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터의 부처님 전법도량

2009-11-10     관리자

                                   ㅡ서울 강남 포교원 성열스님ㅡ

  장터의 부루나 후에

 부처님 제자 중에 설법을 제일 잘 하는 부루나(pur-na) 존자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제자가 먼나라로 불법을 전하러 떠나고자 부처님께 허락 받으면서 나눈 대화 내용이 있다.

『부루나여, 그 나라 백성은 성질이 거칠고 미혹하여, 그들이 너를 꾸짓고 모욕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부처님이시여, 그때에 저는「이나라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돌을 던지지는 않으리라」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만일 주먹으로 때리고 돌을 던진다면?』
『부처님, 그때는 「이 나라 사람은 어질고 착해서 칼로 나를 해치지는 않으리라」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로 해친다면 어찌하겠느냐?』
『부처님이시여, 저는 그때에는 「수행자는 부처의 정법을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육신을 버리기를 원하는데, 이나라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서 나로 하여금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커다란 공덕을 짓게 하는 구나」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착하고 착하다. 너는 수행을 잘하여 능히 인욕과 자제(自制)를 얻었으니 미혹하고 거친 백성들을 제도하며 정법을 만나게 하여라.』
 이는 부처님의 정법을 펴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뒤따르더라도 어려움을 참고서 꾸준히 전법에 임하라는 내용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자(佛子)들의 가슴에 뜨겁게 와 닿는 교훈이라 하겠다.

 시장 상가 가까이 전법 도량을 마련하고……
 
 서울 서초동, 지하철 2, 3 호선이 연결되는 교대역에 내리면 서초종합상가가 있다. 상가란 각종 생활용품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인데, 이 건물 3 층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장소가 있다니 왠지 낯설기만 하다. 탐방자의 느낌이 이러한데 일반인의 마음은 어떨까.

 상가의 층계를 올라 강남 포교원이라는 간판을 대하기까지 그저 작은 사무실이려니 하는 생각은 방문객의 좁은 소견이었음을 부끄럽게 하였다. 법당을 비롯하여 생활관, 교육관, 연구실 사무실 등 약 100평 규모의 포교 시설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마침 법사 스님은 출타 중이라 주인 없는 원내를 휘집고 조사( ? )를 할 수 있었다. 몇몇 청년들이 모여 칠판을 놓고 불교 교리 연구에 심취하여 문을 빠끔히 열어 보아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침입자가 될까 보아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법사도 없는데 열성이 대단했다. 상가에 이렇게 큰 설법장을 마련할 수 있음은, 저토록 스스로 열심히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 서려있는 저력과 인품 때문이다.

  적극적인 현장 포교

 얼마후, 고속터미날 상가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주인공이 우람한 체구에서 포교원이 들석거릴듯 뿜어대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바삐 들어서는 모습에서 힘이 솟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열(聖悅) 스님, 그는 1982년 9월 지금의 강남 포교원을 개설하면서 이 지역은 물론 터미날 상가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불심(佛심)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발달은 생활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부처님 법을 일깨워 줄 만큼 바쁜 사회이다.

『포교원에서 몇 년 근무하다 보니 대규모의 법회는 주관할 수 있었지만, 바쁜 생활에 쫓겨 불법을 배우고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규모의 법회를 개설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기존 사찰을 찾는 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도 중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바쁜 일과에서 사찰을 자주 찾기 힘든 분들을 직접 찾아 가서 불법을 전하는 적극적인 포교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터를 찾기로 하고 몇몇 뜻있는 분들의 후원으로 나섰습니다…』

 사실 과거 우리 나라 포교 실상은 기존 사찰을 찾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법회가 주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60년대 말 이후 포교의 방향과 방법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잇다. 최근 수년간 생활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능동적으로 전법 의지를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과거 포교 현장에 재가 불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요즈음은 출가자의 납의를 걷어 부치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제1차 수계식을 마치고
 강남 포교원 원장 성열스님은 자신의 사후(死後) 육신을 관리할 사재(私財)를 털어 포교원을 마련했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출가자는 사실 자신 혼자다. 부루나 존자도 말했듯이 「… 정법을 구하기 위하여는 기꺼이 육신을 버린다 …」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출가하여 삭발염의 한 것인데, 사후 누구에게 시신을 위탁하여 신세를 지려 하겠는가, 그래서 옛날부터 불가에서는 자신의 장례비는 마련하고 갈길을 가는 스님들이 많이 있었다.

 스님은 이러한 준비금으로 중생구원의 도량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고 스님은 세속에서 인연을 맺은 부모, 일문권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님이 되라』는 아버님의 체념섞인 당부의 말씀이 천금같이 느껴져 지금까지 어깨를 무겁게 한다는 성열스님은 여전히 호탕하다.

  진정한 불국토 건설

 법회의 운영을 알아보고 가만히 속으로 계산해 보니 일주일 중 월요일만 쉬는 날이다. 그러나 여기에 각종 재일의 신도 헌공법회까지 추가하면 그야말로 쉬는 날이 없는 셈이다.

 어린이 법회서부터 초, 중, 고, 대학생 법회, 노인법회, 상인을 중심한 터미날 법회 등등 각각 지식 수준에 맞는 법회 교안 준비하기에도 분주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직접 타이프를 두드린다. 얼마 전까지 외부 법회도 참여를 하였으나 너무 바빠 안(포교원)에 일이 소홀하여지기 때문에 그만 두었단다. 사무실 직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나마 많은 법회를 무리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어린이에게 동양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한자를 가르치고 시험도 치루어 상품도 주어 어린이에게 한자 공부의 재미를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연비모습
『그래야 이놈들이 아 다음 성장하면 부처님 경전이라도 볼 수 있는 기틀이 됩니다. 우리 나라 교육 제도가 영어를 모른면 후진국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자 공부는 하지 않아 동양의 사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경전을 어렵다고만 하고 보지를 않으니 말로만 들은 불교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스님의 주도면밀한 포교의 한 방편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성열스님은 지난 4 년여 자신이 계획한대로 말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불교의 잘못된 한 면을 보아 온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귀감이 될 일이다. 이러한 성열스님같은 부루나의 후예가 많이 나올 때 부처님의 정법은 이 땅에 꽃피고 구호에만 지나지 않는 불국토 건설은 자연히 이룩되리라고 확신한다. 오늘날 승려는 많아도 법사의 빈곤은 무슨 현상일까. 탐방자 스스로 자문하면서 포교원 문을 나서니 성열스님이야말로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현장포교의 귀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