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선사상(禪思想)Ⅱ

2009-09-15     해주스님

자기의 심성을 바로 보아 깨달음을 성취하는 견성성불의 구체적 수증문(修證門)으로는 여러 방편이 시설되어 있다. 바른 닦음과 깨달음을 중시하면서, 깨달음과 닦음에 각각 단박[頓]과 점차[漸]의 2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는 달마후 흥인문하 혜능의 남종선과 신수의 북종선에 대하여 옛부터 남돈북점[南頓北漸]의 용어가 있음에서도 짐작되는 바다.

 혜능 남돈선 이후 5가 7종이 벌어지기 직전,
북종 · 하택종 · 홍주종 · 우두종 등 10가가 세력을 떨치고 있을 즈음,
선과 교를 겸수한 화엄종의 규봉종밀은 당시 선종의
오수돈점(悟修頓漸)설을 분류하여 비유를 통한 자세한 설명을 가하고 있다.

 즉, 몰록 깨닫고 점차 닦음[頓悟漸修] · 점차 닦고 몰록깨달음[漸修頓悟] · 몰록 닦고 점차 깨달음[頓修漸悟] · 점차 닦고 점차깨달음[漸修漸悟] · 몰록 깨닫고 몰록 닦음[頓悟頓修 : 이에 先悟後修,先修後悟, 修悟ㅡ時의 세 가지가 있다.] 등 여러 돈점설을 열거하고 (9對 · 8대 · 7대 또는 6대 돈점을 들고 있다)이를 깨달음이 먼저면 해오이고 닦음이 먼저면 그 깨달음은 증오라고 하여 두가지 깨달음에 배대하고 있다.

 이중에 돈오점수와 돈오돈수가 범부 수증문과 선문진수로 희자되어 왔다.(종밀은 먼저 깨달은 후에 점점 닦는 것이 바른 수증이며, 이 돈오점수가 달마이래 전전히 상승하는 최상승선이고 여래청정선이라 보고 있다. 반면에 돈오점수의 해오는 구경각이 아니고 달선의 진수가 아니며, 돈오돈수의 증오라야 견성이라는 설도 대두되어 돈점 시비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아직 판가름 나지 아니한 문제이다.)

대혜에 의해 대성된 간화선은 일체 모든
분별심을 버리고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이루는 선풍(禪風)이다. 본래 안목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내닫던 활동을 돌려 안으로 향해 깊은
자기부정으로 큰 의심을 깨뜨리는 간화선풍은
한국에서도 대단한 기세를 떨치게 되었다

 또 한편 오가의 사자접득하는 가풍은 원오극근(1063ㅡ1135)의 오가종요에 그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임제(臨濟)는 전기대용(全機大用)으로 방 · 할이 서로 달리며 칼날 위에서 사람을 구하고 전광속에 손을 드리운다" 하니 임제는 할로써 제자를 제접하는 방편이 빈틈없고 신속함을 볼 수 있다. "운문(雲門)은 북두성좌에 몸을 숨기니 금풍(金風)에 몸이 드러난다. 3구(三句)를 알면 화살촉 하나로 하늘을 뚫는다"하니 임제3구가 유명하다.

 "조동(曹洞)은 군신이 합하고 편정(偏正)이 서로 도우며 조도현로(鳥道玄路)요 금바늘에 옥실이다"하니 조동군신오위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위앙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고 화답하는 부자일가로서 명암이 교치하고 어묵(語默)을 드러내지 않는다"하니 이는 스승 제자가 화목하게 법을 주고 받음이 잘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법안(法眼)은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으며 형색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 언구속에 창을 감추고 말속에 메아리가 있다"하니 제자를 제접함에 특별한 기연을 시설하지 아니하나 자연히 저절로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고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중에 임제계와 조동계가 후에까지 번영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간화선과 묵조선의 선수행법이 선양된 것이다.

 중국에서 회창폐불 이후 왕성했던 선의 융성기를 지나서 11세기 후반 이후로는 이러한 가풍을 정형화하여 따르게 한 경향이 강화되고, 그 정형화된 틀에 편중한 지나친 경향을 우려한 나머지 논쟁을 일으키게 되니 굉지정각(1087ㅡ1157)과 대혜종고(1089ㅡ1163)이다.

