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湛堂)화상의 도행

선의 고전/종문무고(宗門武庫) 3

2009-09-11     관리자

 ◎ 제방 존숙들이 열반한 후 온몸을 화장할 때 많은 사리들을 얻곤하는데, 오직 진정(眞淨)선사의 사리만이 크기가 콩낱만 하고 오색 찬란하고 단단하였다.

 곡산 조(谷山 祖)선사는 진정의 고제(高第)로서, 이를 다수 거두어 유리병 속에 넣어두고 누구라도 친견하게 하였다.

 내가 곡산을 여행할적에 일찍이 이를 시험해 본 적이 있었는데, 쇠절구에 넣고 망치로 치니, 절구와 망치는 모두 부숴졌으나 사리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어찌 평소의 수행이 분명하고 도가 남달랐던 소치가 아니겠는가?

 ◎ 현봉두(賢蓬頭)1)는 강주(江州) 사람이었다. 위산진여(潙山眞如) 화상의 회중에서 특히 걸출하여, 견지가 명백하고 기봉(機鋒)이 날카로워 스승을 능가하는 기략이 있었으나, 다만 행업이 신중하지 못하여 온 대중이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진여가 방장의 뒤곁에 암자를 짓고 현(賢)을 혼자 살게 하면서, 오직 좁은 길을 통해서 방장 앞으로만 지나가게 하고 형제들의 왕래도 허락하지 않았다.

 2년 후에 대중의 우두머리인 입승병불(立僧秉拂)2)에 천거되어 법을 설하자, 크게 다른 사람을 능가하는 곳이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대중이 생각을 고쳤다.

 나중에 영주(郢州) 흥양(興陽)에 몇 년 동안 가서 지냈는데, 도가 크게 떨쳤고 죽어서는 육신이 썩지 않았다.

 원오(圓悟) 화상이 위산에서 지낼 적에 그런 사실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하였고 내가 흥양 지방을 여행할적에도 아직까지 그의 육신을 볼 수 있었다.

 ◎ 담당 준(湛堂 準) 화상은 흥원부(興元府) 사람으로서, 진정(眞淨)의 고제였다. 분영(分寧)의 운암(雲岩)이 자리를 비우자, 군목(郡牧)이 황룡사심(黃龍死心) 선사에게 부탁하여 맡을만한 자를 천거하여 그 자리를 보충하게 하였다.

 "준 산주(準 山主)가 맡을 만하지만 저는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세발송(洗鉢頌)'이라는 것을 보았는데 매우 훌륭합니다"하고 사심(死心)이 말하자, 군목(郡牧)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하고 간청하였다.

 사심(死心)이 이렇게 소개하였다.

 부질없는 짓이구나
 납승의 콧구멍이여
 바보 머저리 같구나.
 만일 알지 못하겠다면
 동촌의 왕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라

 [之乎者也, 衲僧鼻孔, 大頭向下. 若也不會, 問取東村王大姐]
  지호자야  납승비공  대두향하  약야불회  문취동촌왕대저

 군목(郡牧)이 기이하게 여겨 예의를 갖추고 정성스레 청하니 준(準) 도 또한 사양하지 않았다.

 평생 검소하게 몸을 단속하였고, 비록 대중을 거느리며 법을 폈으나 대중에 있을 때의 태도를 고치지 아니하여, 새벽에 일어나서는 시렁 뒤에서 한 바가지 물을 떠서 얼굴을 씻고 그물로 다시 발을 씻었으니, 그밖의 수용도 대체로 이와 같았다.

 방선한 후에는 방장행자(方丈行者)3)가 되어 운력에 일반 대중과 똑같이 부지런했고, 마당쓸기나 차 달이는 일따위도 몸소 하여 고인의 풍격이 있었으니, 참으로 후학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 법운사(法雲寺)의 불조 고(佛照 杲)4) 선사가 일찍이 경덕(景德)의 철나한원(鐵羅漢院)에 물러가 산 적이 있었다. 법당 안에 여러 기의 나무 나한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때 경사(京師)5)가 몹시 추워 고(杲)가 이를 내려 불을 지펴 화로를 싸고 앉아 날을 새웠다.

 다음날 재를 헤쳐 무수한 사리를 얻으니, 여러 좌주(座主)5)들은 모두 그를 외도라고 손가락질하였다.

 대체로 불조는 단하(丹霞)7)와 같은 분으로서, 평범한 눈으로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 연평(延平)의 진료옹(陳了翁)은 이름이 관(瓘), 자는 형중(瑩中), 자호는 화엄거사(華嚴居士)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정직하고 강정하여 고인의 풍모가 있었고, 내전(內典)에 뜻을 두어 논의가 출중했으며, 특히 선을 참구하여 크게 깨닫지는 못했어도 선종의 인연을 다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유독「남선사어록(南禪師語錄)」을 좋아하여 전석(詮釋)에 자못 정성을 쏟았으나, 오직 '금강역사가 토지신에게 등을 문질러 준다'한 대목에서는 주해를 달지 않고, "이것도 반드시 출처가 있을 것인데, 다만 그런 일을 아는 자가 없다" 하였다.

