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의 중흥

풍경소리

2007-06-02     관리자

역사가 오랜 나라에 문화재가 그만큼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해외여행에 나서면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만나게 된다.   시간이 모자라면 박물관이라도 들러 본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적인 문화재의 보고이다.   규모와 내용이 황홀하다.

   문화재는 꼭 박물관에만 있지는 않다.   문화가 꽃 핀 고도(古都)라면 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로마사람들은 훌륭한 조상 덕분에 살아 간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도시 자체가 그대로 하나의 문화재다.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대 로마가 살아 숨쉬는 것 같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는 고대 제국의 위업이 유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핍박과 순교로 고난 받은 초기 기독교의 자취가 생생하다.   로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품페이 유적 또한 감동을 안겨 준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파리의 문화재 또한 아름답게 조화된 거대한 예술이다.   개선문과 에펠탑은 현장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낯이 익을 만큼 널리 알려졌다.   로마와 파리만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어디를 가도 독특한 예술의 향기와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나라마다 고유의 특색이 번쩍인다.   저절로 부럽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문화예술의 힘은 이처럼 놀랍고 강하다.

   동양이라고 다를 바 없고 뒤지지도 않는다.   가까운 중국과 알본엔 우리 눈에 설지 않은 문화재가 얼마든지 있다.   서양과는 차이가 있으나, 유구한 전통은 한치도 밀릴 리가 없다.   우리나라도 당당하게 이 대열에 속한다.

   자랑할 것은 자랑할 줄 알아야 한다.   오랜 역사, 빛나는 전통을 자랑함은 과장된 수식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예술은 뿌리가 깊고 열매가 아름답다.   문화재는 세속의 값으로 평가하거나 남의 것과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가치. 개성. 특색 그리고 얼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나가 평가의 기준이다.

   우리 문화재 가운데 불교예술은 백미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문화 예술은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건축과 조각으로 대표되는 불교예술의 전성기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때였다.   이 가운데 건축예술인 사찰은 불행하게도 병화와 재난으로 절터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조에서 임진왜란 이후에 복원한 불국사는 하나의 예외로 꼽힌다.   삼국시대 세 나라의 불교예술은 공통점이 많으면서 각기 나름대로의 특성이 나타난다.

   불상의 제작은 고구려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4세기 말부터 중국의 불상이 이미 들어 왔고, 이것을 바탕으로 고구려화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대륙의 영향을 받으면서 모방에 머무르지 안고 고구려인의 새로운 창조의 숨결이 파고든 것이다.   모방과 답습이 예술이 아닌 기술의 전수일 뿐임에 생각하면 불상의 고구려화는 의미가 깊다.

   백제의 건축 또한 절터밖에 남은게 없다.   일본에도 전수한 백제문화의 진수를 넓게 볼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엔 석탑이 보존되고 있다.   귀중한 문화자산의 하나이다.   부여 지방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백제 불상이 출토 되었다.   "백제의 미소'라는 신비의 웃음을 백제불들이 머금고 있다.   백제인의 참모습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 아니겠는가.   불교와 예술의 합치가 심오하다.

   6세기에 불교를 공인한 신라의 불교예술은 경주 일대를 비롯해서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기록에 남은 것만도 홍륜사, 영흥사, 분황사, 황룡사가 있으며, 통일기에 들어선 더욱 번성하여 경주에 사찰이 60군데 가량 있었년이란 오랜 세월의 공이 들었다.   경주하면 얼른 불국사와 석굴암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신라불교예술의 한 부분일 뿐이다.   통일기에 이르러 불교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져 영향을 받는데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불교 예술을 빼면 우리 문화재는 허전하고 빈곤감을 느낄 정도이다.   삼국시대 불교예술에서 주목할 바는 대담한 수용력과 과감한 독창성이다.   문화 발전엔 독불장군이 있을 수가 없다.   상호 교류는 필수적이다.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성숙도가 드러난다.   우리 문화재에 긍지를 갖는 까닭은 단단한 알맹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예술은 본디 신심에서 싹트고 한 시대를 농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사찰 건축은 오늘날 아파트를 짓듯이 종교 의식의 집행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불교에 바탕을 둔 예술인의 의지가 없다면 그 가치는 오래 인정받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불심이 무르익어 작품으로 구체화한 것이 곧 불교예술의 걸작이 된 것이다.

   이제 먼 과거에서 오늘로 눈을 돌려 본다.   특정 종교를 떠나 전체적으로 우리의 종교열은 날로 고조하고 있다.   종교인구가 급팽창하면서 사찰과 교회도 늘어났다.   그에 따라 종교 건축이 대형화하고 외관이 다채롭다.   일부에선 양적인 비대화를 우려 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 그러한 시비를 되풀이할 계제는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근래에 와서 사찰의 신축 복원 또는 중건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외람된 요망과 제안이 있다.   복원과 중건의 경우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 해야 함은 다시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인 줄 안다.   가능하다면 문화재의 차원에서 삼국시대의 사찰이 한두 개나마 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우리 시대를 대표할 불교예술의 걸작이 탄생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과거의 전통을 수호하는 가운데 오늘의 새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적 고뇌가 요구되는 것이다.   쉬운 일도 아니고 서둘 까닭도 없다.   위대한 작품은 오랜 산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신라시대 황룡사 건립에 30년의 세월이 걸렸음을 깊이 새겨볼 만하다.

   단순히 웅장하고 화려하기만 해서 훌륭한 건축작품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불교가 지향하는 정신과 오늘의 한국인의 모습과 의지가 어울어져야 진짜 자랑거리가 태어날 것이다.   이러한 불사가 이루어진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엮어지는 희열을 기대하게 된다.   불교예술은 종교의 소유만이 아닌 역사의 자산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합장하고 머리를 숙일 따름이다.

[정자나무

미운 생각 원망스러운 생각이 일어날 때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욕하고 해를 끼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서 오는 미운 생각이나 원망스러운 생각을 털어버리고 오히려 저 사람은 고마운 사람, 저 사람은 착한 사람, 나에게 교훈을 주고 내가 반성하도록 하며 나의 뜻을 굳게 하고 나를 성장시켜 준 사람, 저 사람은 고마운 사람... 하는 생각을 반복하자.

   설사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참모습은 불성이며 부처님의 착한 공덕이 거기에 무진장으로 갖추어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 착하고 거룩한 진실 모습을 긍정하여 줄 때 햇살 앞에 어둠이 견디지 못하듯이 고난과 불행과 나쁜 현상은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로 없는 것이 현상 위에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