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 없는 효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효

2007-06-04     관리자
 

노인들이 늘상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얼른 죽어야지 하는 말이다. 얼마나 살기 괴로우면 그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젊은 사람들로서는 짐작도 못할 일이다.

  생노병사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라고 했지만 늙고 몸도 마음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괴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하나하나를 남에게 의존하게 되니 숨 쉬는 것조차 괴로울 것이다.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처럼 괴로운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 부모에 대한 의존은 너무 커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부터 부모의 몸을 빌려 나오게 되고 제 발로 설 때까지 그 의존은 계속 된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에 대한 의존의 전부는 아니다.

  부모의 마음 걱정은 성인이 된 뒤에도 혼인을 시켜야 할 일을 마친 것 같고 혼인을 시킨 뒤에도 죽을 때까지 밤을 뒤척이게 하는 것이다.

  곤충 중에 숫사마귀는 교미가 끝난 뒤 2세의 영양을 위해 암사마귀에게 스스로 잡아먹힌다고 하지만 우리 사람의 경우도 결코 그에 못지않은 살신성인을 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부모들의 산신과는 달리 오늘날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태도는 한심하다고 할 만하다.

  얼마 전 입학시험 면접 과정에서 어머님이나 아버님에 대해 기억나는 일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밤에 학교가 끝나고 돌아올 때 데리러 왔던 일을 들었고 일부 학생은 그나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어찌 부모님과 스무 해를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 어머니 상이 그것뿐이더란 말인가.

  요즘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많다고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제주도나 어디 해외여행을 같이 갔다가 버리고 혼자 돌아온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부모는 경찰서에서 자기 집이 어딘지 전화번호가 어딘지를 알고 있어도 자식을 생각해서 정신이상자처럼 행동해 결국 무의탁 노인으로 양로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버리는 자식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이 너무 처절하게 대조되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부모를 버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과 한집에 사는 것을 꺼리고 장남에게는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는 새로운 결혼조건이 붙어다니며 형제 사이에 누가 부모를 모시느냐로 갈등을 빚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이 시대가 마음으로는 벌써 부모를 버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부모없이 나온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는 살신으로 부처님 공경하듯이 자식을 섬기는데 자식들은 그렇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분별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삶의 슬픔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이 슬픈 것을 알 때 연민이 생기고 연민을 알 때 사랑이 생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님의 법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주 전체가 하나의 경전이고 이 세상은 커다란 도장과 같다고 할 것이다.

  어느 스님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 도장인가. 모든 것이 부처님 법 아닌 것이 없네’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다.

  부처님 모시듯이, 예수님 모시듯이 부모님을 공경할 것이다. 그리고 내 몸 아끼듯이 부모님을 섬길 것이다.

  우주는 하나고 나와 남은 분별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가족관계를 통해 우리가 남이 아님을 깨닫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인간은 남의 몸을 빌어 태어나게 하고 오랜 기간 의존하게 함으로써 나와 부모와 그리고 형제가 하나이며 나아가 나와 이웃과 국가와 세계와 우주가 하나임을 깨우치게 하려함은 아닌가.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효야말로 도의 시발점이요, 믿음의 끝이라고 할 것이다.


유재천:문학박사, 문학평론가. 현재 경상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으며 김수용, 이상, 김소월 등에 관한 논문과 <예술 텍스트의 구조> <시의 기호학>등 번역서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