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難治病)-자랑<虚勢>을 생각해 본다-

운악산 한화(雲岳山閒話)

2009-09-28     관리자

탐욕은 모든 화물의 근원
요즘의 세태를 P․R시대라 한답니다. 자기의 능한점, 자기 물건의 우수한 점을 자랑함으로 남의 인정을 받게 되고, 남의 인정을 받아야만 자신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믿어집니다.
그래서 이 자랑을 선전이라 부르면서 입으로, 글로, 그림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열을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하여 남에게 알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고 자신도 이롭자는 행위야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 자랑이라는 낱말 속에 감춰져 있는 사고방식의 일부일 것입니다. 자랑하려는 마음씨를 흔히들 노출심리(露出心理)라 하는데, 별수 없는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노출시키려는 심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도를 깨달으시던 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도 이 범주에 들어야 될 것 같고, 길거리의 싸구려 장수가 목청을 돋구는 것도 같은 유형으로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 유형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만인류를 위해 조건없이 내 것을, 또는 내 아는 것을 내놓겠다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약간 속이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행위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지 못한 상태에서 내세우는 주장에는 언제나 자기 본위의 욕심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과다한 선전, 윤리에 저촉되는 선전 등의 명목으로 그 활동을 규제하는 제도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겉으로 내뱉는 말이야 본전에 주느니, 밑지고 파느니 하여도 속마음에 욕심이 도사리고 있는 한, 속임수 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체, 옳지 못하면서도 옳은 체 하는 일들도 모두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에는 탐욕을 일러 모든 허물의 근원이 된다고 누누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허물의 근본일 뿐 아니라 모든 고통의 원인까지도 모두 욕심에다 돌리고 있습니다.
욕심이 주동이 되어 남보다 나으려는 교만, 진실을 도호하여 속이려는 거짓, 창피한 줄 모르는 무참(無慚)등이 합세하여 나타나는 것이 자랑의 특성으로서 이러한 경우를 탐욕․교만․거짓․무참 등의 등분(等分)이라 부릅니다.
이렇듯 화려하게 떠드는 말 속에는 속임수라는 것이 숨어 있는 것이 상례이므로 그 자랑을 듣는 이들은 믿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는 것이 또한 볼만한 일입니다.


이 창으로 이 방패를…
어떤 사람이 창과 방패를 만들어서 팔았는데, 창을 찾는 고객들에게「이 창은 어떠한 방패도 부수고 백발백중 목적을 달성한다」 하였고, 방패를 보자는 손님에게는 「어떠한 창도 100% 막아낸다」고 떠들어댔답니다.
그때 곁에서 보던 한 나그네가「그러면 이 창으로 이 방패를 때리면 어떻게 되겠느냐?」하니 대답을 못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일입니다.
이런 경우를 일러서 모순(矛盾) 또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현상이 와왕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구한말 일제 초기에 봉선사에 계셨던 응봉당(應峰堂)은 뼈없이 좋은 노장으로서 평생 동안 노전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노장님은 잠이 어떻게나 많던지 사시마지를 올려놓고 「지심정례공양…」하다가는 잠이 깜박 들면, 한도 끝도 없이 자더랍니다.
그래서 장난 많은 학인들이 배는 고프고 해서 딴 불기에다 솜을 담아다 놓고 마지는 내려다 먹었답니다.
얼마를 자다가 깨어나서 마지를 다잡숫고, 불기를 내리려다 보면 진짜 마지불기는 간 데 없고 솜불기만 있기에 화가 나서『요 깍쟁이 같은 놈들이 또 장난을 쳤구나!』하면서 내려와 그 날은 점심을 굶게 된답니다.
그런데 그 노장은 언챙이어서 항시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게 한 구색이었답니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인정이 많아서 위험스레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의례「껸껸이 다녀라」하고 타이르기를 잊지 않았답니다.
그럴라치면 젊은이들은 『껸껸이가 뭐예요. 천천히지요』하면『내가 언제 껸껸이라 했느냐? 껸껸이 가라고 껸껸이라 했지』하면서 응수하더랍니다.
잘못이 내게 있는 데도 나는 잘못이 없으니 도리어 내 본을 받으라는 작태를 보아 옵니다. 어른이기에, 높은 자리이기에 내 잘못을 시인하기 보다는 나의 어른스러움을 더욱 강조하려는 발상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노장의 경우는 아무런 악의도 없어 차라리 천진스러운 장난으로 보아줄 수도 있겠지만, 요즘 사회 일반의 풍조는 좀 그렇지 못하니 탈입니다.
뻔한 사실을 놓고「믿어라」하니 뻔한 사실이기에「못 믿겠다」로 맞서다 보면, 자연 불신의 풍조가 생겨나서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랑은 선전을 운하게 되고 선전에는 거짓이 따르게 되고 거짓은 불신을 낳아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사욕이 없어져야…
흔히들, 요즘을 불신의 시대라 하고 그 불신의 풍조를 치유하기 위하여 각종 제도를 마련하거나 그 제도를 뜯어 고치자고 와글와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진정 약하고 선량한 백성들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을 줄 수 있겠느냐에 대하여는, 정확한 판단 기준을 가진 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판단의 기준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되리라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 속의 탐욕의 찌꺼기가 없는 상태에서 표현하려는 행위는 서원이라 하고 탐욕심 즉 이기심을 비우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선전은 모두가 남을 나의 이익 구축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불행의 씨앗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의 경우도 여당과 야당이 입장을 달리하면서 성대히 좋은 말씀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가 지식인이요 애국자인데 같은 애국이 어찌하여 두 가닥, 세 가닥으로 갈라져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하여서는 의구심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씀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고, 도처에 걱정스러운 눈총을 받는 이유야 어딘가에 있겠지만, 두드러진 것으로는 자파의 권익을 위해 우리의 주체성을 너무 말살시키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파에게 불리하면 미국 정부에다 대고 군사 원조를 중단하라고 호소한 야당도 있었고, 국제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대리 전쟁이란 평을 받으면서도 월남전을 떠맡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 일변도의 생각을 갖는 데는 세계의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건국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우선 공휴일로 정했고, 우표에 석굴암 불상을 도안했다가 슬그머니 걷어 치웠고, 외채가 몇백억 달러나 된다는데 엄청난 교회가 우후죽순 같이 세워지고…
그런데, 그러한 영원한 우방이 요즘은 어떻게 나오고 있습니까? 푸뜩푸뜩 신문 기사를 보면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왕왕 충돌이 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결국에는 의례 우리의 양보로 끝나더니 금번 원화의 평가절상 종용에 대하여는 강경히 맞서는 기미를 보고, 미국의 요청이 적이나 우리에게 불리한 제의로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슬기롭게 잘 풀릴 것으로 믿거니와 개인이나 국가 사이에서 겉으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떠들어도 사욕이 없어지지 않는한 끝내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고, 아무리 남의 말을 무조건 믿는 미덕을 가졌더라도 자기의 주체성을 쉽사리 버리면 종말엔 채이는구나!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