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화합, 지금 우리가…

지혜의 향기/가을의 기도

2007-01-22     관리자

어느덧 찌는 듯한 폭염이 흔적도 없이 물러가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풀벌레들이 평화롭게 노래하는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세계는 종교간 갈등으로 인해 분쟁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많은 서양인들은 이슬람교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서양의 기독교 신봉국가들을 처단해야 하나님(기독교와 같은 하나님이다)의 낙원을 이 땅에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좁혀질 수 없는 이들간의 종교 갈등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도 중세의 십자군전쟁을 말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이들을 거만한 태도로 테러주의자로 규정하며 순진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천주교·개신교 원리주의자들간에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단 이러한 갈등과 대립이 우리와 동떨어져 멀리 있는 것만도 아니다. 얼마 후면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어느 처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스님, 명절만 다가오면 두렵습니다.”라고!
처사님은 “이번 명절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명절이면 시골 부모님 댁에 가족이 다 모이게 되는데, 차례를 지낼 때쯤이면 각자 다른 종교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다. 동생 내외가 개신교 신자다 보니 차례상 근처에 오지도 않고 밖에서 맴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색한 분위기는 이어지고, 차츰 형제간의 거리도 자꾸만 멀어져가며, 한 해 두 해 지나면 지날수록 갈등의 폭은 넓어져 간다고 한다.
이러한 예들의 일들이 우리들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한다. 과연 그 해답, 해결책은 없을까? 많은 학자들뿐 아니라 각각의 종교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찾아보고 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싶다.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우리 지역(거제도)에선 뜻이 맞는 스님과 신부님, 목사님들이 모여, 가끔은 점심공양도 하고 토론회도 가지곤 한다. 일명 성직자 모임이다. 작년 이맘때엔 종교를 초월해서 체육대회 겸 단체 야유회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엔 종교가 다르다는 낯설음에 서먹서먹한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 지나자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중엔 종교의 담이 완전히 허물어진 채, 정말 모두가 한가족인 양 어울림 마당이 되었다. 각자가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모두가 가까이 다가와 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21세기 현재,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 서로 상생하며 세상을 좀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가꾸지는 못할지언정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 이웃들, 가족들간에 분쟁을 일삼고 피로 물든 전쟁터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모두 종교의 순수성, 그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증오와 보복을 뿌리뽑아, 서로를 인정하고 배타적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화합으로, 휘영청 밝아오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같이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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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스님|선암사에서 운곡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동국대 불교대학원(문학석사)을 졸업하였다. 현재 경남 거제도 용주사 주지로 법을 전하며, 이웃종교와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