 속담에 '큰 지혜를 가진 자도 석 자의 어둠은 있다' 하더니 과연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 자조 총(慈照 聰) 선사는 수산(首山 : 省念)의 제자다. 함평(咸平)8) 때 양주(襄州) 석문사(石門寺)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태수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매를 때려 욕보였다. 돌아오자 대중이 도중에서 맞이 하였는데, 수좌가 앞으로 나와 문안하며 "태수가 무고히 화상을 이렇게 모욕하엿습니다" 하였다.

 자조가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평지에서 뼈무더기가 생겨라!"하자, 손가락을 가리키는 대로 한 무더기의 흙더미가 솟아올랐다.

 태수가 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시켜 뭉개버렸으나 다시 처음과 같이 솟아나더니, 나중에 태수의 온집안이 양주에서 죽었다. 또 어떤 중이 "깊은산 절벽 가운데도 역시 불법이 있습니까?"하고 몰으니, 조(照)가 "있다!" 하였다.

 앞으로 나아가 "어떤것이 깊은 산 절벽 속의 불법입니까?"하고 물으니, "기괴한 바위는 모양이 범과 같고, 불이 소나무를 태우니 형세가 용과 같구나!" 하였다.

 무진거사(無盡居士)9)는 이 이야기들을 좋아했으나 「석문록(石門錄)」에는 이 두 가지 일을 적지 않았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직접 무진거사의 글에서 본 것이다.

 ◎ 여산(廬山)의 이상노(李商勞)10)가 공사를 하다 토지신의 비위를 건드려 온 식구가 종기가 났다. 의사를 찾았으나 아무 효험이 없자, 방을 깨끗이 치우고 온 식구들에게 각각 마음을 재계하게 하고, 자신은 향을 사루고 '치성광주(熾盛光呪)'를 외면서 노염을 푸시기를 빌었다.

 7일이 채 안 되어, 꿈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소를 타고 그의 집에서 천천히 떠나가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온 집안이 모두 씻은 듯 병이 나았다.

 지성의 감응은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이 빠르다. 부처님의 힘이 능히 이와 같지 못하겠는가?

 ◎ 옹화엄(顒華嚴)11)은 원조 본(圓照 本) 선사의 제자다. 땅에 나자빠지고서 깨닫고는 이렇게  게(偈)를 지헜다.

히 한번의
곤두박질이여 !
이 한번의
곤두박질이여 !
만냥의 황금도
녹일 만하네.
머리에는 삿갓,
허리에는 봇짐,
맑은 바람 밝은 달,
지팡이 끝에 메네.
[這一交信一交, 萬兩黃 金也合消, 頭上笠腰下包, 淸風明月杖頭挑.]

 부정공(富鄭公)12)이 늘 그에게 도를 물었는데, 어느날 옹이 자리에 올라가 좌우로 돌아보는 것을 보고 홀연히 깨닫고는 이렇게 게송을 지어 원조에게 바쳤다.

한번 옹 스님을 보고 깨달음이 깊었으니, 이 인연을 노스님의 마음에 전합니다.
강산이 천리라 비록 막혔다 말하지만, 눈으로 거룩한 모습과 미묘한 음성을 대합니다.
[一見顒師悟入深, 因緣傳得老師心, 江山千里雖云隔, 目對靈光與妙音,]

 정공이 재상에서 물러나 낙중(洛中)에 있을 때, 옹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그곳의 승당에 머무실 것을 간청하엿다.

 옹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몸소 나가 맞이하려 수레에 오르는데, 사마온공(司馬溫公)이 그때 마침 찾아왔다.

 "상국(相國)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승당으로 옹 선사를 맞이려 합니다."

 "저도 함께 가렵니다."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성을 나가 우정(郵亭)에서 기다리는데, 얼마 후 수십 명의 짐꾼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온공이 물었다.

 "누구의 짐인가?"
 짐꾼들이 "새로 부임하는 화상의 짐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온공이 말을 돌려 돌아가려 하였다.

 정공이 "화엄을 보고싶다 하더니 무엇 때문에 먼저 돌아가시려 하는 게요?"하자, "저는 이미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먼저 돌아갑니다"하였다.

 내가 전에 이의중(李儀中) 소경(少卿)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1) 興陽 賢선사를 말함. 행동이 거칠고 형색이 거침없어서 총림에서는 흔히 '賢蓬頭'라고 불렀다. 大潙喆의 제자.
2) 산중 가운데 학덕이 높은 자를 말함. 秉拂은 拂子를 잡고 주지를 대신하여 법을 설하는 것,五頭首가 이런 자격이 있었음.
3) 방장을 시봉하는 소임. 혹은 방장이면서 수행자처럼 행동한다는 뜻.
4) 寶峰 文의 제자
5) 京都. 천자가 사는 곳.
6) 선종에서 講師를 일컫는 별칭.
7) 石頭希遷의 제자. 일찍이 洛京의 惠林寺에서 木佛을 쪼개 지핀 적이 있다.
8) 宋 眞宗의 연호. 元年은 서기 998년.
9) 張無盡. 兜率悅의 제자. 이름은 商英, 자는 天覺
10) 海  사람. 호는 日涉園夫. 寶峰湛堂의 제자.
11) 投子山 證悟修顒 선사.
12) 丞相 富弼 거사. 자는 彦國. 修顒의 제자.
13) 이름은 光, 자는 君實. 벼슬이 재상에 올랐고 溫國公에 봉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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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스님 : 해인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제방 선원과 강당에서 수업하였다. 역서로「竹窓隨筆」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