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성 길을 따라

바라밀 국토를 찾아서/서산 마애불

2009-09-22     관리자

▲ 마애삼존불 중의 주존불인 석가모니부처님
늘은 마치 가을 하늘 처럼 맑고 푸르다. 당진을 지나 운산면에서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는 시골길도 어느 사이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문명의 빠른 바람이 눈만 감으면 선연히 떠오르는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밀물처럼 밀려와서 내마음 속에 가득히 들어 앉아버리는 즐거움을 밀어내지는 못하였다. 대지의 냄새는 여전히 부드럽고 향기로웠으며 고풍저수지의 뚝길을 올라서니 하늘빛이 물속에 풍덩 잠겨 있었다. 물빛이 하늘빛이고 하늘빛이 물빛이어서 수선스런 감탄보다는 말없는 침묵이 제격인 듯하였다.

▲ 개심사 대웅전 뜨락
 차창밖에는 따스한 봄볕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처럼 온누리에 끊임없이 부어지고 있었고 아지랑이는 눈부신 춤을 추며 하늘로 하늘로 피어 올랐다.

 오늘 가는 이 길, 백제가 이 지역을 다스렸을 때에 부여의 사비성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태안반도의 포구에서 내려진 해외의 물산들, 들고 나는 유학승 들, 관리들과 장사꾼들이 바로 이 길을 따라 사비성을 왕래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행인들의 발길이 닿고 우마차가 구르던 이 길이 이제 비록 산간의 좁은 도로가 되었다 해도 그 당시의 발자취야 어찌 사라지겠는가. 도로곁에 있는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가 이를 넉넉히 증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조약돌 하나에도 그 조약돌이 그 모습을 갖게 될 때까지에는 수많은 시간과 역사가 서려있으니 이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이 어찌 단순한 돌덩이며 흘러간 시대의 조각물에 지나지 않으랴.

▲ 길섶의 부처님
 터널을 지나 호수 자락을 돌아가니 길섶에 서있는 부처님이 소박한 모습으로 길손을 맞아준다. 잔돌로 대충대충 쌓아 올린 위에 서 계신 부처님은 어느때의 부처님인지 확실히 모른다. 아니 미륵부처님인지 석가모니부처님인지 그것조차도 알수 없다.

 그러난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랴.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오가는 길손들을 맞아주고 보내주는 부처님, 합장하고 비는 이들이 소원도 들어주고 돌 한덩이 얹어놓는 중생들의 정성도 소 중히 받아주시는 부처님, 합장하고 비는 이들의 소원도 들어주고 돌 한 덩이 얹어 놓는 중생들의 정성도 소중히 받아주시는 부처님, 취한 관광객의 술주정도 다 미소로 받아들이시는 부처님, 아들없는 중생들이 코도 떼어가고 눈병난 아이들이 눈을 후비어도 얼굴 한번 안 찡그리시고 언제나 빙긋 웃어만 주시는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오래 이자리에 계시면서 어리석은 중생들 길이 길이 보살펴 주옵소서,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곧 서산 마애삼존불이 계시는 고란사이다. 언제 어떻게 절이 창건되고 사라졌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지금 마애삼존불 앞에 있는 고란사는 근래에 지어진 사찰이다.

 '백제의 미소'로 더욱 잘 알려진 마애섬존불은 이 절의 북쪽 절벽에 숨듯이 자리했다. 마애삼존불 주위를 살펴보면 이곳 역시 대개의 마애불들이 그러하듯이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기도터였다고 짐작된다.

 한민족에게 있어서 산은 신성한 곳이다. 때문에 천제(天祭)를 올릴 때도 산에 올랐고 기우제를 지내려고 산에 들었다. 산에서 사냥하기 전에는 그 산의 산신에게 빌었고 꿩이라도 한마리 잡으면 그 꿩을 내어주신 산신에게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윽한곳, 신령스러워 보이는 큰 바위는 마땅히 좋은 기도처가 되었고 지금도 이러한 전통은 살아 남아 민간신앙속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마애삼존불은 크고 웅장한 규모는 아니다. 오히려 작고 아담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조용한 아침, 홀로 앉아 불보살의 부드러운 옷깃과 은은한 미소와 마주하노라면 아랫쪽 큰길을 오가며 이곳에 올라와 뜨거운 기도를 올렸을 백제인들의 발자국소리가 곧 들려오는 듯하다.

 마애삼존불의 가운데에 서 계신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동그란 얼굴, 입가에 어린 그윽한 미소, 통통한 몸매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 두광의 안쪽에 새겨진 도톰하고 소박한 연꽃무늬, 옷자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두 발, 더할 수없는 정성으로 돌을 쪼아냈을 석공의 마음이 곧잡힐 듯도 하다. 한손은 여원인, 한손은 시무외인을 지으시고 그토록 오래도록 서 계시건만 이제 막 사바세계에 당도하신 듯 조금도 피로의 기색이 없으신 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으신다. 이 부처님 오른쪽에는 제화갈라 보살이 보배구슬을 두손에 감싸안고 다소곳이 서 계시고 왼쪽에는 미륵 보살이 반가부좌로 앉아계신데 두 손에 크게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사유의 모습은 조금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 보원사지에 있는 불교 유물들
 흔히 고구려의 기상, 백제의 선, 신라의 짜임새라고 삼국의 문화를 특징지우는데 그백제의 특징을 여기마애삼존불에서 깊게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부드러운 선의 흐름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도 나타나며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에 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애삼존불 입구에서 약 1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보원사지가 길 오른 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보물로 지정된 5개의 불교유물들이 밭 가운데 서 있기도 하고 산자락에 의지해 있기도 하다.
이 터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이 백제불상으로 밝혀짐에 따라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유물뿐이기는 하지만 백제시대에도 사찰이 자리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보원사지 석조[보물105호], 당간지주[보물103호], 오층석탑[보물104호], 법인국사보승탑[보물105호], 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106호]가 이곳에 있어서 중요한 사지임을 일깨워준다.

 이 보원사지의 서쪽에 자리한 산이 상왕산(象王山)이다. 상왕산을 주산으로 해서 이 골 저 골에 백암사지,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문주사등이 산재해 있고 특히 개심사는 654년에 혜감 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484년에 건립되어 이미 500년을 넘긴 옛 건물이 지만 균형미가 뛰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주위의 건물들도 모두 해묵은 옛맛이 배어있어 고사의 운치를 더해 주는데 새로 지은 종각의 기둥들도 깎고 다듬은 나무를 쓰지 않고 굽고 휘어진 소나무들을 그대로 잘라 써서 옛 건물들과의 조화를 잃지 않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후불탱화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1767년에 제작된 관경변상도가 걸려 있었는데 작년에 도둑이 들어 잃어버리고 말았다. 고찰마다 소장된 문화재들을 전부 박물관에 보관시킬 수도 없고, 매일 밤 지키고 있을 수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울적한 심사로 절을 내려오니 몇백 년 세월을 지고 울창히 들어선 소나무 숲길, 향긋한 솔내가 필자의 가슴을 탁열어 놓는다. 개심사란 이름에 걸맞는 풍광, 솔바람 소리가 한결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