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 129호

2009-10-21     관리자

*얼마 전까지 벚나무가지에 가득 맻혔??빨간 벚열매도 이젠 드물어졌다. 다람쥐 가족들이 오르락 내리락 샅샅이 잡수셔버렸다. 투명하리만치 밝게 익어 가던 살구도 앵두도 이제는 철이 갔고‥ 그러나 역시 계절은 열매를 익혀가는 계절이다.

결실의 가을을 향하여 배는 파란 볼을 영롱하게 빛내면서 하루하루 달라진다. 역시 천지는 결실을 향하여 왕성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여름이 우리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더위에 지치고 물가를 찾으며 보내는 시절이 아니다. 진리의 광명을 찾고 삶의 보람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음질 치는 여름안거의 한복판이다.

어쨌든 우리들은 잠시도 무의미한 순간은 없다. 누구나가 현세라는 인생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덧없이 방황하며 혹은 아우성치며 살아가는듯 하여도 실로는 그렇지 않다. 그 모든 생명이 깊은 차원에서는 부처님의 진리광명 위에 있는 것이다. 자비하신 부처님의 끊임없는 은혜를 공급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부처님이 완전하심과 같이 진리가 원만함과 같이 완전과 원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오늘이라는 인생 페이지가 어지러워졌다 하더라도 인생은 새로운 장, 새로운 페이지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페이지를 생활로써 펼쳐 가면서 생명 깊이속의 끝없는 지혜, 끝없는 자비를 퍼올려 간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은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설사 금생이라는 제1부가 막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제2부를 향한 준비이였고 제2부에는 새로운 희망의 천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영원히 부처님과 함께 하며 어느때나 자비로우신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성장 밖에는 없다. 성숙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광실자가 신세지고 있는 보현난야를 오르내리면서 눈에 익은, 여물어 가는 배가 어쩌면 우리인생을 말해 주는것 같아서 한자 적는 것이다.

*저때에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잡아함경에 보이는 한 토막이다. 깊은 밤에 한 천신이 찬란한 광명으로 숲을 비추면서 찾아와 부처님께 예배하고 말씀드렸다.“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여서 폭류(暴流)를 건느셨읍니까?” “나는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서 저 폭류를 건넜느니라.”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해서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서 폭류를 건느셨습니까?” “무엇인가에 의지하면 침몰하게 되고 무엇인가 구하게 되면 물결에 말려든다. 그래서 여래는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서 폭류를 건넜느니라......”
‘폭류’란 글자 그대로 거치른 물결이니 사람을 떠내려 보내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폭류를 건넜다는 것은 죽음의 강을 건넜다는 것이니 즉 번뇌를 끊었다는 말이 된다.

범부들은 무지와 욕망이 세차게 흐르는 거치른 물결로 산다. 다시 말하면 폭류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기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쉴사이 없이 고통을 가져다 주는 폭류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폭류를 건너니 거기에는 고통이 없고 죽음이 없다. 죽음이 없는 평화의 언덕에 이른 것이다.

불법은 죽음이 없는 평화, 고통이 없는 안녕, 변멸이 없는 영원 그 모두가 아닌가. 부처님은 거기 이르셨고 우리도 그 길을 간다. 이 뜨거운 여름철 정진이 폭류를 건너는 거룩한 작업이 아니랴. 우리 모두 환희와 용기를 내자. 그리고 모두 함께 폭류를 건너자. 폭류를 건너는 분을 돕고 폭류 속을 헤매는 형제를 돕자. 부처님은 어떻게 폭류를 건넜다고 하셨던가?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이 아무것도 구함이 없이 폭류를 건너셨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새겨 보자. “의지하면 침몰하고 구하면 말려든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하자.

실로 부처님은 너무나 명백하게 이 길을 가르치셨다. 형제여 반야바라밀을 깊이 배우자. 모두 폭류를 건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