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의 선(禪)수행을 위하여 X

재가의 선수행

2009-10-06     관리자

앞차와 여유를 두고 달린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차 꽁무니를 바짝 따라가기도 하고 옆 차선의 차들이 조금 빨리 가는듯 싶으면 빈 틈이 별로 없을 때도 곡예를 하듯이 재빨리 차선을 바꾸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비록 당사자들은 조금 빨리 갈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로 인해 주위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겠는가는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런 얌체족들 때문에 남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바짝 차간거리를 좁히며 운전하는 대부분의 선량한 운전자들도 자신들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얌체족에 신경쓰지 않고, 끼어 들려면 끼어 들어라 하는 마음자세로 충분히 앞차와 거리를 두고 운전하는 습관을 가졌더라면 자신들도 그렇게 긴장하지 않고 남도 별로 놀라게 하지도 않으면서 급한 용무가 있을때 구급차를 포함해 누구나 쉽게 차선을 바꾸며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유는 정말 좋은 것이다.

 참고로 내가 국립대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부임해서 처음 일 년간은 정말 쫓기는 삶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문민개혁시대가 되면서 많이 나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있지만 십 년전쯤에는 교육부에서 보낸 공문이 학교 본부를 거쳐 학과에 도착하는 기간이 어떤 것은 한달 이상이나 되었다.

 이렇게 도착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져 연구계획서나 예산 집행에 관한 계획서들을 학과에서 공문을 받자마자 “기일엄수!” 라는 공문조항에 쫓겨 이틀 또는 사흘 이내에 학교 본부로 즉시 제출해야만 했다.

 행정직원 분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조금만 전문성을 발휘했다면 (사실 더 일하라는 것이 아니고 평소대로 충실히 근무한 했어도) 쉽고 여유있게 처리할 수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공문의 중요성과 시급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정직원들이 책상에 쌓아 놓고 뭉개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공문과 연관된 당사자들은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의 이런 타성이 하루 이틀 사이에 길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이분들의 근무태도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을 화두로 들고 씨름하다가 내가 스스로 여유를 만들자고 결론을 내렸고 이를 즉시 행동에 옮겼다.

 즉 지난 일 년간 받았던 공문들의 제출마감 날짜들을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달력에 모두 적어 놓고 학교 본부로부터 공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놓고 나니 모든 일들이 여유있게 진행되어 긴장하고 살 일이 없어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한편 나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인 딸이 둘 있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큰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단 뭉기작대면서 놀다가 저녁 8시쯤 되면 그제서야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도와달라고 징징 짜면서 숙제를 한다고 밤늦게까지 야단법석을 떤다.

 그런데 작은애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풀고는 혼자서 할 수없는 것만 물어보고 스스로 다해놓고는 여유있게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친구와 재미있게 놀기도 하면서 정확히 저녁 9시만 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잠을 푹잔다. 작은 애는 심지어는 방학때 일주일치 일기를 미리 써 놓기도 해 자기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정도다. 이처럼 나는 매일 두 아이들을 통해서도 여유의 소중함을 매일 확인 하곤 한다.

 이처럼 비단 운전뿐만 아니라 하는일 하나하나마다 여유를 갖는 습관을 가질 때 우리들의 삶은 제 자리를 잡게 되며 이러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남과 나누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폐차 (廢車)와 장례(葬禮)
자기가 아끼며 몰더 차도 수명이 다하면 제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어 맨 나중에는 폐차장으로 간다. 거기서 분해되어 껍데기는 고철로, 속안에 들어있는 부품은 부품대로 분해되어 차는 사라진다. 평소에는 관리도 잘 하며 아꼈겠지만 사라진 차를 그리워하며 다시 폐차장을 찾아 오는 차주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수명이 다하면 결국 더 이상 움직일수 없게 된다. 그러면 차주인이 차를 운전하다가 차를 폐차시키듯이 우리몸을 운전하던 참마음도 미련없이 몸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참뜻을 모르는 돈많은 사람들의 자손들은 이렇게 버려지는 몸을 산 사람들도 집이 없어 고생하고 있는데, 명당이라는 자리에 터를 넓게 잡고 고인을 편히 쉬게한다는 구실로 죽은 몸[死體]을 안치시키곤 한다.

 그러나 냉철하게 따져보면 이런 행위는 두고두고 고인으로 하여금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하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火裝)을 한다. 그리고는 납골당을 만들어 때가 되면 후손들이 그 곳을 찾아 고인을 그리워하며 고인의 뜻을 되새기면서 열심히 살려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은 예외로 평소에는 화장을 해야 한다고 하던 몇 안되는 뜻있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막상 죽을 때가 되면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기도 한다. 한편 정작 본인은 화장을 원하나 자손들이 자기네의 정서상 유언을 무시하고 매장을 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유교적 전통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후손들을 위해 더 이상 감상에만 젖어 있어서는 안될 때가 온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앞으로 십수 년 이내에 죽은 사람의 묘가 차지하는 땅면적이 산 사람의 거주면적을 넘어서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비록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 차를 폐차시키듯 집착을 버리고 죽은 몸도 그와 같이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참되게 살아간 사람들은 묘를 거창하게 쓰지 않아도, 심지어는 일제 때의 대부분의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처럼 묘가 어디 있는지 몰라도 이분들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에 후손들이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최근 입적하신 성철 노사의 몸에서 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으나 사리는 그저 사리일 뿐이다.

 다만 삶의 참뜻을 모르고 살아가던 비신자를 신자로, 미숙한 신앙심을 가진 신자를 남과 더불어 함께살아가려는 성숙한 신앙심을 가지도록 분발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사실 진짜 사리는 성철 노사가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수행과정 자체와 중생을 일깨우기 위해 남기신 노사의 어록인 것이다.

 참고로『벽암록』제 18칙에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좋은 이야기가 있다.

 대종(代 宗) 황제가 혜충(慧忠)국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후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노승에게 무봉탑(無縫塔 : 일종이 평범한 흙무덤)을 만들어 주십시오. ”(국사에 걸맞게 으리으리한 묘택을 꾸며달라고 부탁할 것으로 기대했던) 황제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물었다.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국사가 한참동안 말없이 있다가[良久] “알았습니까?”라고 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국사 말하기를 “제가 법을 부촉한 제자 탐원(耽源)이 있는데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불러서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국사가 입적한 뒤 황제는 탐원을 불러 그 뜻을 물으니 탐원이 답하기를 “상주(湘州)의 남쪽과 담주(潭州)의 북쪽사이 (천하를 일컬음)에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하고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 모든 사람이 함께 타는 배가 떴으나 유리전(留璃殿 : 궁궐)에는 국사의 참뜻을 알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무봉탑 이야기는 '태어난 자 반드시 죽는다[生者必滅]라는 배수진을 치고 한번 씨름해 볼 만한 좋은 화두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