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가슴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되어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굴렁쇠 어린이」새 발행인 김형균

2009-09-13     관리자

「굴렁쇠 어린이」새 발행인 김형균
불교계에도 이제 수많은 언론 매체를 거느리고 있다. 주간 신문만도 5종이 넘고 있으며 월간 잡지, 소규모 사찰의 자체 회보까지 합할 때는 수도 헤아리기 힘든 지경이다. 이러한 발전에는 항상 보이지 않게 자기 역할을 다한 사람이 있게 마련으로, 스스로를 '이쪽 동네(불교계)의 동네머슴'이라 부르는 김형균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동네머슴, 한 마을에 촌장이나 마을어른 등도 중요하지만 마을의 궂은 일 마다않고, 떠내려간 징검다리를 고치거나 상가 · 잔치집 등에 쉼없이 나타나 도와주는 부지런하고 일 잘 하는 사람을 일러 '동네머슴'이라 한다. 기실 그가 근 20년간 해온 일들은 알게 모르게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인력은행쯤으로 여겨지게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에 빠져 있을 때, 나에게 문학을 가르쳐 주신 분이 운장 김대현 선생이라고 하는 시인인데 불교시인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불교를 배우다가 불교에 빠져버리고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진학하여 집에서 쫓겨나고 그 바람에 4년내내 집에도 못 들어가, 학교 신문사와 기숙사를 전전하게 되었지요."

 처음부터 그런 다부진 면모와 자세로 불교라는 거대한 실천영역에 임했기에 이후로도 올곧은 한길로 오늘에 이르렀을까? 지금 불교계의 누구라도 익히 알 만한 잡지들이 줄줄이 언급되는 것으로 그의 행적은 채워지고 있었다.

 1973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며 곧바로 불교신문사에 입사하는 것이 불교언론 매체와의 첫 인연이었다. 이후 그는 76년 『법륜』지 편집장을 시작으로 84년『금강』, 85년『대원(현재의 대중불교)』등을 거쳐 87년 3월부터 현재의 불지사를 설립, 운영해오고 있는 중이다.

 "불지사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불교인쇄매체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런 인쇄매체에 종사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한다고 하는 일입니다. 그 동안 이백여 권에 달하는 단행본을 펴집, 제작해 주면서 아직은 불교계의 전문인력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굳이 영업을 하지 않아도 수없이 맡겨지는 일들은 이쪽 동네에는 아직도 많은 전문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불지사는 처음 문을 열 때, 5명의 인원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34명의 대식구로 늘어났다. 매달 10여 종의 잡지와 수많은 단행본을 만들어 주는데도 그래도 불교인쇄물은 항상 밀려있어 34명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하지만 김형균 실장의 포부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출판업에도 발을 디뎌, 현재『숭어』라는 책이 널리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또 이것만도 아니다. '동쪽나라'의 원래 목적이었던 어린이 잡지 간행이라는 자기몫의 역할을 끝내 잊을 수 없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자본력으로 경쟁하지 않으면 '적자 많은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어린이 잡지가 결국 그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 기획했던 '동쪽나라'라는 어린이 잡지는 당시 대원사에서 창간한 『굴렁쇠 어린이』와 동일 권역 안에서 중복되는 일이라 포기했다 한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기획안을 넘겨주고, 불교계의 유일한 어린이 잡지로서 훌륭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란 기대를 실어『굴렁쇠 어린이』의 기획위원으로 참가했지만 2년간 누적되는 적자와 다른 어린이 잡지와의 경쟁력 부족, 불교계의 관심 부족으로 김형균 실장은 발행사인 대원사로부터 이 '애물단지'를 지난 1월부터 넘겨 받게 된다. 그는 잡지를 인수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찾았다.

 "제가 대원 어린이 법회 지도법사를 한 2년반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린이법회를 하다보니까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지 일과성에 그치고 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읽혀주려고 해도 그럴 만한 책이 없었고 자료도 없었습니다. 이천 년을 전해내려 온 불교 문화 중에 어린이문화는 정말 거짓말같이 찾아볼 수가 없었던 거죠."

