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의 상징물들 (2)

내가 본 불교미술

2009-10-06     관리자

초기 도상에 나타나는 모든 나무가 석가모니불과 그의 득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류의 나무들은 석가모니불의 6대 선조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망고와 같은 다른 나무들은 석가모니불이나 다른 붓다들에 관한 이야기에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그림을 정확하게 알아맞추려면 밑에 깔린 이야기와 관련해서 그림을 세심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나무가 붓다와 그의 득도를 기념해서 경모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붓다 자신의 성스러운 인품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석가모니불 본생담의 한 이야기에 나오는 상징물이 보다 넓은  의미를 얻게 되어 예를 들면 탄생불을 그리는 장면에서 아기 부처를 위에는 우산과 아래에는 불족적을 구비한 빈왕좌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기적(傳紀的)인 본생담을 중요시하는 초기 도상에 있어서도 붓다와 붓다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을 시간과 공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경향을 볼수 있다. 그래서 상징물들은 새로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여러 가지 문맥안에서 자유롭게 이용하게 되었다.

33천에서 마야부인에게 설법한 후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시는 부처님 상
 붓다의 존재를 가리키는 가장 명백한 표지는 붓다의 발자국[佛足跡]이다. 붓다의 발자국은 그의 왕좌 앞에, 그가 네란자라 강을 건널 때 강 물 위에, 그리고 인드라[天帝]가 그를 위해서 놓아준 사다리를 타고 고인이 된 그의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설교를 했던 33천으로부터 내려올 때에 나타난다. 후대의 불교사에 있어서는 붓다의 발자국이 대단히 큰 인기를 끌게 되고 또 추가적인 의미를 얻게 되었다.

 탄생과 득도 다음으로 세 번째로 중요한 붓다의 일생중의 사건은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苑)에서 행한 그의 첫 설법이다. 설법하는 행위를 "법륜(法輪)을 돌린다."라고 부르기 때문에 여기에 사용되는 상징물은 보통 살이 여덟게 달린 바퀴로 그것은 원래 "바퀴를 돌리는 사람" 이라는 세상의 통치자의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비유적으로 정신적인 세계의 통치자인 붓다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법륜은 빈 왕좌의 등이나 위에 놓여질 때가 많으며 신자들과 신들과 동물들이 떠받치고 있으며 특히 두 마리 이상의 사슴들이 떠받치고 있는 경우는 그것이 녹야원을 상징한다. 석가모니불의 전기의 첫 설법과 녹야원이라는 장소에서 떠나면 법륜은 실제로 일반적인 의미로 불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표현한다. 따라서 아시아 전역에서 보편적인 타당성을 얻게 되었다. 

 초기 도상에서는 법륜이 기둥이나 원주위에 놓여 있어서 왕좌와 결부되기도 했다. 우주의 통치와 교리라는 법륜과 관련이 있는 원주는 우주의 축을 암시하는데 이것은 불교 상징물들의 옛날 원류, 즉 불교 이전의 우주론이며 황실의 상징을 가리킨다.

불탑에 예배하는 사자와 신도들
 석가모니불의 긴 방랑과 설교기간중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에서 그는 대단히 기묘한 벙법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걸어가는 길'이 있는데 이것은 공중에 떠있는 대들보처럼 그려져있다. 이것은 석가모니불이 자신의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네란자라 강물 위를 걸어가는 것을 그린것이다. 이 상징물은 다른 상징물들과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이것은 실제의 물건에서 그 형태를 취하지 않은 추상적인 표지로 부처님 자신이나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도상적인 표지를 가지고는 표현할 수없는 행위를 표현한다.

 석가모니불의 일생 중에서 마지막으로 최후를 장식하는 사건은 그의 열반행, 즉 그가 쿠시나가라에서 입적하는 것인데 이것은 스투파에 의해서 표현되었다. 석가모니불뿐만 아니라 전생의 다른 부처님들도 이런 방법으로 표현할 수있다.

 원래는 제왕과 성인들의 무덤이 었던 스투파는 유골과 유물을 담는 용기라는 기능과 의미를 얻게 되었다. 스투파는 그 뒤로 많은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불교 의식에서는 성골함이라는 형태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유물 속에 붓다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본질이 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유물을 ‘알’속에 들어있는 ‘씨앗’ 또는 반구형 스투파라는 '자궁'이라고 불리웠다.

술 취한 코끼리를 항복받은 석가모니불
 이렇게 해서 스투파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인품과 동일시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부처님의 열반행을 상징하게 되고 함축적으로 불교의 일반적인 의미로 득도라는 최종 목적을 상징한다. 그래서 스투파는 절대적인 진리를 구현하는 기념물이 되었고 경건한 행동으로 흠앙을 받고 장엄과 아낌없는 장식으로 미화되었다.

 의식의 중심을 이루는 산치나 카를리의 카이티야 홀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스투파의 양식은 엄격하게 단순하고 대단히 인상적인 기념물인 반면에 아마라바티나, 나가르주나콘다에 있는 비교적 후기의 스투파들은 전설적인 장면을 그리는 부조석판(浮彫石板)으로 덮여 있고 원작 장식물로 스투파를 묘사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불상이 이런 부조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점차로 빈 왕좌와 법륜이라는 붓다의 상징적인 표현을 대치하게 되었다. 여기에 나타난 부처는 아마도 그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스투파, 즉 그의 영원한 집 안으로부터 가시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다.

 초기 도상에 사용된 가장 중요한 상징물들을 살펴본 결과 부처님을 표현하는데는 독점적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상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자국, 보리수, 법륜, 스투파 등의 상징물들이 거의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고 병존(幷存)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상징물들의 이러한 다양성은 각 상징물이 부처님의 생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또다른 하나는 초기 불교가 고정된 교리와 규칙을 정하기를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탑을 봉헌하는 신도들의부조상
 뒤에 불상이 만들어졌을 때 불상의 한정된 유형만이 보편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그 중에서도 금강좌에 부동의 영원한 선정(禪定)의 자세로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유형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까닭은 그것이 부처님을 가장 전형적인 형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단히 이상화되고 거의 도식적인 기본 불상은 모든 전기와 현상 세계와 다른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불가시의 영역, 즉 완전한 열반경에 들어감으로써 어떤 가시적인 형상도 초월하는 또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초기 도상에서 부처님을 비인간적이고 비도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 예술가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사바세계에 끌어들이지도 않고 또 부처님과 다른 모든 중생들과 같은 존재의 수준으로 타락시키지도 않고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순수한 정신적인 방법으로 가시화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예술가들은 많은 인물상들 한가운데에 무엇보다 신빙성 있게 부처님의 열반경을 암시하는 조용한 공허의 중심을 만들어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산치의 초기 스투파의 엄격한 돔이 삼사라라는 현상세계를 초월하는 궁구적인 진리를 조용히 말한다. 대문과 난간에 끝없이 다양성으로 장식된 사바세계는 변두리에 국한되어 있다.      
                                                                 ㅡ 계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