짐으로써 그 죄가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다면 오늘날의 불행한 일들은 과거에 지은 인이 사라지는 과정이며 새로운 생명의 성장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당해서 굴하지 않고 밝고 참되고 진실한 노력을 계속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진실로 고난이 사람을 키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생은 십년, 2십년이나 백년의 인생이 아닙니다.
  무한의 시간을 가지고 자기완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것을 안다면 육체적인 고난에 흔들릴 것 없이 오히려 고난이 나타나면 잠복되어 있는 고난이 사라짐을 기뻐하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일으켜서 기뻐하며 성실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어떻게 도울까

  ꃅ 주변 동료들에게서 놀림 받고 외롭게 지내는 학생이 있는데 제가 도우려 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ꂼ 진정으로 그 사람의 행복을 기원해 주십시오. 염불하며 그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고 그 사람의 장점을 긍정하며 그 사람을 칭찬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그가 알든 모르든 간에 하신다면 서로의 사이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됩니다. *

    노사는 대립인가

  ꃅ 근로자와 사용주와의 사이는 언제나 대립입니까?
  ꂼ 사용주와 노무자가 함께 기업 안에 있는 점을 생각하십시오. 기업이 망하면 사용주도 노무자도 없습니다. 노무자가 없으면 생산이 될 수 없고 경영자나 시설이 없으면 또한 근로자도 일할 터전이 없게 됩니다. 근래 신문에서 보아온 부산의 동명 목재공장을 보십시오. 기업이 망하자 5천여 근로자가 일시에 실직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안 망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기업인으로서 기업을 망해가면서 치부한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노사는 함께 협력하여 기업을 살리고 기업의 생산성을 통하여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며 국력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대립이란 없고 서로의 직무의 분담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한 나라에도 다수의 계층이 서로 대립한다면 그 나라는 성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 한 겨레라는 믿음과 신뢰와 협동이 그 나라를 부강케 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처럼 한 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로자나 사용주나 모두가 국가와 중생에 이바지하는 사업에 관여하고 있고 사용주나 근로자가 다 함께 인생의 높은 가치를 직장을 통해서 발휘하고 있으며 번영하는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지와 상호존중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한 협조와 근로 조건의 개선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

    영혼이 있는가

  ꃅ 불교에서는 영혼을 인정합니까? 영혼과 불성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ꂼ 중생이 있는 것만큼 영혼은 있습니다. 중생이 인연의 결함이며 그 실(實)이 없는 것처럼 영혼도 또한 실(實)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란 중생의 미혹한 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미혹하면 영혼이 육도를 윤회하게 됩니다. 깨달으면 각성이 회복되므로 거기에 대하여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각성이 바로 불성입니다. 불성을 미혹하면 중생이 되고 중생의 미혹상태를 영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광 10월호의 「불교의 영혼관」과 11월호의 「여래장과 불성」을 읽어 보시면 이해되리라고 생각됩니다. *

    음력을 써야 하나

  ꃅ 불교에서는 기념행사도 그렇고 생일이나 제사도 음력으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왜 양력이 정확한데도 음력을 쓰는지 이유라도 있습니까
  ꂼ 부처님 오신 날을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성도일을 음력 12월 28일 부처님 출가일을 음력 2월 8일 우란분재일은 음력 7월 15일 생각해보면 모두가 음력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불교에서 행하고 있는 기념행사가 음력인데는 과거부터의 내력이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양력으로 4월 초파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긴 관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 뿐 정확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생일이나 제사일도 구태여 음력을 찾아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력이라도 좋고 음력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의 일상생활이 양력으로 행하는 한 되도록 생일이나 제사일이 양력인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제사일 경우 망자가 음력으로 생활하고 음력 생일 음력 제사를 지내온 사람이라면 되도록 그 생활 습관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날에 참배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집에서 예불할 때

  ꃅ 가정에서 예불할 때 향 초 등을 꼭 갖추어야 하는 지요?
  ꂼ 예불은 여러 뜻이 있으나 무엇보다도 자기를 중심한 온갖 마음을 다 비우고 부처님의 크신 법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 표시로서 합장하고 몸을 굽히고 또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불에 반드시 향촉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는 없습니다.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아도 됩니다. 대개 우리 불자들이 가정에서 예불할 때에 경을 모시거나 부처님 사진을 모시고 그 앞에 향촉을 준비하는 것이 일상입니다만 예불의 본 뜻을 아신다면 꼭 그것에 구애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살풀이 굿 하여야 하나

  ꃅ 어떤 사람이 저에게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살기가 있어서 일이 안 된다고 살풀이 굿을 하라고 하는데 계 받은 불자로서 저는 응하기가 곤란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ꂼ 살풀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로는 악념이 담긴 악연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살기가 있다면 마땅히 살을 풀어야지요. 악한 인연이나 악한 망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다 풀어야 사업도 순탄하며 건강해집니다. 살풀이 방법은 굿을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염불하고 독경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감사하며 일심으로 염불 독송할 때 모든 업장은 자취 없이 사라지거늘 살기가 있겠습니까. 부처님 말씀 믿으시고 일심염불 기도하시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