 조동계의 가풍을 이은 굉지의 묵조선(默照禪)과 임제계 양기파의 가풍을 계승한 간화선(看話禪)이 서로 상대방의 가풍이 가지는 폐단을 지적하기에 이르렀으니 묵조는 사선(邪禪), 간화는 구두선(口頭禪)이라고 비평한 것이다.

 굉지(宏智) 선사는 단지 묵묵히 앉아 마음을 비춤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지관타좌를 주장하고 있다. 좌선 그 자체가 대용현전, 즉 진실 그 자체의 나타남이라고 본 것이다<좌선잠>.

 반면 대혜(大慧)에 의해 대성된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대오케하는 선풍이다. 화두란 의단(疑團)을 의미하는데  공안(公案)이라는 말과 함께 쓰인다. 공안은 조사들이 남긴글[벽암록서]이다. 마치 노련한 관리가 범인의 죄상을 헤아려 벌을 부과하는 것처럼, 공안은 이것에 비추어 자기의 마음바탕을 돌아보는 기구이다.

 대혜는 심지를 개척하기 위한 공안의 사명을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큰 의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다만 이 하나의 의심이다. 화두상의 의심이 깨뜨려진다면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 만일 화두를 버리고 따로 문자(文字)상에 의심을 일으키거나, 경교(經敎)상에 의심을 일으키거나, 고인(古人)의 공안상에 의심을 일으키거나, 일용진로(日用塵勞) 가운데 의심을 일으킨다면, 이는 다 사마(邪魔) 권속이다. 결코 제멋대로 헤아려 분별하지 말고, 다만 뜻을 모아 사량(思量) 할 수 없는 곳에 나아가 사량하여 마음을 어느한 곳으로도 달아날 수 없도록 하라. 마음이 갈 바가 없는 것이 마치 늙은 쥐가 우각(덫)에 들어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는 것같이 하라.
                                                            <대혜보가선사어록>

 일체 모든 분별심을 버리고 화두를 간하라는 것이다. 본래 안목을 찾기위해 밖으로 내닫던 의식활동을 돌려 안으로 향함에는 앞이 가로막혀 막막한 계기나 자기부정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방법으로서 의단이 주어지며 이를 통해서 대오토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간화선의 실천이다.

 화두에는 1700칙이 있다하여 '천칠백공안'이라고 통상적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전등사인 경덕전등록(도원)에 1701인이 수록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역대조사의 전등 기어(機語)가 다 공안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1700공안 가운데 48칙의 공안을 선별한 무문관(無門關)이 유통되면서 제 1칙에 실린 '구자무불성'화인 '무(無)'자 화두가 남송 선종을 풍미하게 된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매 조주 스님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불교교리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에서는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으니 이것이 곧 선수행의 과제가 되어 무자화두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무'라는 한 글자는 무수한 망상이나 분별을 타파하는 몽둥이다. 그것에는 있다든가 없다라는 판단을 가해서도 안 되며 이론적인 추론을 해서도 안 된다. 의식적인 분별을 떠나 언제 어디서나 일편단심으로, 개에게 불성이 없다함을 참구하는 것이다. 다른 화두의 예로서 '이 뭐꼬[是甚麼]' ·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등 우리에게 낯익은 화두도 많다.

 이러한 공안도 결국은 언어를 빌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공안 그 자체의 핵심을 상실하거나, 잘못 전달되기 쉽다. 그래서 언어표현을 넘어 방과 할 등의 동작에 의한 지도도 많다. 곧 "어떤 것이 불교의 참뜻입니까?"라고 물으면 주먹으로 치거나 방망이로 때리기도 하고 외마디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으니, 이것도 모두 의식에 일전기(一轉機)를 주고자 함이다.

 선수행은 결가부좌의 좌법에 주로 의존하지만,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거나 말하고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히 있거나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또는 무엇을 하거나 공안을 참구하게 한 것이다.

 원(元) 고봉원묘(1239ㅡ1295)가 남긴
대신근(大信根) · 대분지(大憤志) · 대의단(大疑團)의 3요(三要)설도 참선자에게 선수행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간화선풍은 한국에서도 대단한 기세를 떨치게 되었다.


해주스님
청도 운무사에서 출가, 공주 동학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였으며, 동국대학교와 동국대대학원에서  화엄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