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님 寒巖(한암)스님 <5>

老師의 雲水시절

2009-11-06     관리자

  13 신통기도

 우리 조실스님은 수행인으로서 자기 분을 지키지 않고 넘는 행을 하는 것을 크게 못마땅히 여기신 듯하다. 내가 선방에서 나와 경을 보고 나서 다시 포교도 하다가 한번은 이런 생각이 났다. 이렇게「서둘러 힘들여 다닐 것이 아니라 신통력을 갖추어서 포교하면 사뭇 날 것이 아닌가.」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오대산에 뛰어 올라갔다. 그때 스님께서는 상원에 계셨다. 내가,『제가 신통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자비로써 거두어 주십시오.』하고 간곡히 말씀 드렸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냉혹하셨다. 아주 일고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단번에『안된다』고 잘라 말하신다. 두 번 세 번 청했지만 다른 말이 없으시다.『너는 안된다. 미쳐서 광기가 충천했으니까 너는 나가서 광기가 다 할 때까지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도저히 말붙일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마침 거기에 오 재명이라는 스님이 계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이럴 것이 아니라 하루 더 쉬면서 또 말씀드려 보시오.』

 그리고서 조실스님께 가서 말씀 드리기를『관수좌가 이렇게 와서 신통을 얻겠다고 마음을 냈는데 스님께서 너그러이 받아주시도록 하시지요.』하고 간곡히 청하엿다. 그렇지만 스님께선 여전히『안된다』그 한 마디 뿐이었다. 결국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아침 일찌기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갔다. 신통을 구하고자 하는 생각은 이것으로 끝장이다.

  14 그리워라 우리 스님

 비록 내가 신통을 얻는 뜻은 못 이루었지만 내가 다시 마음 먹고 스님의 선상(禪床) 밑에 있었던들 나는 달랐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스님께서 입적하실 때까지만 스님의 방망이 밑에서 지났더라면 나도 불법의 한 모퉁이는 당당히 맡을만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내가 불교의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견디었으면 크게 깨쳐 자리(自利)를 끝내고 대중에 이익을 줄 수 있었는데 인연이 좀박해서 가볍게 통하여 허송세월을 하였다.

 저 때에 중대(中臺)에서 스님 모시고 지내면서 금강경을 배우고 한 생각이 동하니 그때의 시원하고 상쾌하기는 정말 날을 것 같아 어찌 이런 숭고한 도리를 썩힐까보냐,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자그마한 생각에서 날 뛴 것이 그릇이 깨지는 시작이 된 것이다.

 생각할수록 탄식할 뿐이다. 내가 우리 스님 입적때까지만 모시고 지냈으면 어째든 현세에서는 선의 왕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 꼴로 용두사미가 되었다. 이제는 후회 막급이다. 금생은 이렇게 노력하다가 몸을 바꾸기로 하고 뜻만은 변치 않아 결코 큰 뜻을 이룰 것을 거듭 생각한다.
내생에 몸을 받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좀 지연될 뿐일 터이니까…… 나는 금생을 허술하게 살기는 하였지만 미래에 이 법의 왕이 될 종자는 분명히 심었다고 확신한다.

 용성 조실스님은 대처승 때문에 불법이 망한다고 많은 걱정을 하셨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침내는 독립된 선방을 만들어서 불법정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여야겠다고 극력 노력하셨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선회(禪會)를 열고, 서울이고 산중이고 총림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한암 조실스님은 일체 그런 것에 관심을 표시하지 않으셨다. 오직 당신 공부만을 알뜰하게 지키시는 것으로 보였다. 남의 잘 잘못에 대하여는 조금도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다만 잘한 것은 간혹 말씀하셨다. 제산(濟山)스님이 장하다, 만공(滿空)스님이 호걸이고 법이 높은 훌륭한 스님이다, 용성스님이 경 · 율 · 론 三장에는 당대에 박통제일이다, 혜월스님이 혜(慧)가 밝기는 비수 같다 등등 하는 말이었다. 그 당시 공부인으로 꼽히던 스님 중 수월(水月) 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은 얼굴이 검고 초췌하고 몸이 작아 볼 품이 없었지만 자비와 인욕은 당할이 없으리만치 장한 것으로 통해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노장님은 일상에 무심하고 내가 혹 방정맞고 불경스러운 말을 여러 번 드려도 거목(巨木)처럼, 호수처럼 잠잠히 계셨다. 일상이 정말 중(僧) 그대로 정결하셨다. 그밖에 방에 계시어선 항상 오똑하니 앉아 계시어 일상시에 일체 생각이 끊어진 삼매로 계신 듯하였다. 실지 분별심이 끊인 듯한 일들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