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빛의 샘/나의 살던 고향은

2009-09-22     관리자

봄볕이 창가에서 속삭인다. 생글생글 웃음을 머금고 "문 좀열어 보라" 고 유혹을 한다.

 봄기운이 뜨락에서 손짓을 한다.
 "빨리 나와 보라"고.
 목련의 새눈이 저 높은 가지에도 뚜렷하게 봉우리지고 라일락,  개나리가 그리고 모란과 작약도 물론 빨간 새순을 탐스럽게 돋우고 돌 틈사이로 돌나물이 파랗게 기어 나왔다. 창포는 어느새 한 뼘이나 솟아올라 힘차게 자라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면 당귀도 싹이 돋아 뾰족 뽀족한 잎새가 "나도여기…." 하고 있다.

 만물이 새봄 · 새생명 · 새힘 · 새희망을 과시하고 있다. 어제 오늘이 아니라 봄은 벌써부터 기지개를 켜고 꿈틀거려 왔던 것이다.

 그 두꺼운 지각을 뚫고 대지의 구석끝까지 용솟음치는 기쁨을 뿜어내려고 다투고 있다.

 그 매섭고 다기찬 동장군을 기어이 이겨내고 미소와 사랑으로 삼라만상을 어루만지며 나름대로 제 구실을 하도록 북돋워주는 봄의 여신에게 가슴속 깊이 고마움을 새기고 싶어진다.

 이맘때면 시골마을 어구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시냇가에 버들강아지가 토실토실 물이 오르고 개울물이 졸졸졸 소리내어 흐르겠지.

 진달래 개나리도 곧 만발하고 잇따라 백화난만히 피어나고 벌나비가 춤을 추겠지 . 강남갔던 연자가 주인집에 다시 와서 인사하느라 지지배배 지저귀겠지.

 봄이란 단어 그 한마디에 금방 가슴이 설레이며 온갖 낭만적 정감이 흠뻑 젖어드는 착각에 휩싸인다.

 내 어릴 적 따사로운 봄날 동무들과 손잡고 노래부르며 십리길이나 되는 이웃마을 나지막한 산 언덕에서 꽃을 따고 놀다가 무심히 빤짝이는 흰 수정을 발견하고 놀랐던 일, 서너명 친구가 다같이 여러 개의수정을 근처 흙 속에서 캐내고는 집에 몰래 묻어두고 가끔씩 파보았는데 볼 때마다 조금씩 그것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더욱 신기하게 여겨 오래두고 완상한 일이 문득 이 봄에 다시 생가가난다.

 형산강(兄山江)에서 멱감고 은어 를 낚아 고추장에 찍어 먹던 그 향긋한 수박맛 같은 미각이 새삼 군침을 돌게 한다.

 어래산(漁來山) 꼭대기 암굴에 숨은 도사를 찾아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허기에 지쳐 친구집까지 겨우 돌아오던 아쉬웠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다 소용없는 지난 날일까.
그래도 지워지지 않으니 어쩌나 .

 좀 더 커서 총각이 되어서도 봄은 더욱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정월달만 되면 벌써 슬슬 저절로 흥얼거려 지는 노래. 아직 봄은 한참이나 멀었는데도 언제나 앞질러 흘러나오는 봄노래가 속에서 갈등을 빚는다. 불러야 되나 아직 부를 때가 안 됐는데 그러다가 결국터지는 노래.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왔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레
 음~음~.

 주위의 모든 동포들이 자연 합창하게 되는 동심 아닌 동심의 한때가 연출된다.

 그런가 하다보면 금방 따가운 햇살에 봄은 불타오르며 보다 성숙의 나라로 승화된다.

 봄은 한 해의 첫 계절이고 한 인생의 시직이기도 하다. 입춘 우수만 지나면 부지런히 논밭에 나가 씨뿌리고 가꾸어야 제때 에 열매를 거둔다.

 황엽주실(黃葉朱實)은 보는 화초가 아니라 가꾸고 거두는 인생의 과업이다.

 봄은 반가운 손님이자 소중한 손님이다. 정중히 맞이하여 정성껏 환대하고 받들어야 할 어느 임금보다도 더 높고 귀한 빈객이다. 손님이 떠난 후에 아차하여도 후회는 막급이다.

 봄의 여왕이 하루라도 더 즐겁게 우리옆에 머물다 가시기를 손모아 빌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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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은 경북 안강에서 출생하여 15세에 대구 조계숙에서 수업하는 등 많은 불연을 갖고 있다.
불서를 모으는 일을 취미로 삼고 항상 수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