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현현된 불성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서양화가 한상린

2009-10-07     관리자

禪房日記
바쁜 걸음으로 길을 가다가도 문득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넉넉한 웃음으로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충무로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한상린 기획실이 있다. 서양화 기법으로 불교의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한상린(44세) 씨는 이른 새벽 6시면 집에서 나와 이 기획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편집하며 하루일과를 보내면서 사람들도 만난다.

 오면서 가면서 들러도 늘 편안하고 마냥 좋은 사람이다. 게다가 세포 하나하나에 까지도 불심이 깃든 불자라서인지 전혀 남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특히 어린이 불교아동도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이 함박만큼 벙그러지면서 몇 시간이고 그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진정 그가 하고싶은 일은 좋은 불교아동도서를 만들어 손수레에 가득 싣고 다니면서 만나는 어린이들이게 그 책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획실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1986년엔 한국불교동화전집 12권을 저술했고, 또 1988년엔 대원 어린이그림동집 10권을 기획, 편집하기도 했다.

 아버지(한길로 스님)의 영향으로 어린시절 불교에 젖어 살다시피 했지만 청소년기엔 혹심한 방황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처님 앞에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그림 그리는 일을 통해 불교를 전해보자고 ….

 그 동안 전래되어온 우리나라 불교동화를 보며 밤을 세워 그림을 그렸다. 그저 어린이들에게 불교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그것이 보련각에서 펴낸 한국불교동화전집 12권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작고하신 대원 장상문 회장의 권유로 대원 어린이그림동화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빼어난 솜씨로 글 속의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펼쳐냈다.

 자신이 가진 이러한 재능을 앞으로도 계속해 불교 일, 특히 불교어린이문화창달을 위해 쓰고 싶어한다.
 지금은 틈틈이 어린이 불교성전과 어린이 불교그림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또한 순전히 개인적인 뜻에서 일하는 틈틈이 해가는 일이다.
  어린이 불교성전은 현재 뜻있는 젊은 스님 여섯 분이 원고를 쓰고 계시다. 글 사이사이에 자신이 직접 그림도 그려 넣을 생각이다. 어렵게 느끼는 불교의 이미지를 벗기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연구소에는 몇몇 작업을 돕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낮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사진집 편집과 미술작품집 편집 등 돈이 되는 작업들을 한다.
  7~8년째 계속하면서 돈도 꽤 벌었다. 그러나 돈이 모일 때마다 그야말로 또 일을 벌인다. 어린이 불교방학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일, 어린이 불교성전을 만드는 일, 그림책을 만드는 일…. 이런 일들은 보통 책 1권 만드는 것 몇 배 이상의 힘이 드는 일일뿐더러 제작 경비도 대단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예산이 있어 하는 일은 아니다. 불교 일에 있어서는 늘 대책이 없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색시공(色是空)전”을 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 전시회였다.
 첫 회에는 13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내주셨다. 그런데 두 번째는 33명, 그리고 이번 3월 30일에서 4월 5일까지 인사동 공평아트홀에서 열릴 세 번째 전시회에는 40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전시장에 걸길 원했다.
 이 모임은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서구문물과 문화가 물밀듯이 몰려온 탓에 우리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다소 기가 죽어지내기 일수였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의식이 전환되면서 차츰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 또한 새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문학이나 음악 미술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문화 일색에서 차츰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도 일조를 했겠지만 그동안 불교적인 사상을 어떻게 용해시키고 그림으로 표현해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던 몇몇 분들이 모임(性心會, 회장 송영방)을 갖고, 그 첫 행사로 그림전시회를 가진 것이다.

 이 모임의 총무로 전시회를 마련하는 일은 한상린 씨가 맡았다.
 그림그리는 사람들인지라 다들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었지만 불교적인 내면세계, 서로의 정서가 같은지라 흔쾌히 의기투합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림을 내다 걸었다. 그러나 전시회를 한번씩 치르려면 1.000여만 원의 경비가 든다.

 전시장 대관비와 전시회 팜프렛, 홍보 등등… .

   
 
                         禪房의 아침  
   
 
                            眞如解脫  
 
 
 그 일 또한 한상린 씨가 도맡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어찌 하다보면 신기하게 그 일들이 해결되곤 했다. 사실은 그것도 지금까지 그 자신이 뿌려놓은 씨앗 탓이지만….
 자신이 32세가 된 늦은 나이에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한 것은 또한 나름대로의 이런 뜻이 있어서였다.
  서양미술사 안에 기독교미술사는 있는데 왜 동양미술사 안에 불교미술사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를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맥을 잇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 싶어 기꺼이 이 모임의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기존의 불교미술전이 각종 불사전(佛事展)으로 거의 작품을 강매하다시피해 오염된 관계로 또 그런 작품전시회가 아닌가 하여 불교인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불자들보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불자들의 눈높이를 높여주기 위해서도 이 일을 앞으 로도 계속하고 싶어 한다. 자꾸 보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작품을 내주셨던 분들이 전시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을 불우이웃을 돕고, 좋은 일을 위해 쓰자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세 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지금까지의 규모 3배 이상으로 그 규모가 커졌다. 그동안은 장소관계로 작품 크기도 20호 크기로 통일 했던 것을 100호 내외로 하기로 했다. 전시장 규모도 3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송영방 · 이만익 · 오장환 · 이수재 · 이왈종 · 조명형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작품전이니만큼 불자들간에도 이 전시회는 꼭 가봐야 한다고 할 정도로 그 차원을 높여놓고 싶다. 

 이번 색시공전에 작품을 내주시는 분들 역시 한 분 한 분 개인적인 인과관계로 인연 지워진 분들이다. 모두들 한상린 씨를 믿고 작품을 주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늘 말한다.
  모든 분들이 자신을 믿고 찾아와 일을 맡기고 좋아하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한상린 씨 그는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한다. 한 때 출가자로 사시다가 환속하셨지만 이젠 다시 출가자로 돌아가 수행자로 살아가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한송이 연꽃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그러면서 간혹 흐트러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미술경시대회 때마다 최우수상을 탈 정도로 재능이 있어 그 재능으로 부처님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고.
 그는 자신의 내면에 담고 있는 불성을 그림으로 현현시켜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는 일을 앞으로 도 계속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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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린
1951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마친후 다수의 동화창작집을 발표해오고 있으며 크고 작은 출판물작화 제작에 참여했다. 개인전(조형갤러리 ’92), 이소회전(동덕미술관 ’87), 시각과 지각전(’89ㅡ’91), 동악 ’71ㅡ’91(서울시립미술관 ’91), 현대미술과 불교一色 · 是 · 空전(조형미술관 ’91), 한 · 일 신형상전(日本 동경도 미술관 ’92), 대한민국 종교 미술대전(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현대미술과 마음의 표현ㅡ惟心會전(조형갤러리 ’93), 한국불교동화전집 전12권 저술(보련각 ’86), 대원어린이그림동화 전10권 기획 · 편집(대원사 ’88), 웅진전래동화, 위대한 탄생 등 일러스트다수, 주간불교, 월간 불광 삽화 연재중 현 도서출판 단이슬, 한상린 기획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