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절과 작은 학교의 아름다운 공생

금강 스님이 들려주는 절집 이야기

2009-10-12     관리자
만물이 주인공 되는 음악회

지난해 봄에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스님, 제가 매년 5월 17일 날 연주를 하는데 올해는 미황사 작은 마당에서 하면 안 될까요?”
“아, 그래요? 정말 좋은 일입니다. 소나무로 지어진 자하루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람들은 대웅전 계단이나 응진당 처마 밑에서 저녁노을을 보며 은은하게 경내를 감싸고도는 피아노 선율을 듣는다면 참 멋진 풍경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더구나 노영심 씨라면 최고의 연주를 해주리라 믿었기에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가지 욕심을 내었다. 연주회의 주인공은 언제나 연주자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에서 만큼은 그 통념을 바꾸고 싶었다. 묵묵한 달마산이나 단아한 대웅전, 나무와 새들 그리고 한가로이 도량을 거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연주자는 멋진 풍경 속에서 선율을 들려주는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그 공간에 함께 하는 모든 만물이 다 주인공으로 조화를 이루는 무대를 꿈꾸었던 것이다.
상상으로는 멋진 풍경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퍼포먼스일 수도 있는 계획이었다. 내 뜻을 전해들은 노영심 씨가 전적으로 동의해주어 우리는 예정대로 연주회를 열었고 당시 공연을 가감 없이 녹음하여 음반제작까지 할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7년 전에 절 아랫마을 작은 학교인 서정분교가 학생 수 5명으로 폐교 위기를 맞았다. 학생 수 따라 책걸상도 5개뿐인, 한 교실에서 2개 학년이 동시에 복식수업을 하는 그런 학교였다. 마음만 먹으면 선생님의 작은 차에 전교생이 모두 타고 야외수업을 편리하게 갈 수 있는 초미니 학교였다.
미황사를 지키는 수행자인 내가 폐교를 막아보자고 나선 건 학교가 없어지면 인근 동네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마을이 되기 십상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과 교육청을 설득하였다. 작은 학교지만 40여 년간 열심히 가꾸고 노력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였던 곳이라는 점,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작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경험을 쌓게 해 평생의 자산이 되어준다는 점을 들어 함께 하자고 추동하였다.
몇몇 학부모들과 방과 후 학습을 알차게 꾸려 인근의 학생들을 유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음악, 미술, 생태체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부모도 참여하고, 지역 일꾼들도 동참시켰다. 뒷짐 지고 있을 수 없어 나도 탁본과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멀리 읍내에서 40분 넘게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전학생은 점점 많아져 통학버스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큰스님들의 글씨와 지인들의 그림, 판화들을 몽땅 내 놓았다. 학부모들도 집에 걸어놓은 그림들을 한 점씩 내어 놓으니 큰 전시회가 되어 일단의 수입금으로 폐차 직전의 버스를 한 대 구입하여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다. 그러는 사이 5명의 작은 학교는 60명 남짓한 제법 규모 있는 학교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그 통학버스가 늘 위험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어린 생명들을 태우고 다니는 차이니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데 낡은 버스는 언제나 위태위태했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었다.
새 차를 사려면 기천만원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미황사에서 만든 노영심 씨 연주 음반 3천 장을 종자돈 삼아 애써 본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중고차를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없이 노영심 씨가 음반 3천 장을 내주었기에 계획한 일이었다.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와보다는 CD를 사라고 화주를 하였고, 노영심 씨도 개인 연주회 때마다 취지를 설명하며 음반을 팔아 목돈을 보내왔다. 학부모들 역시 팔을 걷어 부치고 행사장마다 찾아다니며 음반을 팔았음은 물론이다.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으니 금방 2,500만원이라는 거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돈으로 좋은 중고 버스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차를 사야할 지도 막막했던 게 사실이다.
마침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강진 백련사 여연 스님께 차(茶)를 공부하는 금호고속의 사장님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염치 불구하고 그분께 부탁해 보기로 하였다.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차 한 대 달라고 뻔뻔스런 부탁을 했다. 아마 내 개인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 차나 다름없는 버스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쏟아놓는 해맑음
새 통학버스가 생긴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공모를 통해 ‘서정 구름이’ 라는 차 이름을 짓고, 전교생은 등굣길에 만나는 사물을 그려 차를 도색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서울의 디자인하는 친구에게 건네주며 앞으로 15년은 더 쓸 통학버스이니 잘 골라서 최고의 디자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정분교에 통학버스가 한 대 오기까지 나는 참으로 여기저기 많은 빚을 졌다. 두고두고 갚아야 할 빚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여름방학 때문에 아이들이 새 차를 타보지 못했지만 녀석들이 행복에 겨워 할 일을 생각하면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내가 어린 친구들에게 그래도 무엇인가 해준 것이 있구나 싶어 기쁘다.
서정분교 아이들에게 미황사는 놀이터이고, 생태학습장이고, 학예발표회장이다. 아이들은 미황사가 있어 든든하고, 미황사는 아이들이 쏟아놓는 해맑음 덕분에 오늘을 산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공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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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 _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인사에서 행자생활과 강원생활을 하였으며, 중앙승가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백양사에서 서옹 큰스님의 참사람운동과 무차선회를 진행했다. 1994년 종단개혁 때는 범종단개혁추진회 공동대표를 맡아 일을 했다. 2000년부터 미황사 주지 소임을 맡아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수행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중사찰의 모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