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보살' 의 고민

보리수 가꾸기

2007-06-01     관리자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속한 써클모임에서 친근감을 쌓기 위해 서로에게 별명을 붙이기로 하였다. 되도록이면 개인들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좋은 의미로 와 닿는 별명을 짓자는 의도였으므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을 짜내느라 퍽이나 고민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몇몇 회원의 별명을 짓고 내차례가 되었는데, 모두들 멀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히 개성적이지도 그렇다고 외향적이지도 못했던 나에게 그럴듯한 별명을 지어주기란 그들에게 얼마나 큰 고역이었겠는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별명을 지을 때는 자신이 제안한 것을 주장하느라 전쟁터를 방불케 하더니만 유독 나에게 와서 침묵을 지키는 데는, 당사자인 나로서는 어색하기도,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때 갑자기 갓 들어온 신입생 남자아이가 "누나는 꼭 보살님 같아요"라고 나지막히 말했던 것이다. 나에게서 느껴지는 인상이 어느 절의 벽화에서 본 보살 같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하관이 둥글고 복스러운 보살상을 떠올리고는 여자로서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아니 20을 갓 넘긴 처녀에게 보살 같다니, 내가 그렇게 아줌마처럼 뚱뚱하게 생겼단 말인가?

 그러나 나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그들로부터 보살로 불려지고 있다.

 문제는 그 보살이라는 별명때문에 내가 그동안 받아 온 압박과 설움(?)에 있다. 보살이라는 호칭을 나에게 부과한 이후 궁하면 '보살'을 찾는 것이었다.

 "보살이 해야지 누가 하겠니?"

 "보살이 참아야지. 보시하는 마음으로."

 "보살이 화를 내면 어떡해?" 하는 말들로 나의 자연스로운 선택 의지와 감정의 표출을 억눌렀던 것이다. 당시 궁색했던 자취생 남자아이들에게 밥을 사주는 일은 으레 내 몫이었으며, 뒤치다꺼리 하는 일은 내가 맡게 되었다.

 때로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야속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작은 것들로나마 자기 존재를 확인 받는다는 생각에 차츰 익숙해지게 되었다. 자신 속에 깊이 도사리고 있던 이기심, 아집, 세상을 향해 돌출해 있던 칼날 같은 신경, 이런 것들이 부담스러운 호칭 덕분에 그나마 더불어사는 삶의 구성원 자격을 얻게된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태어나는 것도,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 가느냐는 것도, 그리고 죽는 것도 자신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그 존재를 규정하는 시간적.공간적 힘이 작용하면, 사회적 관계.인간 관계에 따라 각자의 모습도 차이를 가진다.

 결국 그러한 거대한 관계의 얽힘속에서 자신이 처한 구체적현실,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의 몫을 해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체 사회의 모습을 올고르고 반듯하게 가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피땀 흘리는 노동자, 이른 새벽 더러운 서울 거리를 묵묵히 쓸어 내는 청소부, 고된 노역과 늘어가는 시름속에서도 꿋꿋이 농촌을 지켜나가는 농민들, 이들이 사실은 진정한 보살들이다.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구조화된 사회에서 그들이 가장 힘겨운 부분을 담당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짜 보살'에 불과한 나로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매우 우연적인 발상으로 붙여진 별명이고, 실제로 내용과 형식이 다른 가짜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을 지어준 다정한 사람들에게 대한 의무감에서 어느새 하는 마음 속에 보살의 형상을 동경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佛光

 서은주: 연세대학교 국문과 석사 마침. 현대문학소설 전공.