 어렸을 때 읽은 책 한 권이 평생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 자못 격앙된 말투와 표정으로 벌써 20대 초반의 청년층까지도 은연중 서구식 사고와 가치체계, 세계관과 종교관으로 물들어, 불교에 대해 미신 또는 우상숭배라는 타종교의 비판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렇다. 그가 지적한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이 태어난 시기부터 그는 불교언론매체에 몸담아 왔지만 아직도 미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반 출판매체나 타종교의 그것에 비해 불교권은 약 10년은 뒤쳐져 있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단지 언론의 메체로서 쌓아 온 기술의 낙후라거나 경험의 부족으로 치부할 수 없는 포교사업의 낙후, 신행활동의 낙후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나아가 우리의 전통문화가 색바래져 가는 걸 수수방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교를 믿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황진이가(큰아들) 2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학교선생님이 종교조사를 하며 '이중에 불교를 믿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더랍니다. 우리 황진이는 단연히 들었죠. 그런데 손을 든 사람이 혼자였답니다. 주위의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서 혼자 얼굴이 빨개졌는데 그 선생님이 갑자기 자기 손을 번쩍 들면서 '나도 불교를 믿어요'하고 성원을 해주셨답니다. 그랬더니 황진이도 의기양양해 가지고 '우리 선생님도 불교를 믿는다'고 자랑하고 다니더군요. 하지만 이런 예를 제외하고는 우리 아이들은, 불교 믿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도록 교육되고 있는 겁니다. 불교방송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어린이 프로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의 전적으로 자료부족, 관심부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통계조사에서 각 종교별 학교수를 산출한 적이 있었다. 대학만 비교해봐도 불교 : 기독교 비율이 1 : 37인 것으로 기억한다. 초·중·고등학교는 이것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게 그 격차가 벌어진다. 간단한 산술 통계만도 이런데 산술 통계 속에 감춰진 산출할 수 없는 실상은 어떠할까?

 다행히 요즘은 젊은 층의 불교신도가 놀라우리만큼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김형균 실장은 이를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말한다.

 "복고주의죠. 사상의 양 극단이었던 공산주의 소련과 지나친 자유주의 미국이 다 함께 망해가고 있지 않아요?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불교를 모르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봐요. 불교를 모르고는 지성인이라 할 수 없어요. 전통사상과 문화를 도외시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막연한 낙관만은 아닐 거라는 걸 그가 말하는 도중 움켜쥔 손으로 알았다. 아니 그 손은 그렇게 믿게 만들고 있었다.지난 1월 인수했기에 1, 2월 합본호를 준비하는 사무실에서는, 김형균 실장을 중심으로 조금도 느슨한 감 없게 다시 일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도중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문이 틈틈이 열려 간단히 상의하는 모양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우리 어린이들의 세계도 차츰, 그리고 분주히 변해가리라 상상해본다.

 그렇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계 내부는 어떤가? 짐짓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좋은 점은 내팽개쳐 두고 남의 못난 걸 이제 배우려 하지는 않는가? 아직도 억불숭유의 구시대부터 몸에 지녀 온 구습을 떨쳐버리지 못하진 않았는가? 어쩌면, 이천 년 불교전통 속에 단 한 권의 불교 어린이 잡지를 가진 나라라는 건 수치에 속하는 것일 게다.

 어떤 단체나 집단 크게는 한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교육이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어린이가 맘껏 자랑하는 우리 전통으로 불교를 가꾸고, 맘껏 우러르는 부처님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부처님의 성품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럴 때야만 파릇파릇 자라나는 아이들 손마다에 들려질 유일한 불교 어린이 잡지『굴렁쇠』가 전 불교인의 관심속에 점점 실다워질 것이다. 살지워질 것이다. 관심이 아닌 다른 영역, 전문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김형균 실장과 그의 34명의 식구들이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로 풀어 헤쳐갈 것이다. 휘영청 밝진 않아도 끝내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그의 표현대로 동네머슴처럼, 보이지 않는『불지사』의 역할이 점점 커가는 걸, 결국 우리 모두가 느낄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