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없는 피리를 불다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도시유목민의 마음을 풀어주는 서울 삼각산 삼천사(三千寺)

2009-10-12     관리자

▲ 보물 제657호인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노마드의. 삶을. 위하여.

제가 만약 도산지옥 향하올지면 칼산 절로 꺾어지며
제가 만약 화탕지옥 향하올지면 화탕 절로 소멸되며
제가 만약 다른지옥 향하올지면 지옥 절로 없어지며
제가 만약 아귀도를 향하올지면 아귀 절로 배부르며
제가 만약 수라도를 향하올지면 악한 마음 사라지며
제가 만약 축생도를 향하올지면 슬기 절로 얻어지네

▲ 마음의 노마드가 가슴을 칠 땐 삼천사 계곡에 발을 담가보자.

『천수경』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이 마음의 긴 울림으로 출렁일 때가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서도 아니고, 하루하루의 생이 따분하고 심난해서도 아니다. 뭔가 모를 외로움이 오목가슴을 치고 올라올 때, 그리하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어떤 곳으로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이 구절은 내 마음 여행의 깊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노마드(nomad, 유목민)다. 자크 아탈리가 『21세기 사전』에서 천명했던 것처럼 인간은 원형질적으로 유목민이자 유랑인이다. 보라. 부처님도 태어날 때 유랑의 길 위에서 태어났으며, 깨달음을 얻을 때도 유랑의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열반할 때도 유랑의 길 위에서 열반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마음의 노마드가 가슴을 칠 때 서울에 사는 도시유목민들이 쉽게 찾아가면 좋은 곳이 있다. 삼각산 삼천사다.
구파발에서 은평구 기자촌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꽃뱀처럼 길의 몸을 꼬고 있는 곳이 삼천사다. 삼천사에서 가장 먼저 맞아주는 것은 일주문 양쪽 문에 그려진 금강역사(金剛力士)다. 왼쪽 역사는 퉁방울눈을 부릅뜬 채 왼손에 칼을 들고 입을 앙다물고 있다. 오른쪽 역사는 왼손에 수미산을 받쳐 들고 무어라고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 있다. 세상에 찌들고 세파에 찢어진 몸과 마음을 모두 벗어놓지 않으면 삼각산 산문에 절대로 들 수 없다는 일갈로 들린다.

행복은. 작고. 하찮은. 것에. 있다.
삼천사에 가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과 걸물이 있다. 걸작은 대웅보전 안에 있다. 대웅보전은 생김새부터가 좀 수상하게 생겼다. 앞쪽에서 보면 분명 단층인데 뒤쪽에서 보면 2층이다. 그 비밀은 대웅보전 내부에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한 가운데 모셔져있는 있는 것까지는 여느 절과 똑같다. 그런데 그 뒤편에 오백나한을 모시기 위해 단층구조의 내부 뒤쪽을 2층 구조로 만든 것이다.

▲ 부처님의 사리 3과가 봉안된 삼천사 종형사리탑.

▲ 천태각의 나반존자들.











목각으로 새긴 후불탱화도 긴 눈길을 끌지만 더 재미있고 길게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 오백나한들이다. 제 멋대로 폼과 모양을 잡고 있는 오백나한들이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이재순 장인이 빚은 그 오백나한들의 몸짓과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쏠쏠한 재미가 있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나한, 그 옆에서 파안대소를 하고 있는 나한, 두 팔로 만세를 부르며 환호작약하고 있는 나한, 팔목이 없는 팔을 쳐들고도 편안한 표정으로 지긋이 웃고 있는 나한, 잔뜩 취한 얼굴로 술병을 들고 있는 나한, 합장공경하고 있는 나한, 왼손에 나무지팡이를 쥐고 무엇인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나한, 약합을 들고 있는 나한, 발을 괴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한, 하늘을 향해 왼손 주먹을 불끈 쥔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나한, 아이들이 배에 올라타서 귀때기를 잡아당겨도 그저 태평하게 웃고 있는 나한, 꺼이꺼이 통곡하는 나한, 회초리를 들고 있는 나한, 무슨 고뇌가 그리 깊은지 고개를 푹 꺾고 있는 나한, 삿갓을 쓰고 있는 나한, 소구를 치고 있는 나한, 무서운 개를 왼쪽에 앉히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한 등등 오백나한의 오백 가지 표정과 몸짓은 속계(俗界)의 표정과 몸짓 그대로다.
그 오백의 삶의 모습은 우리네 삶의 삽화다. 한없이 즐겁고 기쁘고 힘차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와 아픔을 다 짊어진 채 고개를 푹 꺾고 죽고 싶은 생각에 깊이 빠져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내 조증과 울증의 삽화다. 삼천사 오백나한을 빚은 이재순 장인은 그렇게 조증과 울증의 삽화가 영화필름처럼 돌아가는 우리네 삶의 영욕을 오백나한의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 삼천사 걸물인 동출 스님과 그의 골방.

이제 삼천사 걸물을 만날 차례다. 삼천사 걸물은 동출 스님이다. 동출 스님은 현재 8년째 산령각 밑쪽 조그만 골방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그러나 삼천사 어느 스님보다도 삼천사를 사랑하고, 삼천사를 편안한 절로 풀어준다. 아무 때고 마음의 노마드가 작동하면 삼천사에 찾아가 경내를 돌아보라. 그러면 어디선가 느닷없이 돼지목통 같은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듣는다. 그 주인공이 바로 동출 스님이다. 그 걸물을 잘 꼬시면 좀처럼 사람을 들이지 않는 그의 골방 구경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진귀한 보이차 대접을 따뜻이 받을 수 있다.
동출 스님은 보이차 마니아다. 이유가 있다. 신장이 약한 탓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동출 스님을 걸물이게 하는 것은 그의 골방에 있는 조각가 오채현 씨의 아미타 돌 조각상과 그 뒷 벽면에 붙어 있는 일장 스님의 병풍그림이다. 오른 손바닥을 앞으로 올려 펼친 채 왼쪽으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여린 미소를 짓고 있는 아미타 상은 수행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동출 스님처럼 한없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삶의 질감을 준다. 그리고 일장 스님의 그림에선 무학(無學)의 향기가 난다. 두 사람의 도반이 사이좋게 차를 끓이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은 유학(有學)의 사바세상이 아니라 더 이상 알 것이 없는, 아니 알 필요가 없는 무학의 아라한 세상인 것이다.
노마드의 마음으로 애초에 내가 삼천사를 찾은 것은 보물인 마애여래입상과 종형사리탑, 삼천사의 자랑인 산령각, 천태각, 수련연못의 통돌거북이, 지장보살입상, 5층석탑 등에 나의 조울증 삽화를 씻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작고 하찮고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귀하고 높고 아름다운 삼천사의 걸작과 걸물에게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조증과 울증의 삽화를 맑고 가볍게 씻어주었다. 역시 진짜 삶의 행복은 크고 거대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하찮고 낮고 쓸쓸한 것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유목의 길이었다. 불현듯 『벽암록』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쉬고 또 쉬면 철목에 꽃이 핀다(休去歇去 鐵木開花).”

▲ 삼천사에서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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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_ 1986년 서울신문에 시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수렵도』, 『퍽 환한 하늘』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과 동화책으로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발가락이 꼬물꼬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